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파워엘리트] 143만 병력을 지휘하는 ‘알루미늄의 달인’
이런 가정을 한 번 해보지요. 한국에서 경찰 경력이 전무한 한 기업인이 갑자기 경찰청장이 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청와대를 향해 “미친 거 아냐” 하는 비난이 쏟아지겠지요. 경찰 내부에서도 그를 청장으로 인정이나 하겠습니까. 한데 중국에서는 실제 이런 일이 존재합니다. 경력이나 스펙보다 실제 능력을 보고 사람을 쓰는 그들의 실용주의 용인술이지요.
주인공은 바로 궈성쿤(郭聲琨·63) 공안부장입니다. 무려 143만 명의 중국 공안 병력을 지휘하는 권력이지요. 그는 실제로 공안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공안 맹인(?)입니다. 대신 알루미늄과 야금 등 금속 업계에서 25년간 잔뼈가 굵은 ‘금속의 달인’, ‘알루미늄의 달인’입니다. 평생 금속을 만지고 광산을 쫓아다니던 그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공안 권력을 꿰찼을까요. 무슨 어마어마한 비사(秘史)가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그의 결단력과 추진력 덕입니다.
그가 공안부장에 임명된 건 2012년 12월.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지 보름 정도 됐을 즈음입니다. 당시 시 총서기는 재야의 능력자를 찾아 공안부를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그와 권력 대척점에 있었던 저우융캉(周永康·2014년 실각) 전 정법위 서기 세력에 대한 합법적 공격수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공안부 내부 핵심 인사는 대부분 저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우융캉의 공안 천하에서 썩을 대로 썩은 공안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도 시급했습니다. 때문에 공안부와 꽌시(關係)가 없고 오로지 개혁을 위해 돌격할 돌격대장이 필요했던 겁니다. 참고로 정법위 서기는 공안과 안전부 사법부, 무장경찰을 총괄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저우융캉은 2002년부터 무려 10년간 공안부장과 정법위 서기 등을 거치며 공안부 내 모든 요직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시진핑 총서기 등극을 막으려 했지요.
시진핑이 뒤지고 뒤져 찾은 인물이 궈성쿤입니다. 당시 그는 금속업계에서 떠나 광시(廣西) 장족 자치구 서기로 있었습니다. 그럼 그 많은 인물 중에 시진핑은 궈를 선택했을까요. 궈성쿤의 인생 역정을 둘러봐야 풀리는 의문입니다.
궈는 장시(江西) 성 싱가(興國)이 고향입니다.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는데 과학과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베이징 과기대를 입학해 관리 과학과 공정(엔지니어링)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1977년 야금부(冶金部) 기술자로 사회 첫발을 내디딥니다. 1979년 그는 장시성 화메이아오(畵眉坳)의 텅스텐 광산 현장 기술원으로 옮기고 이후 화메이아오 텅스텐 광업소장, 장시성 구이시(貴溪)의 은광 서기, 중국 유색금속 난창(南昌) 분사 사장(1993년), 중국 유색금속 총공사 부사장(1997년)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합니다. 이후 2004년 광시 장족 자치구 부서기로 부임하기 전까지 25년간 한 우물, 비철금속만 물고 늘어졌습니다.
중국 최대의 알루미늄 업체인 중국 알루미늄 주식유한회사(中國鋁業, Chalco, 이하 찰코)의 설립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찰코는 중국 내 최대 유색금속 생산업체로 현재 산화알루미늄, 전해 알루미늄, 알루미늄 가공재료 생산에서 각각 전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00년 국가 비철금속 공업국의 주도로 알루미늄 전문 업체를 창립하기로 하고 유색금속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궈성쿤을 창립 준비 위원장으로 낙점했습니다. 궈는 광시(廣西) 투자회사와 구이저우(貴州) 개발 투자회사의 투자를 받아 2001년 2월 찰코를 설립하고 초대 총 경리를 맡습니다. 당시 궈성쿤은 찰코를 뉴욕과 홍콩에 상장시켜 확보한 자금으로 광시 자치구와 구이저우(貴州)에 산재해 있는 알루미늄광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고 했지요. 그리고 해외 진출에 대한 장기 플랜도 탄탄하게 세워놓은 상태였습니다.
국영기업인 만큼 상장 작업은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해외 IR 로드쇼를 앞두고 미국에 9·11테러가 발생하며서 모든 게 헝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시장은 공포감으로 가득했지요.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이런 상황에서 상장할 경우 시가총액이 총자산가에도 못 미칠 것이라면서 상장 연기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궈성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상장을 강행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할 일을 미루면 리더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었지요.
9·11사태 두 달 후인 11월에 그는 예정대로 로드쇼를 강행합니다. 예상대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찰코의 지분을 8% 보유하고 있던 전략적투자 파트너사인 미국의 알루미늄 업체 알코아(Aloca)는 직원 6500명을 감원합니다. 로드쇼 3일째에는 메릴린치가 알루미늄 가격 전망을 대폭 낮추기까지 합니다. 세계 알루미늄 가격은 바닥을 쳤고 회생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궈성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을 시작합니다. 하루에 9번의 투자 회의를 강행할 정도였습니다.
19일 동안의 로드쇼 기간 내내 모든 투자자를 1 대 1로 만나 설득했고 마침내 그해 12월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합니다. 9·11이후 최초의 뉴욕 증시 상장기업이었습니다. 상장 후 그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대대적인 광업투자를 통해 찰코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그는 금속업계의 영웅으로 부상하고 2004년 광시좡족자치구 부서기로 정치권에 진입합니다. 당시 광시 주민들은 경제를 잘 알고 있고, 특히 광시의 주요 산물인 알루미늄에 대한 전문지식을 지니고 있는 궈성쿤을 대대적으로 환영합니다. 광시는 망간 매장량이 중국 1위며, 석회암, 주석, 수정, 납 등의 광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광시좡족자치구 서기에 오릅니다. 그의 전임 서기는 류치바오(劉奇葆) 당 중앙 선전부장입니다. 류와의 인연도 이때 맺어졌지요.
기업 출신답게 그의 실적은 혁혁합니다. 투자와 광산 개발에 열을 올렸는데 2011년 9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광시의 풍부한 지하자원 투자 홍보를 하기도 했지요. 2007년 5885억 위안이었던 광시의 GDP는 2008년 7171억 위안, 2009년 7700억 위안을 기록했고 그가 공안부장으로 떠난 2012년은 무려 1조 3000억 위안(약 215조원)으로 로켓 상승합니다. [출처] [대륙의 파워엘리트] 143만 병력을 지휘하는 ‘알루미늄의 달인’|작성자 차이나랩
시 총서기가 궈를 선택한 데는 여려 이유가 있겠지요. 그중에는 궈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 부주석과 친척 관계라는 확인 안 되는 소문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9·11 이후 최악의 환경에서 찰코를 뉴욕 증시에 상장시킨 그의 뚝심과 추진력을 가장 높이 산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공안부장에 오른 궈성쿤은 시 주석의 기대에 200% 보답합니다. 당 기율위와 함께 저우융캉 체포와 구금, 그리고 공안부 내 저우의 인맥 제거에 핵심 역할을, 그것도 조용하게 해냅니다. 역대 최고 공안부장이라는 평가까지 돌고 돕니다. 좌고우면 않고 능력만 보고 찾아낸 ‘공안 맹인’이 최고 권력의 친위대이자 보루가 될 줄, 시 주석도 몰랐을 겁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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