책 읽는 기쁨을 알게하라”… 스스로 실천하며 교육의 목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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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의 죽음에 원인이 있다는 것은 말하나, 말이 죽지 않도록 구제할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얼마 전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장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성호 이익의 이 말이 떠올랐다. 이익에 따르면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말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말을 살릴 방도인데, 다들 ‘사마의(死馬醫: 죽은 말 분석하는 의사)’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수시냐 정시냐,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 하는 교육공론화위원회의 논의는 비유컨대 죽어가는 말의 앞다리와 뒷다리 중 어디부터 자를 건지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다. 정작 중요한 교육의 목표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지엽적인 것에 매달렸다. 교육의 목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어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풍요롭게 만들 수만 있다(啓心沃心)’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음을 열게 하는 이익의 독서법인데, 그에 따르면 책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고(眼頭過) 입을 굴리고(口頭轉) 마음으로 융통하며(心頭運) 손으로 놀리면서(手頭措)” 책을 읽을 때 비로소 그 안의 지식과 지혜가 내 것으로 체득될 수 있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온 몸 독서법은 세종의 책 읽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경연이라는 세미나식 어전회의에서 고전을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 소리 내어 읽게 했다. 경전과 역사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통찰이 주는 지혜를 구성원들과 마음으로 공유했으며, 손수 실천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세자에게도 고금의 통찰력 있는 문장과 성공 사례를 항상 읽고 외워서 체득하는 공부를 권장했다.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아름다운 일을 자주 듣다 보면 자연히 좋은 말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훌륭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지난 수년간 ‘세종의 서재’ 연구, 즉 세종을 만든 책과 세종 시대에 만들어진 책을 전수조사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세종에게 책은 어떤 용도(用度) 이상의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세종에게 책은 유용한 것이었다. “책 읽는 중에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는 회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책은 ‘그의 존재 자체’였다. 우선 어린 그에게 책은 살벌한 정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부왕 태종을 구심점으로 회오리치는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려는 큰형 양녕에게 ‘여자와 사냥’이 필요했듯이, 어린 세종에게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책이었다.

왕위에 올라서도 그가 “호학불권(好學不倦)”, 즉 밥을 먹을 때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독서를 즐겼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정신을 고양시킬 길’이 책에 있다고 보았다. 임금의 정신 고양법은 다름 아니라 하늘의 원리를 궁리해 거기에 맞춰가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자기 욕망이 아니라 하늘의 원리 내지 자연의 질서 속 리듬을 발견하고, 그 리듬에 자기 스스로와 나라 다스리는 것을 잘 조율(調律, tuning)시키는 지도자가 훌륭한 리더라고 그는 생각했다. 책 읽기는 바로 그의 생존법이자 다스림의 원리와 자연의 리듬을 발견하는 기쁨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이와 정반대다. 중학생 때부터 모든 학습 과정이 입시 터널을 향해 있다 보니 암기와 정답 찾기가 수업의 지상 목표다.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보면 마치 어떻게 하면 책 읽기를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고, 정신을 고양하는 길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까 궁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책 읽는 기쁨을 누리는 학교, 그 속에서 우리 자녀들이 자아를 고양하는 길을 찾아가는 교과과정 회복 소식이 들려오길 소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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