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연속보도'보험의 배신'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정 이후 빈발하고 있는 허위·과장입원 환자에 대한 형사 처벌 실태를 점검합니다. 이번 편, 1회에서는 보험사기범으로 형사 처벌을 받게된 중증환자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이어 2회에서는 평범한 입원환자들이 보험사기범이 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추적할 예정입니다. |
가는 손이 팔꿈치를 잡는다. 눌러 쓴 모자와 올려 쓴 마스크 사이로 눈동자가 반짝인다. 말없이 조용한 곳으로 끌더니 구깃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의사의 직인이 찍힌 소견서다. 복잡한 의학 용어들의 끝머리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장기 생존 가능성은 낮고 현재 결과로 봐서는 2-3년까지는 생존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소세포폐암 4기 환자였다. 억울하다며 도와달라고 말했다. 범죄자로 죽기는 싫다고 했다. 인터뷰를 권했지만 자신의 모습이 싫고 말주변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보니 서넛이 구깃한 종이를 들고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처음엔 서넛이었던 것이 나중엔 마흔 명이 됐다. 결국 사건 담당 수사관이 나섰다. 환자들은 억울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었으니 책임을 지라고 외쳤다. 가슴을 치고, 자리에 주저앉고, 눈물을 흘렸다. 수사관의 대답은 한가지, 억울한 부분은 재판정에 가서 풀라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암 환자들에겐 사형 선고나 같은 말이었다.
부산 대신한방병원 보험사기 사건의 '가짜 환자'들
지난 5월 3일 부산경찰청 민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환자들은 지난해 11월 부산경찰청이 발표한 부산 대신한방병원 보험사기 사건에 등장하는 이른바 '가짜 환자'들이다. 당시 경찰은 언론 브리핑을 갖고 병원의 의료인과 직원들이 입원환자 91명과 공모해 100억 원대 보험사기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재구성한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병원의 행정원장은 이미 사무장 병원(비의료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껍데기만 그럴듯한 의료기기를 도입하겠다며 40억 원대 불법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병원 직원들은 상습적으로 진료 차트와 영수증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약제를 팔고도 보험 처리가 되는 양방 치료를 받은 것처럼 기록해 왔다. 환자들에게는 자기부담금을 줄여주겠다며 실제보다 10%가 부풀어진 진료비 영수증을 발급했다.
경찰은 환자들이 입원할 필요가 없었던 가짜 환자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결과는 이랬다.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별다른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까지 입원시켜 받았다’, ‘환자는 병원이 권하는 고가의 치료를 받으면서 비용을 보험사에 돌렸고, 외출과 외박은 자유로웠다’. 경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자들이 입원기간 중 외부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제시하며 이들이 입원이 필요없었던 '가짜 환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언론은 이들의 행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법처리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살려고 한 죄밖에 없습니다"
66세 김현순 씨는 늘 자신에게 엄격했다. 어려서부터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를 절었다. 철부지 친구들이 자주 놀렸다. 그때마다 김 씨는 나오려는 울음을 눌러담았다. 울면 그들에게 지는 거라 생각했다.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도 김 씨는 오히려 울먹이는 자녀들을 달랬다. 이미 충분히 살아서 미련이 없다 말했다. 하지만 실은, 병마에 지고 싶지 않았다.
지난 3월, 김 씨는 부산 대신한방병원 사건의 피의자로 기소돼 약식명령을 받았다. 암 진단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평생을 올곧게 살아왔는데 병들고 늙은 자신을 범죄자로 만드는 세상이 서러웠다. 갓 태어난 손주를 생각하면 이대로 세상을 떠날 수도 없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떠나면 아이가 영영 할머니를 보험사기꾼로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 생각했다.
법원의 약식명령서에 따르면, 김 씨는 병원에서 허위 발급하는 입원 확인서 등을 이용해 피해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편취하기로 마음을 먹고 고의적인 보험사기를 저질렀다. 또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입원해 고액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12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입·퇴원하면서 총 145일치 입원보험금과 간병지원금, 실비보험금을 받았다. 동양생명, 삼성화재 2개의 보험사로부터 편취한 돈이 3,500만 원이 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벌금 300만 원을 결정했다.
김 씨는 어느 하나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언론과 수사기관이 하는 '가짜 환자', '허위 환자', '나이롱 환자'라는 소리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김 씨는 암 진단 이후 2016년 7월부터 5개월간 대신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수술까지 잘 견뎠지만 항암주사 투약이 고비였다. 첫 투약을 마치고서야 주사제의 고통을 실감했다. 거동조차 쉽지 않았지만 집에는 김 씨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서류 처리를 위해 집을 찾은 보험회사 직원이 넌지시 병원 입원을 권했다. 이전까진 생각도 해본 적 없던 입원이었다.
