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원맨쇼’로는 4년 뒤에도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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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축구를 리셋하라 <하>

2골 손흥민 … 하지만 혼자선 역부족

이집트 등 원맨팀 러 월드컵서 몰락

월드컵 16강 일본은 10명이 유럽파

유소년 키워낸 벨기에도 모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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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에이스는 손흥민이다. 그러나 손흥민 한사람에게 의존해선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달 18일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에서 드리블을 하는 손흥민.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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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나타난 특징은 ‘1인 의존도’가 높은 팀은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것이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고군분투한 폴란드와 모하메드 살라가 홀로 이끈 이집트는 각각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 역시 16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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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콜롬비아전에서 패한 뒤 아쉬워하는 폴란드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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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로운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도 2골을 터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손흥민 옆에는 소속팀인 토트넘의 동료 해리 케인, 델리 알리(이상 잉글랜드)나 에릭센(덴마크) 같은 지원군이 없었다.

한국 축구는 특히 권창훈(디종)·이근호(울산) 등이 부상으로 낙마한 뒤 경기력이 급전직하했다. 만약 손흥민이 부상으로 빠진다면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그래서 손흥민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손흥민 원맨쇼’로는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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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세네갈전에서 전반 동점골을 터뜨린 일본 이누이 다카시. 일본은 유럽프로축구 1-2부리그에서 약 30명 정도가 뛰고 있다. 일본은 이번대회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했다. 다만 폴란드와 경기에서 볼돌리기도 비판을 받은건 옥의 티였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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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일본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일본은 세네갈전에 출전한 선발 명단 11명 중 10명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해외파였다. 일본 선수들은 유럽프로축구 진출에 적극적이다. 스페인 바스크의 시골 클럽 에이바르로 이적한 이누이 다카시는 2골·1도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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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네갈전 선발 11명 중 10명이 유럽파였다. 독일리그 4명, 스페인리그 2명, 프랑스 리그 2명, 잉글랜드 리그 1명, 터키 리그 1명이다. 일본 선수는 꿈과 인생경험을 중요시 해서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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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한국은 멕시코전에 선발 출전한 11명 중 유럽파가 손흥민·기성용(스완지시티)·황희찬(잘츠부르크) 등 3명뿐이었다. K리그 MVP 이재성(전북)은 월드컵에서 세계 수준과 격차를 실감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한국은 선수단 전체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최근 손흥민을 제외하면 유럽프로축구에서 수준급 플레이를 이어가는 선수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다. 병역이 걸림돌이긴 하지만 유럽 빅클럽이 아닌 중하위권 팀에서라도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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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모드리치가 지난 11일 잉글랜드와 4강전에서 승리한 뒤 만주키치 품에 안겨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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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팀 크로아티아도 한국이 배워야 할 모범 사례다. 그들은 16강전부터 3경기 연속 연장 혈투를 펼치고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뽐냈다.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 수석 트레이너 루카 밀라노비치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크로아티아 격투기 전설’ 미르코 크로캅 팀에서 일했는데 축구대표팀에 종합격투기(MMA)의 훈련 방식을 주입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육체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정신력으로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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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같은조였던 스웨덴은 팀플레이를 앞세워 8강까지 진출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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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은 월드컵 직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서 고강도 체력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스페인 출신 피지컬 코치를 영입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8강에 진출한 스웨덴은 심리전문가 다니엘 에크발을 통해 ‘팀 스피릿’을 만들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네티즌의 악플에 시달렸지만 이와 관련한 심리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한준희 위원은 “러시아 월드컵에선 정교한 수비조직력을 바탕으로 빠르고 세밀한 역습 전환에 능란한 팀이 좋은 성적을 냈다. 다양한 세트피스 같은 팀플레이도 중요하다. 피지컬, 전술, 분석 등 분야별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코치와 스태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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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아자르(왼쪽)가 지난 14일 잉글랜드와 34위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케빈 더 브라위너(가운데) 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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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대’를 앞세워 3위에 오른 벨기에처럼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벨기에는 유로 2000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뒤 2006년 유소년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모든 유스팀은 성인 국가대표팀과 동일한 유기적인 4-3-3포메이션을 쓰고, 8세 이하 팀 리그에는 아예 성적표를 없애 승리보다 축구 자체를 즐기게 했다. 그렇게 성장한 선수들이 케빈 더 브라위너(27·맨체스터 시티), 에덴 아자르(27·첼시) 등 20대 중반의 스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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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발렌시아 유스팀에서 활약 중인 이강인.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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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축구는 초·중·고교를 거치면서 일관성 없는 지도를 받는다. 전술적, 이론적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 대표팀에 모여도 벼락치기 운영이 될 수밖에 없고, 1인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유소년 교육 커리큘럼과 매뉴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한국축구가 기술적으로 튼튼하고 전술적으로 강해지기 위해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결국 유소년부터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한국 축구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혁명을 해서 유소년을 가르치면 그 선수들이 자라기까지 15년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100년, 20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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