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8] 웃음보따里 주민 여러분, 오늘은 얼마나 웃었나요
- ▲ 홍헌표 디지털뉴스부 차장
웃고 싶어 모인 40~70대 회원 74명 절반은 암 투병 경력
공무원·교수·회사원 등 직업도 사연도 다양하지만
오랜 친구같이 손뼉 치고 게임하며 몸과 마음의 병 치유
얼마 전 감투를 하나 썼습니다. '웃음보따里(리) 이장님'입니다. 웃음보따里는 4주 전 실렸던 제 칼럼 '온몸 흔들며 함께 웃음 나눌 분 없나요'를 계기로 만들어진 동아리입니다.평소 아무리 웃으려 애를 써도 원하는 만큼 안 되기에, 가볍게 차 한잔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신나게 웃는 소모임을 꾸려볼 작정이었습니다. 많아야 10명 정도일 거라는 제 예상과 달리 1주일 만에 5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지금은 회원 수가 74명으로 늘었습니다. 회원들이 제게 '웃음보따里 이장님'이라는 감투를 씌워준 7월 말 첫 모임에는 50명이 참석했고, 지난 9일 2차 모임에는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38명이나 모였습니다.
회원들 연령은 40대부터 70대까지이고 여성이 조금 더 많습니다. 암으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분이 절반 정도 됩니다. 이들은 웃음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암을 이겨내고 있는 분들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큰 질병은 없지만 웃음이 너무나 고프다"며 참가했습니다. 공무원, 교수, 직장인, 가정주부, 웃음치료 전문가, 사장님 등 직업도 사연도 다양합니다.
72세 박모씨는 작년 12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난들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자연법칙에서 예외가 돼 죽지 않는단 말인가. 좋다 언제든 오라. 기꺼이 죽어주겠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오래도 살았기 때문이다"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한 달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았더니 암세포의 80%가 죽어 있어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했답니다. 한 50대 후반 여성은 웃음보따里에 참여하면서 "몇 년간 너무나 웃음에 인색해져서, 우짜던지 웃고 살려고 해도 어느 사이 굳은 얼굴이 되는 내가 밉상스럽기만 합니다"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웃자는 모임이니 당연히 시끌벅적합니다. 행사 진행에 능숙한 몇 사람이 주도하지만 사전 각본 없이 참석자 모두가 자발적으로 행사를 이끌어갑니다. 우스갯소리를 적어 와 읽는 분, '건강 박수' 요령을 가르치는 분, 초등학생처럼 짝짓기 게임을 시키는 분도 있습니다. 2차 모임 때는 짧은 명상 시간도 함께 가졌습니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함께 참석하는 60~70대 부부도 꽤 있습니다. 이분들은 인생을 참 멋지게 산다고 느꼈습니다. 3차례 모임의 후일담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웃음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만났으니 서로에게 상처를 줄 일이 없습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오래 사귄 친구처럼 편안한 표정들입니다. 회비를 별도로 걷지는 않습니다. 식사비는 각자 내고 그날 들어간 경비는 참석자들이 똑같이 나눠 냅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잔심부름을 하고 싶다는 회원들로 임시 집행부도 꾸렸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는 한 번도 못 나왔지만 대구에 사는 회원도 있으니, 웃음보따里 지부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웃음보따里가 생겨서 '행복 바이러스'가 마구 퍼져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시사 잡지에 오랫동안 글을 썼던 성모(여)씨가 며칠 전 멋진 시(詩)를 하나 써 주셨습니다. 여기에 곡을 붙여서 웃음보따里의 대표 노래로 삼으려 합니다.
'우리는 아픔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 마음의 아픔도 육신의 아픔도 모두 지나고, 상처 입은 자리에는 어느새 새 살이 돋았어요.
눈을 떠서 세상을 봐요. 안 보이던 들풀이 보이잖아요. 마음을 열고 상대를 봐요. 그의 눈에 외로움이 보이잖아요.
고개 들어 하늘을 봐요. 어제의 먹구름은 사라졌네요. 푸른 하늘 뭉게구름 속, 눈부신 햇살이 웃고 있어요.
이제 우리도 웃고 살아요. 어제를 잊어버린 하늘처럼, 그늘진 곳에는 비단 이끼 키우면서, 소리 높여 소리 높여 웃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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