자녀들의 도움으로 대신한방병원에 입원했다. 항암주사 치료를 받는 대학병원이 5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투약 기간 내내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통증을 덜고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았다. 치료에 필요하다면 비린 생닭도 입에 우겨 넣었다. 우선은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도 치료는 쉽지 않았다. 주사제 투약을 위한 최소한의 면역력 수치를 채우지 못하고 결국 예정됐던 8번 중 5번의 투약을 받는데 그쳤다. 그나마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건을 수사했던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담당자는 법의 원칙대로 수사를 했다는 입장이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자체가 보험금을 악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보험이용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보험이용자가 불이익을 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형사 입건 여부를 결정한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선 보험금 액수와 입원 기간 등을 통해 범행의 고의성을 판단했다고 답했다.
보험사기라는 '덫'
병원과 보험사기를 공모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치료에 여념이 없는 환자들이 병원의 깊은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 대신한방병원 역시 환자들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병원이었다. 김 씨는 '나라에서 덫을 놓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제대로 감독해서 환자들에게 알려줘야할 정부가 오히려 환자들이 보험사기범이 될 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이 한약제를 양방 치료로 둔갑시키고, 치료비를 부풀리는 것은 환자는 물론 병원 내부 직원들조차 모르던 일이었다. 취재진과 만난 한 대신한방병원 관계자도 병원 원무과 일부 직원만 알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의사 간의 문진과 치료는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차트 조작같은 불법 행위는 원무과에 넘어간 이후에야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다.
보험사를 속이려 했다는 것도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보험사는 집요하게 김 씨의 입원 사실을 확인해왔다. 그는 독감 치료나 혈압 관리를 위해 외출을 하면 보험사 직원이 직접 찾아왔다. 찾아온 보험사 직원은 김 씨의 말을 듣는 대신, 의사를 직접 찾아가 처방전을 확인했다. 지나친 의심이라며 김 씨가 항의하자 보험사는 사과했다. 보험금은 늘 문제없이 지급됐다. 김 씨는 입원에 문제가 있다면 보험사가 얼마든지 당사자에게 알리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잦은 입·퇴원, 그리고 외박·외출이 있었다는 범죄 사실 내용도 김 씨에게는 억울한 대목이다. 2016년 경주 지진 때도 간호사의 지시 없이는 나가지 않겠다 버텼던 김 씨였다. 이따금 있었던 외출은 기분 전환을 위한 인근 산책 정도였다. 취재진이 만난 대신한방병원 관계자는 항암 주사 투약 환자의 경우, 특성상 투약과 회복에 일정한 주기가 있기 때문에 상태가 호전됐을 땐 외출·외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2차례에 이른다는 입·퇴원도 실상을 알고보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입원환자가 항암 주사 투약을 위해 대학병원에 다녀오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입·퇴원 절차가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입원과 외래진료가 하루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씨의 범죄일람표에 나타난 대부분의 입·퇴원 기록은 이렇게 만들어진 하루차 입·퇴원이었다. 나머지 입·퇴원도 의사에게 간청해 정상적으로 허가받은 것이었다. 도의적으로 빠질 수 없는 명절이나 가족의 제사 때문이었다.
25년 가입해도 2차, 3차 소송...벼랑 끝의 암 환자들
김 씨를 비롯한 대신한방병원 입원환자 60여 명은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함께 정식 재판에 나서기로 했던 일부 환자가 그 사이 세상을 떠나는 일도 생겼다.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환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재판 결과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부 환자는 변호사 선임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험사기 사건은 결과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통설이다. 법률적 구성요건이 충분히 마련된 상황에서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은 부실한 수사가 재판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취재진과 만난 한 환자측 변호인은 수사기관이 병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했지만 정작 91명 환자들에 대해선 정황적인 근거만 가지고 기소했다고 말했다. '대략 어느 정도 시기에 입원한 환자라면 허위 환자라고 보는 것이 맞다'는 병원 직원의 진술을 전체 환자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식이다.
환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률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단지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보험사기로 유죄가 확정되면 보험사가 제기하는 부당이득 반환이나 계약 무효 청구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 즉, 실비나 각종 경비로 이미 지출한 보험금 전액을 다시 보험사에 되돌려주고 수십년간 유지해 온 계약도 취소나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암보험이 무효가 되면 사실상 재가입이 어려워 재발 위험이 높은 암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김현순 씨의 경우, 동양생명이 이미 손해배상채권 900만 원을 근거로 김 씨 소유의 부동산을 가압류한 상태이다. 법원의 약식명령이 있은지 채 1달이 안돼 가압류 청구가 이뤄졌다. 김 씨는 25년전 동양생명 건강생활보험에 가입해 납입을 완료한 상태다.
동양생명 측은 뉴스타파에 보내온 서면 답변에서, 민·형사재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1~3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피의자가 보유한 재산을 매각하거나 은닉해 보험금을 변제받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또 보험사기 혐의가 인정된 경우에 한해서만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선량한 계약자의 보험기금 누수를 막기 위한 부당이득 반환 소송만 진행하고 있을 뿐 계약 무효 소송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 : 오대양
데이터 : 김강민
촬영 : 신영철, 김기철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디자인 : 하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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