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크림 바르지 마세요.”
2주 전인 4월 30일, 얼마 전부터 극심해진 지루성피부염 때문에 피부과를 찾았다. 전문의가 한 말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던 정보와 정반대 되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썬크림은 4계절 내내 매일 발라야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덧발라야 한다”
“형광등에도 얼굴이 탈 수 있으니 밤에도 발라야 한다”
“썬크림 하나만 잘 바르면 피부노화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썬크림 관련 기존 상식은 이랬다. 슬슬 피부노화를 걱정할 나이인 30대 친구는 “자기 전에 수분크림은 안 발라도 썬크림은 꼭 바르고 잔다”고 할 정도로 썬크림 맹신자였다.
“썬크림 부작용 많다”
그런데 서울 돈암동에 있는 한 피부과 전문의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매일 썬크림 바르지요?”라고 묻고는 “그렇다”고 답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홍보성 기사로 오인할 수 있어, 해당 병원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썬크림에 대한 홍보가 너무 지나칩니다. 그게 다 화장품 회사의 선전이에요. 매일 바르라고 하죠? 심지어 방송에서는 잘 때도 바르라고 하는데, 그거 다 틀린 말이에요. 썬크림은 말 그대로 자외선 차단제입니다. 자외선을 차단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바르면 되는 거예요.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정도의 자외선은 필요한 겁니다. 썬크림으로 인한 부작용이 많아요. 매일 바르지 말고, 등산을 하거나 해수욕을 하거나 할 때, 장시간 야외활동을 할 때만 발라야 합니다.”
이 의사의 말은 정말일까? 그렇다면 썬크림의 정체는 뭘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만능 크림’일까? 아니면 매일 바르면 안되는 ‘부작용 크림’일까?
‘겟잇뷰티’ 1~4위 썬크림은 뭘로 만들어졌나
유명 화장품 프로그램 ‘겟잇뷰티’에서 ‘가장 좋은 썬크림’으로 꼽힌 인기 제품 4개의 성분을 살펴봤다. 1~4위 제품(브랜드)은 △브라이트닝 업 선 SPF42 (닥터지) △앱솔루트 UV마스터 100+(오휘) △내추럴 틴티드 썬크림(아로마티카) △아넷사 마일드 페이스 선스크린 SPF46(시세이도)이다.
이들 제품을 기준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 알러지 성분’ 혹은 ‘화장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나 ‘화장품에 사용상의 제한이 필요한 원료’로 정하고 있거나 △미국 비영리 환경시민 단체 EWG(The Environmental Working Group)의 화장품 유해성분 확인 사이트 '스킨딥(Skin Deep)'에 ‘보통 위험’(Moderate hazard) 이상으로 등록돼 있거나 △명지전문대 뷰티학과 구희연 외래교수가 쓴 책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의 ‘가장 피해야 할 성분 20가지’에 포함된 성분 중에서 어느 것이 들어있는지를 살펴봤다.
‘닥터지’의 ‘브라이트닝 업 선 SPF42.’
놀랍게도 4가지 제품 중, 이 기준에 속한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썬크림은 겟잇뷰티에서 1위를 차지한 ‘닥터지’의 ‘브라이트닝 업 선 SPF42’이었다. 이 제품에 있는 60여가지 성분 중 문제가 될 수 있는 성분은 다음과 같다.
△탈크 △향료 △벤질알코올 △사이클로펜타실록산 △사이클로헥사실록산 △디메치콘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 △에칠헥실살라실레이트 △징크옥사이드 △PEG-10디메치콘 △PEG-10 △PEG-8 △PEG-1-PEG-0라우릴글라이콜에텔 등.
“화장품 성분 탈크 때문에 난소암… 645억 배상하라”
이름도 어려운 이들 화학 성분 중 하나인 ‘탈크’와 관련해, 미국에서 충격적인 판결이 있었다. 미국 미주리주 연방법원은 5월 2일(현지시각) “존슨앤존슨(J%J)의 파우더에 쓰인 탈크 때문에 60대 여성이 난소암에 걸렸다”며 무려 5500만달러(645억원)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존슨앤존슨 측은 “탈크의 안전성을 인정한 지난 30년간의 학계 의견과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항소할 뜻을 밝혔다.
탈크는 광석의 한 종류로 화장품, 페인트, 농약, 그리고 베이비 파우더 등에 사용된다. 대한화장품협회는 탈크를 두고 “탈크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게 없다”면서 “다만, 원료를 공급할 때 발암성 물질로 알려진 석면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은 탈크를 사용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탈크는 4위 제품인 ‘시세이도’의 ‘아넷사 마일드 페이스 선스크린 SPF46’에도 들어 있다.
‘시세이도’의 ‘아넷사 마일드 페이스 선스크린 SPF46’
“향료… 여드름 악화시키고 피부염 유발”
글자만 보면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향료’ 또한 피부염이나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다.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서동혜 원장은 “향료 같은 화장품 성분이나 미세 파우더를 바르면, 모공이 막혀 여드름이 악화될 수 있고, 접촉성 피부염이 생길 수 있다”고 ‘헬스조선’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서 원장은 “그렇게 생긴 여드름은 성인 여드름으로 발전하거나, 흉터로 남아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사이클로펜타실록산 △사이클로헥사실록산 △디메치콘 등은 실리콘 성분으로, 물에 녹지 않는 특성 때문에 화장품에 자주 쓰인다. 하지만 동시에 피부가 숨 쉬는 것을 막기도 하는 탓에 염증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오휘’의 ‘앱솔루트 UV 마스터 100+’
‘오휘’ 썬크림에는 알러지 성분
겟잇뷰티에서 2위를 차지한 ‘오휘’의 ‘앱솔루트 UV 마스터 100+’에도 △사이클로펜타실록산 같은 실리콘 계열 성분이 들어있다. 식약처가 지정한 ‘화장품 알러지 성분’인 △리모넨 △시트로넬올 △리날룰 등도 들어 있다. 나머지 3개 썬크림에는 이 3가지 성분이 들어 있지 않았다.
3위 제품인 ‘아로마티카’의 ‘내추럴 틴티드 썬크림’은 EWG 스킨딥 기준, 위험도가 가장 낮은 1단계를 받았다. 스킨딥에 따르면, 이 썬크림을 만든 성분들은 전부 ‘낮은 위험’(Low hazard)의 1단계 혹은 2단계 물질들이다. 단, 스킨딥이 이 제품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데 참고한 자료는 ‘제한적’(Limeted)이라고 표시돼 있다.
스킨딥 유해성 검사 결과.
“썬크림에 있는 성분 자체가 피부를 망치는 것”
“썬크림을 바르지 말라”고 경고한 돈암동의 피부과 의사는 13일 다시 병원을 찾은 기자에게 “썬크림 안바르고 있죠?”라며 다시 한 번 “썬크림을 바르지 말라”고 말했다. 의사는 “썬크림에 들어 있는 성분 자체가 피부를 망치는 것들”이라면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느 정도의 햇빛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화장품협회는 썬크림에 대해 “자외선 차단 제품은 사계절 내내 사용해야 한다”면서 “피부 노화의 50% 이상이 자외선 때문으로, 사계절 내내 자외선 차단제품을 바르는 것이 젊은 피부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주장이 맞는 것일까? 의사의 권유대로, 2주 동안 썬크림을 바르지 않고 생활해봤다. 2주가 지나니, 보름 전에 비해 피부가 많이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병원에서 맞은 소염제 계열의 주사와 스테로이드 성분의 연고 덕이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썬크림을 바르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