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칭기즈칸의 육포, 혁신은 ‘창조적 파괴’
전 세계를 뒤흔든 몽골기병의 비밀은
말 안장에 육포 가루 넣고 다니며 싸워
'전쟁=보급전' 고정관념 깨버린 혁신
일등기업 코닥은 세계최초 디카 개발
'카메라=필름' 편견에 빠져 디카 포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변화의 속도 빨라
리더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에서 시작
12세기 중반 몽고고원의 부족장이던 테무친은 1189년 여러 부족을 통일해 맹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세력을 계속 넓혀가던 그는 1206년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를 받고 몽고고원 일대 유목민족의 왕(Khan·칸)으로 추대되죠. 이후 중국을 침략하고 서방으로 가는 무역로를 확보하면서부터 세계제국 건설이 시작됩니다. 칭기즈칸의 뒤를 이은 몽골제국은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 서쪽으로는 러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몽골제국은 전성기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갖게 됩니다. 불과 200만명의 유목민에서 시작한 몽골제국은 150년 동안 2억명이 사는 세계 영토의 절반(아메리카 대륙 제외)을 지배하게 된 거죠.
세계제국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칭기즈칸의 용맹한 몽골 기병 덕분입니다. 기병은 말을 타고 싸우는 전사를 뜻하는데요. 당시 몽골의 말은 유럽인의 것보다 작고 힘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모는 기술만큼은 몽골인들을 따라갈 수 없었죠. 몽골인들은 걷기와 함께 말타기를 시작했으니까요. 특히 몽골 기병의 가장 큰 강점은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 빨랐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적의 척후병이 200~300km 떨어진 곳에서 몽골군의 이동을 감지하고 영지로 돌아와 보고하면 성안에선 그때부터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당시 통념으로는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군대가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죠.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차부대가 하루 30~40km씩 진군했던 걸 생각하면 12~13세기로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기간이었습니다.
몽골군이 뛰어난 기동성을 보인 것이 단순히 말을 잘 탔기 때문일까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칭기즈칸의 군대에는 보급부대가 따로 없었다는 겁니다. 오늘날엔 간편한 전투식량이 많아져 보급부대의 역할이 크지 않지만, 과거의 전쟁에선 ‘보급’이 전쟁의 8할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군하는 중간중간 진을 치고 밥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죠. 삼국지와 같은 소설을 보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만큼 전쟁에선 보급이 중요했습니다.
그 이유는 왜군이 보급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나라 살림이 엉망이라 비축된 곡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식량의 대부분을 본토에서 조달해 와야 했죠. 보급 작전을 펼치기 위해선 쓰시마섬을 출발한 배가 남해에서 서해를 돌아 제물포로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지나는 길목마다 이순신이 지키고 있었죠.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를 당한 왜군은 전쟁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습니다. 보급로가 끊긴 왜군은 난항을 겪었고 마침 명나라까지 개입하며 전세가 꺾였죠.
『세상을 바꾼 음식 이야기』의 저자 홍익희 세종대 교수는 “가루를 낸 육포를 물에 타 마시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바싹 마른 육포가 뱃속에서 불어 공복을 채웠기 때문이다. 육포 한 봉지로 일주일치 식량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몽골군은 기동성이 뛰어난 데다, 전쟁 중 불을 피울 일도 없어 적에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다”고 강조하죠.
이처럼 칭기즈칸은 자신들에 익숙한 육포라는 음식을 전투식량으로 사용하며, 이때까지 존재했던 ‘전쟁=보급’이라는 통념을 완벽히 깨버립니다. 별도의 보급부대가 후미에서 따라오고, 또 이들을 사방에서 호위하는 진군이 필요 없던 거죠. 보급전이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중세 역사에서 보급부대를 없앤 건 당시로선 엄청난 혁신이었던 셈입니다. 이 같은 칭기즈칸의 ‘창조적 파괴’는 몽골을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국가와 기업, 모든 조직의 흥망사를 보면 현실에 안주해 ‘창조적 파괴’를 하지 못한 사례가 많습니다. 과거의 성공과 영광에 심취해 변화를 거부하는 거죠. 모두가 새로운 것을 향해 앞으로 나갈 때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는 건 현상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뒤로 처지는 일입니다. 흐르는 물에서 헤엄을 치우지 않으면 뒤로 떠밀려 가는 것과 같은 이치죠.
원래 코닥도 처음엔 혁신기업이었습니다. 설립자 이스트만은 지속적 투자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데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트만은 기술개발 책임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첫째 원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라, 둘째 사진기술의 미래가 되라는 것이었죠. 그 때문에 코닥은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세손의 연구 결과를 보고받은 당시 경영진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무겁고 기괴한 카메라를 누가 쓰겠냐는 거였습니다. 특히 필름 시장의 독점업체인 코닥 입장에서 필름이 없는 카메라는 제 살 깎아 먹기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3년 후 경영진은 다시 ‘2010년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열린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묵살하고 말죠. ‘카메라=필름’이란 고정관념을 깨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리더라면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해 목말라 있어야 합니다. 정체성을 버리지 않되 끊임없는 혁신을 해야 하죠. 그 시작은 기존의 통념을 벗어던지고 매일 같이 리셋하는 것입니다. 생전의 존 F. 케네디는 “삶의 가장 큰 법칙 중 하나는 변화다. 어제와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놓친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처럼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엔 코닥처럼 과거에 안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보급부대를 없앤 칭기즈칸처럼 기존의 통념을 뒤흔들고 변화에 성공한다면 기존엔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혁신은 리더의 창조적 파괴에서 나온다는 것, 4차 혁명시대에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교훈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세상을 바꾼 칭기즈칸의 육포, 혁신은 ‘창조적 파괴’
'MAMAA, 미래 ,ICBM'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장직캠] '로봇 소피아' 일문일답…"문재인 대통령 만나고 싶어" (0) | 2018.04.10 |
---|---|
제3의 자동차 소유, 서브스크립션 뜬다 (0) | 2018.04.06 |
“어지러운 VR게임은 가라”…흔들림 없는 테마파크 인기몰이 (0) | 2018.04.06 |
'스마트시티 코리아 2018' 13일 코엑스서 개최 (0) | 2018.04.04 |
시장 삼키는 타이탄, 아마존·구글·페이스북 (0) | 2018.04.03 |
인공지능·로봇 시대…사라질 직업 번역가·캐셔, 생존할 직업 연예인·작가 (0) | 2018.04.02 |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아이 가정교육은? (0) | 2018.03.29 |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0) | 2018.03.29 |
실시간으로 문화까지 통역한다? (0) | 2018.03.25 |
최대 230kg 정도의 화물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다는 보잉의 화물 수송용 eVTOL CAV 프로토 타입... (0) | 2018.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