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없는 블록체인은 모순” vs “가상화폐는 계속 존재해 와”
정부 `가상화폐-블록체인 분리`에 전문가 의견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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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8 04:40
수정 : 2018.01.18 07:20
“은행처럼 중앙집권 방식 회귀는
블록체인 근본개변과 달라”
“블록체인 이용 상품 다양해질 것
개별 관리는 어려운 일 아니다”
거래소 규제 강화 등엔 한목소리
“中ㆍ日 보다 뒤떨어져 투자 절실”
블록체인 게티이미지뱅크/2018-01-17(한국일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다르다. 가상화폐의 비이성적 투기를 정부가 규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1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가상화폐에 대해선 거래소 폐쇄를 포함한 강력 규제책을 마련하고 가상화폐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육성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가상화폐-블록체인 분리 대응’이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한다. 이를 두고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어 혼란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구분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각각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거래내역 등 정보가 담긴 블록(block)을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공유하면서 블록들을 사슬(chain) 형태로 연속해서 암호화하는 시스템이다. 네트워크로 들어오는 데이터 처리 요청에 대해 참여자들이 합의해 승인하는 것만 통과시키는 구조다. 해킹하려면 정보가 담긴 모든 블록을 위ㆍ변조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론상 완벽한 보안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기술이다.
가상화폐는 블록 생성 과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장치다. 자신의 컴퓨터를 제공해 타인의 거래 내용이 담긴 블록을 유지하고, 데이터 승인 여부를 결정해 주는 참여자들 덕분에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있으니, 이들에게 가상화폐라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가상화폐를 보유하거나 더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네트워크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 즉,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핵심인 셈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가치가 요동치면서 투기 과열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들여다보던 정부가 내놓은 해결 방안이 바로 '가상화폐는 고강도 규제, 블록체인은 적극 육성'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가상화폐 없이도 블록체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블록체인에서 가상화폐 기능을 빼면 시스템 자체가 붕괴한다는 의견과 블록체인을 별도의 암호화 및 보안 기술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서트온의 김승기 대표는 “가상화폐를 없애거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자발적인 블록체인 참여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네트워크 구성이 불가능하다”고 분리 불가능성을 주장했다. 가상화폐 없이도 네트워크를 운영하도록 블록체인 참여자를 인위로 지정하는 방안은 관련 기술 발전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화폐 없는 블록체인은 운영자가 필요하고 이건 결국 은행처럼 중앙집권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블록체인의 근본 개념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박수용 서강대 지능형블록체인연구센터장 역시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는 속도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상화폐 포기는 블록체인 발전 속도를 뒤처지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가상화폐를 게임머니에 비유하는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리니지의 아덴처럼 가상화폐는 존재해 왔고 블록체인이 등장하지 않았어도 계속 존재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가상화폐가 보안에 취약하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위 교수는 “블록체인 없이도 가상화폐는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둘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도 “가상화폐를 시작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상품은 다양해질 것이기 때문에 개별로 떼어내 관리하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사회적 논의와 기술 수준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뒤처져 있어, 합리적 정책 방향을 하루빨리 수립해야 한다는 데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중국의 경우 가상화폐 거래는 금지하면서도 간편결제, 유통 등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수조원씩 쏟아붓고 있다. 일본은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실물화폐에서 신용화폐(신용카드)의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가상화폐로 접어들려는 추세다. 스위스 추크라는 마을이 모든 시민에게 블록체인 신분증을 발급한 건 2016년이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 블록체인 시장이 초기 단계라 선도국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선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가장 시급한 조치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관리를 꼽았다.
박 센터장은 “거래소에 보안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거래소 폐쇄는 지나친 조치이지만, 보안 등 거래소 규제 강화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사 글로스퍼 김태원 대표는 “아직 정부 차원의 명확한 육성 정책이나 가상화폐 개념 정립이 불안정해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시장에 뛰어들기를 머뭇거리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분명한 육성 방식과 지원책을 주문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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