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진단 어려운 암·치매, '피 한 방울'로 잡아낸다

이현정 헬스조선 기자|2017/04/05 07:30

혈액 속 특정 질환 진단지표 확인 혈액진단 기술 국내서도 속속 개발 심근경색·알츠하이머 등에 적용 "혈액진단 해도 전문가 확진 필수"


 

복잡한 정밀 검사 없이 혈액 한 방울로 암이나 치매 등을 진단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를 '혈액진단'이라고 하는데, 소량의 혈액(1㎖의 최대 500분의 1 수준)으로 평균 10분 이내에 환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질환이나 미래에 발생 가능한 질환을 진단한다. 2007년 글로벌 체외진단(혈액이나 DNA 등 인체로부터 채취한 것을 분석해 질병 진단과 치료 예후 평가하는 것) 시장 규모는 약 29조원으로 연평균 7.3%씩 성장해 올해 7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채승 교수는 "현재 국내외에서 개발되고 있는 혈액진단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 등을 빠르게 발견해 환자의 생존율은 높이고 의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혈액진단은 소량의 혈액을 레이저 등 특수 기기로 분석해 환자가 현재 앓고 있는 질환이나, 환자에게 발생 위험이 있는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이다. 사진은 응급실에서 혈액 분석으로 심근경색 발생 여부를 진단하는 모습.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혈액으로 심장질환부터 癌까지 진단
현재 혈액 한 방울로 진단이 가능한 질환은 심뇌혈관질환·갑상선질환·간질환·전립선질환·만성질환 등이다. 검진 기기의 특수 센서에서 전기나 특수 형광물질 등이 나와 혈액 속 특정 질환의 생물학적 지표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단한다. 체외진단기업협의회 이정은 운영위원장은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혈액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암 진단의 경우 영상장비와 조직검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암세포가 일정 크기 이상으로 커지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워 뒤늦게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임채승 교수는 "혈액진단 기기를 이용하면 진단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소량의 혈액으로 가정이나 동네 병원 등에서 빠른 시간 내에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유방암 진단 기술 개발돼
아직 상용화되지 않아 병의원에서 사용할 수 없지만,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혈액진단 기술로 진단 가능한 질환은 다음과 같다.

▷심근경색=심근경색은 심장 조직이 점차 괴사돼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어 빠른 진단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장재성 교수팀이 개발한 진단 기술은 심장 근육이 괴사할 때 혈액 속에서 흘러나오는 단백질인 '트로포닌Ⅰ'을 감지하는 센서로 1분 이내에 심근경색을 진단한다.

▷알츠하이머=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조기진단과 빠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 2014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김영수 선임연구원팀은 알츠하이머 발생 위험이 있는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인터류킨'이라는 단백질이 적다는 점을 착안해, 혈액 내 인터류킨 농도를 통해 알츠하이머 발생 가능성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실제로 동물 실험과 100여 명의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혈액 체외검사를 통해 93% 정확도로 치매 환자를 구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유방암의 경우 자각증상이 거의 없고, 특히 한국인은 지방이 적고 유관이 많은 치밀유방이기 때문에 유방촬영술로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해 국립암센터 분자영상치료연구과 조영남 박사가 개발한 체외진단 기술은 머리카락의 1만분의 1(1나노미터) 굵기의 끈 모양 '나노와이어'를 이용한다. 나노와이어가 혈액 속으로 들어가 적혈구와 백혈구 사이에서 암세포를 잡아낸다. 혈액을 이용하기 때문에 유방 형태와 관계없이 진단이 가능하고, 암세포가 자라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도 암 발생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빠른 진단 위한 보조 기구로 사용해야
현재 개발된 혈액진단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질환을 빠르게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를 통한 진단을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영남 박사는 "우리 몸에는 5L에 달하는 혈액이 있는데, 암세포나 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물질이 혈액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며 "이 때문에 극소량의 혈액만 가지고 질환을 확진하는 데는 정확도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채승 교수는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 여부를 파악한 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듯, 혈액진단 기기 역시 질환 조기발견을 위한 하나의 보조적 도구로 사용한 후 전문가의 진단이 추가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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