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 끝없는 망망대해.. 외로움의 끝자락에 인간이 보였다
김민순 입력 2017.12.30. 10:37
김승진 선장은 요트 한 척에 몸을 의지해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에서 느낀 ‘불편함’과 ‘외로움’ 덕에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4∼2015년 요트 세계일주 당시 김 선장의 모습. 김승진 선장 제공 |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다로 나간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동력·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해 화제를 모은 김승진(55) 선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항해는 2014년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시작됐다. 요트는 일본 남단을 지나 태평양을 가로질렀고 지구상에서 가장 험한 바닷길이라는 남미 최남단 ‘케이프 혼’을 통과했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타고 천천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통과해 인도양을 건너 동남아시아를 통과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209일 동안 4만1900여㎞에 이르는 바닷길을 헤치고 돌아왔다. 엔진의 동력과 외부의 도움 없이,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오로지 바람과 물결에만 몸을 의지한 채 지구 한 바퀴를 돈 것이다.
길고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변덕스러운 적도 지역의 돌풍, 살이 에일 정도로 추운 극지방의 칼바람, 한 점의 바람도 없어 몇 시간을 머무르기만 해야 했던 무풍 지대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기후대의 날씨와 기후를 경험했다. 하지만 김 선장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던 그 자체가 제일 힘겨웠어요.”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항해는 그에게 지독한 고독과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서울마리나’에서 김 선장을 만났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거대한 도전’, ‘원대한 꿈’이라고 평가한다는 말을 건넸더니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일부러 찾아 달려가려고도 하지 않았고, 굉장한 절실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살아온 자체가 항해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김 선장은 어린 시절 유난히 쏘다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산 중턱까지 내달리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물장구를 쳤다. 담력훈련을 하겠다며 깜깜한 밤에 일부러 산을 오르기도 했다. 이런 성정이 자연스럽게 그를 바다에 던져놓았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바다를 경험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에 가입했고, 독학으로 익힌 기술로 장비를 다루고 수리했다. 졸업할 때가 될 즈음에는 전국대학연합잠수회 회장을 맡아 학생들을 이끌고 전국의 바다 곳곳을 탐사했다.
김 선장이 모험가의 길에 눈을 뜬 건 불혹이 다 된 2001년이었다. 당시 ‘잘나가는’ 독립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안락한 삶을 누리던 그의 눈에 요트가 들어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방문했을 때였다. 수 천 척의 요트가 정박돼 있는 것을 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김 선장은 그때 “‘저기, 저 요트 중에 내 것 하나 있어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다가 진짜 ‘선장’이 된 건 금융위기와 투자 실패 등으로 재산을 모두 날리고 난 2010년이었다. 그는 남은 돈을 손에 쥐고 무작정 크로아티아로 갔다. 거기서 그와 항해를 함께할 ‘아라파니호’를 구입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남은 돈으로 집을 사게 된다면 바다로 나가겠다는 꿈은 영영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있던 재산은 다 날리고 정말 지옥 같던 그 시기,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때 모든 걸 걸기로 한 거죠.”
김 선장은 당시 매일 자신의 삶을 의심했다. 그는 “‘이게 행복인가, 나 정말 행복한 건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답은 아니었다”며 “힘들고 고단할수록, 긴장되는 곳에서 가슴이 두근두근 뛸 때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친구들과의 몇 차례 항해와 바다여행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요트 일주를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다. 요트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오겠다는 김 선장의 담대한 선언을 반대하는 가족은 없었다. 그는 “늘 그랬던 사람이어서, 말려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 선장은 “남들의 시선에서 보면 나는 늘 갑자기 결정하고 엉뚱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여놓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것은 외부에서 바라본 사람의 시각에 불과하다”며 “모험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고 말했다.
모험가라고 하면 담대한 도전, 무모할 만치의 용감함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김 선장이 꼽는 모험가의 1순위 조건은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태풍, 바람, 더위 등 외부의 조건을 공포로 받아들여 회피하거나 그것에 역행하려 들 경우 절대 ‘요트 세계 일주’ 같은 모험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이렇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웅∼’ 하고 바람 소리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지죠. 바다 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느 쪽에서 파도가 올 것인지 예상이 돼요. 그때 날씨에 맞는 준비를 하면 배는 편안하게 파도를 타고 이동합니다.”
모험가가 일반인들과 차이가 나는 지점은 예상치 못한 위험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태도라고 했다. 그는 “나라고 바다가 왜 무섭지 않았겠느냐. 근데 두려움만 느끼면 전체 상황을 보지 못한다.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빠른 상황 판단과 대처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말하는 김 선장의 태도는 편안해보였고, 그만큼 당당했지만 세계 일주 당시 바다 위에서 겪은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목항에서 출발하자마자 배가 고장났어요. 처음에는 엔진이 꺼지더니 뒤이어 풍향계, 풍속계가 고장난 거예요.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돛을 감는 긴 파이프가 고장난 거죠. 이게 돛 크기를 조절하는 장치인데 강한 바람에 감는 부분과 마는 부분 사이의 톱니가 모두 부러지고 만 거예요. 그때 정말 낙담했어요. ‘아, 정말 이거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죠. 다행히 비슷한 물건을 찾아서 성형을 했어요. 그래도 징글징글할 정도로 매일 고장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김 선장이 가장 그리웠던 것은 고장나지 않는 배도, 맛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향수였다.
“옆에서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 지금 나의 상황과 기분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정말 외롭더라고요. 고장난 장비를 고치고 배를 닦고 조이고 고개를 들면 끝없는 바다 위에 나 혼자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요트 위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면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행복해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체면 때문에 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도 혼자 있으니까 맘껏 드러낼 수가 있어요. 나는 내가 태어난 이 별에 대해,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체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 이렇게 많은 부분을 볼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지 않을까요.”
김 선장은 지금 또 다른 모험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이모카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요트 실력자들을 물리치고 상위권에 랭크되는 게 목표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물 문화 운동’도 이끌고 있다.
김 선장은 “사람들이 바다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있듯이 바다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비트코인에 몰리고 있다고 하는데 바다에서 채굴할 수 있는 가치는 비트코인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에 치이고,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좀더 넓은 시각으로 바다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그가 무조건 도전을 권하는 건 아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도전을 강요하는 듯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김 선장은 “왜 어른들은 청년들을 불안한 데 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젊은이들은 늘 장년보다 똑똑했다. 콜럼버스가 하지 못한 모험을 저는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청년들은 이미 기성 세대에 비해 발전했고 그들의 삶 속에서 모험 중”이라는 취지에서다.
“어른들은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훌륭한 틀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해요. 그래서 조기교육을 하고 어린 시절부터 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겁니다. 근데 그게 실패하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할 겁니까. 어른들은 지금보다 적게 참견해도 됩니다.”
글=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사진=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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