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장 "한국 젊은이들 세계로 나가라, 내가 돕겠다"

  • 성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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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08.03 03:08

    [오늘의 세상] 손정의 회장의 동생… 자산 2조원 갑부, 벤처투자자로 변신

    "지금까지 전 세계 120여 스타트업에 200억엔(약 20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내가 가진 돈을 모두 테크놀로지 벤처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지난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손태장(孫泰 ·46) 미슬토(Mistletoe) 회장은 "본래 하나도 없었던 돈을 사회에서 벌었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환원 방법은 내가 제일 잘하는 창업과 창업 지원"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2014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자산 규모 21억달러(약 2조3500억원)로 평가한 거부다. 정작 본인은 "주식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이 많아 정확한 규모는 나도 잘 모르지만 (투자 여력이) 수백억엔 정도는 더 있다"고 했다.

    재일 교포 3세인 손 회장은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동생으로 열다섯 살 터울이다. 자수성가한 재외 동포 사업가 가운데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일본어로 진행하는 인터뷰를 의식한 듯 "일본 학교만 다녀서 한국말을 조금밖에 못 한다"고 했다.

    ◇사업 계획서 안 보고 투자

    손태장 회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 게임 업체인 겅호(전신 온셀)를 창업해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손 회장은 "도쿄대 재학 시절인 1996년에 지인들과 인디고라는 벤처를 창업한 이후 100개 정도 벤처를 창업하거나 참여했다가 90개 이상이 실패했다"며 "한번은 내가 죽은 뒤 나올 보험금으로도 다 못 갚을 정도의 빚을 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버지나 형한테서는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은 적 없다"며 "그게 손가(孫家)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타인을 설득해 투자받아야 진짜 기업가(起業家·업을 세우는 사람)라는 것이다.

    7월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본지 기자를 만난 손태장 미슬토 회장. 그는 “투자할 때 사업 계획서는 보지 않고 오직 창업자에게 세상을 바꿀 기술과 열정이 있는지만 본다”며 “테크놀로지가 변화·진화하면서 마법과 같은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7월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본지 기자를 만난 손태장 미슬토 회장. 그는 “투자할 때 사업 계획서는 보지 않고 오직 창업자에게 세상을 바꿀 기술과 열정이 있는지만 본다”며 “테크놀로지가 변화·진화하면서 마법과 같은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16년 겅호 회장에서 물러난 손 회장은 작년 도쿄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본격적인 투자자로 변신했다. 미슬토도 본인이 세운 벤처 투자사다. 그는 "투자할 때 사업 계획서는 보지 않고 오직 창업자에게 세상을 바꿀 기술과 열정이 있는지만 본다"며 "투자금을 남에게 빌리지 않고 내 개인 자산으로만 하기 때문에 괜찮다. 손해 보거나 실패하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그가 투자한 벤처들은 난민 캠프에서 물 걱정 없는 샤워를 가능케 하는 여행용 가방 크기의 물처리 시스템, X레이·CT 자료에서 암세포를 찾는 인공지능,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집 안에서 곡식을 키우는 기술 등 한결같이 사회적 난제에 도전한다.

    그는 "한번은 미국 하버드에 다니는 학생이 A4 한 장에다 드론(무인기)이 물건을 나르는 그림을 가져와 투자 요청해 기꺼이 해줬다"고 말했다. 이 학생이 만든 벤처가 집라인(Zipline)이다. 현재 이 회사 드론은 내전으로 도로 인프라가 거의 파괴된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긴급 의료용 혈액과 약품을 병원에 날라주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바람 흐름을 분석해 새가 날듯이 바람 타고 날기 때문에 최장 200㎞까지 의약품 20㎏을 운반할 수 있다"며 "동력에만 의존해 최장 10㎞에 불과했던 드론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번 방한 목적은 카이스트와 창업 지원 제휴를 맺는 것"이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벤처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올해 초 클래스팅이라는 한국 스타트업에 처음 투자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 교사들은 온갖 잡무 탓에 정작 좋은 교육을 위한 교재 연구를 못 하는 현실"이라며 "교사가 창업한 이 스타트업은 다른 교사가 올린 좋은 교재를 다 같이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국 젊은 엔지니어들 세계로 나가야"

    손 회장은 곧잘 그의 형과 비교된다. 손정의 회장은 재일 교포 차별의 벽을 넘고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했다.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인 손태장 회장은 "형과는 나이 차도 있고 나는 재일 교포로서 콤플렉스를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두 억만장자를 키운 아버지(손삼헌)의 교육법을 묻자 그는 "부친은 '배운 대로 삼키지 말고 스스로 생각한 뒤 받아들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며 "베끼기만 해선 상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게 부친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손 회장은 또 "초등학교 때 열 문제짜리 간단한 시험에서 만점만 받아도 아버지는 '넌 천재'라고, 그림을 그리면 '넌 피카소급 자질이 있다'고 크게 칭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을 향해선 "전 세계를 봐야 한다"고 했다. 손 회장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한국에서는 이런 기술을 쓸 데가 없다'고만 하는데, 전 세계로 나가면 반드시 쓰임이 있다"며 "테크놀로지 혁명 시대지만, 세계에서 기술 혁신을 실제로 할 수 있는 나라는 10~20국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 내가 그것을 돕겠다"고 말했다.

    ☞손태장 미슬토 회장

    출신: 1972년 태생, 일본 사가현 출신 재일교포 3세
    창업: 일본 최대 온라인게임 업체 겅호 등 100개
    투자: 11국 120여 스타트업에 약 2000억원 투자
    개인 자산: 21억 달러(2014년 포브스 추정)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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