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리더십] 생각으로 세상을 바꾼 스티브 잡스

극단적 경험론자가 된 주교 조지 버클리

한 사람이 갑자기 길에 있는 돌을 발로 세게 걷어차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발가락이야. 나는 이렇게 아픈 데 이래도 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같이 친구하기 힘들구먼.” 뻔히 눈에 보이는 ‘돌’이라는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친구에게 온몸으로 항변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답합니다. “자네를 아프게 만든 것은 그 돌이 아니라 그 돌에 부딪쳐 느끼는 고통일세. 돌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은 없는 걸세. 자네에게 현재 이 시점에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네에 발에 강하게 부딪친 후 자네가 느끼는 있는 그 고통뿐이라는 사실일세.”

이 정도면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는 극단적 경험론의 입장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극과 극은 통하듯이 이 극단적 경험론의 귀결은 바로 관념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지각하는 생각, 즉 관념밖에 없습니다. 바로 조지 버클리라는 영국 철학자가 주장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에세 에스트 페르키피(esse est percipi)’의 의미입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것만 존재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케팅 전쟁터는 진열대가 아니라 고객 인식

또 한 번은 버클리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버클리 씨,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지각하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고 지금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당신의 말이 옳다면 현재 여기에 당신의 부인이 없는데, 그러면 당신의 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이 사람의 말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클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 부인을 지각해 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말 절묘한 반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만 존재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지각되는 것만 존재한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하나님을 믿는 주교가 편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런데 버클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이러한 불완전성을 보완해 주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영국의 경험론을 존 로크로부터 이어 받아 그것을 더욱 극단화해 데이비드 흄에게로 전달한 영국의 철학자 버클리 주교의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진정으로 우리가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그 반대로 우리가 지각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없는 걸까요.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십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버클리의 주장은 물질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인식되는 만큼만 존재하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영국 혈통의 버클리는 아일랜드 킬레린에서 1685년 태어납니다. 나이 15세에 더블린대에서 수학합니다. 외부 세계는 우리 관념의 소산이라는 그의 철학 이론은 20세부터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대법원장의 딸과 결혼한 후 1728년 미국에 갑니다.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 버뮤다에 대학을 세우려고 영국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영국 정부로부터의 지원이 끝내 도착하지 않자 가지고 있던 책과 농장을 예일대 도서관에 기증합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명문 주립대 버클리대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집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두 다리를 다 절단한 환자가 있습니다.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른 쪽 엄지발가락이 너무나 가려워요. 나 혼자서는 그것을 긁을 수 없네요. 누가 좀 대신 긁어 줄 수 있나요.” 여러분이 그 환자 옆에 있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환자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절실하게 자신의 극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버클리의 포인트는 바로 그 순간 그 환자에게 물질적인 발은 없지만 그 엄지발가락 가려움증이 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광고와 홍보를 하고 싶습니다. 현대판 버클리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러한 기대치를 계속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기업에 대한 고객의 지각은 변하고 맙니다. 여론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도 사람들의 이미지가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홍보나 이벤트로는 부족합니다. 계속 수준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고객들의 인식은 계속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마케팅의 전쟁터는 마트의 진열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두뇌 속을 누가 더 빨리 많이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십니까. 물질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바꿔야 합니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생각하는 인문학 파워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십니까. 물질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바꿔야 합니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바꾸어 놓을 때 그가 실제로 했던 것은 이해 당사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음악 파일을 불법 다운로드 받기 시작하자 음반 회사 사장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법 다운로드를 못하게 할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는 부정적 답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때 긍정적인 생각을 한 단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내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입니다. 애플은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성공입니다. 잡스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잡스는 사람의 생각을 생각하는 인문학을 중시했던 겁니다.

관련 당사자들의 생각을 조정하고 바꾸도록 소통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핵심 요체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도록 소통하는 데 귀재였습니다. 모든 당사자들이 자신의 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데 동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믿도록 만드는 소통을 한 것이 성공 요인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의 총합이 바로 조직 문화입니다. 현재 구성원 때문에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가 모바일 폰 시장에서, 음반 시장에서 일거에 올라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술적 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소통을 해낼 수 있느냐가 구성원들이 어떤 식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그 회사의 총체적 그림입니다. 리더는 바로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 조직 문화를 조직원 생각의 총합보다 더 크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연봉과 보너스, 복지와 작업 환경이 조직원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물질적 요건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조직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세상을 지배한다.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소통을 하라. 이것이 버클리에게서 배우는 소통 리더십입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khc6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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