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년 10월, 서울에 살고 있는 김매경 씨의 나이는 50세지만 신체 나이는 30세에 불과하다. `자가포식(Autophagy·오토퍼지)` 현상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인류가 자가포식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다양한 질병 치료도 가능해졌다. 암은 물론 알츠하이머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약까지 개발됐다. 자가포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체내에 쌓이는 노폐물은 `약물전달시스템`을 이용해 제거한다. 분자 스스로 움직이는 `분자기계`가 상용화되면서 이 같은 약물 개발이 가능해졌다. 약물을 작은 캡슐 안에 넣고 이를 섭취하면 캡슐이 혈관을 따라 스스로 움직이다가 노폐물이 쌓여 있는 곳을 인식한 뒤 적당한 곳에 약물을 투하한다.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체내 노폐물 제거가 가능해 자가포식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평균수명은 급격히 늘어났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삶이 가능해지면서 출산율은 줄었지만 정년은 늘어났다.
2016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가 끝이 났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자가포식을 발견한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에는 1·2차원에서의 물질 상태를 연구한 데이비드 사울레스 미국 워싱턴대 교수(82), 마이클 코스털리츠 브라운대 교수(74), 덩컨 홀데인 프린스턴대 교수(65)가 선정됐다. 노벨 화학상에는 분자기계를 고안한 장피에르 소바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72), 프레이저 스토더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74), 베르나르트 페링하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65)가 각각 뽑혔다.
올해 노벨 과학상의 공통점은 당장 현실에서 상용화와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노벨상 위원회가 만든 수상자 업적을 봐도 상용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며 "인간의 호기심과 연구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자기계 분자기계는 분자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뒤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 상태다. 분자기계가 상용화되면 약물을 운반해 암과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가 단순히 이론이나 기초연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소개한 김매경 씨 사례와 같은 일이 20년 뒤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오스미 교수가 1988년 발견한 자가포식 현상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키워드`로 꼽힌다.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세균에 감염되면 세포 내에 불필요한 단백질 찌꺼기가 쌓인다. 세포는 이를 스스로 제거하는데 이를 자가포식이라고 한다. 자가포식 기능이 고장나면 세포 노폐물이나 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면서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단백질 찌꺼기가 많이 쌓여 세포 밖으로 나오면 암이 발생할 수 있고, 뇌에 쌓이면 치매나 파킨슨병의 원인이 된다. 세포 노화와도 관련이 있다.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현재 질병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자가포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자가포식을 조절하는 다양한 신약이 개발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분자기계도 마찬가지다. 분자를 엮어서 만든 분자기계의 현 수준은 빛을 받아 앞으로 이동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기문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단장(포스텍 교수)은 "분자기계의 경우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20년 뒤면 상용화돼 공상과학(SF)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혈관을 따라다니다가 막힌 곳을 뚫어주거나 암세포가 놓여 있는 곳에 항암제를 정확히 떨어뜨릴 수 있는 약물전달시스템 개발도 가능하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1·2차원 물질현상 규명은 일반적인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물질`을 설명하고 제어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전도체다. 초전도체는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도체를 말한다. 영하 273도와 같은 극저온에서는 전자들이 쌍을 이뤄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움직이는 초전도체나 원자들의 물리적 상태가 모두 같아져 마찰이나 점성이 없어지는 초유체(超流體)가 된다. 초전도체는 오늘날 자기공명영상장치나 자기부상열차 등에 활용되고 있으며 향후 양자컴퓨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현재 컴퓨터는 정보를 전자가 없고 있음을 0 또는 1로 표현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중첩된 상태까지 표현해 지금 컴퓨터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의 계산이 가능하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1만년 동안 수행해야 하는 작업을 단 1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
왼쪽부터 자가포식 현상, 양자컴퓨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1·2차원 물질현상 규명을 통해 양자컴퓨터 개발이 가능해졌다. 사진은 구글 디웨이브가 만든 양자컴퓨터의 모습으로 아직은 초기단계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1만년 동안 해야 하는 계산을 단 1초 만에 해낼 수 있다. 자가포식 현상은 세포가 영양소 결핍 상황이 됐을 때 자신의 단백질을 분해하거나 불필요한 세포 성분을 스스로 제거해 에너지를 얻는 활동을 말한다. 사진은 자가포식 현상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18개월마다 메모리 크기가 두 배씩 커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점점 늘어나는 데이터 처리를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슈퍼컴퓨터로도 처리할 수 없었던 많은 빅데이터 계산이 가능해진다.
기상 현상에 대한 예측은 물론 DNA를 비롯한 인간 신경망 분석, 광대한 우주분석까지 가능하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마음대로 누비려면 충돌을 막기 위한 차량 간 간격은 물론 교통시스템을 분석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하다. 기존 컴퓨터로 이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양자컴퓨터가 실현된다면 충분히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