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엔 무료한 퇴직자, 지금은 자전거 세계여행가

[중앙일보] 입력 2015.06.05 01:01 / 수정 2015.06.05 01:21

북남미 종단 계획 중인 강철우씨
국정원서 30년 … 허탈감 밀려와
선배 권유로 실크로드·유럽 순례
하루 100㎞ … 큰 세상 보며 공부
낯선 이에 신장 기증 용기도 생겨

2012년 자전거를 타고 중국 신장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 남부 초입을 달리는 강철우씨.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이다. [사진 강철우]

내 이름은 강철우(62·사진). 퇴직 공무원이다. 지난 2010년 30년간 몸담았던 국가정보원을 떠났다. 처음엔 솔직히 시원했다. 수십 년의 국정원 생활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했으니까. 그러나 머지않아 허탈감이 몰려왔다. 퇴직생활은 무료했다. 매일 나가던 직장이 그리웠다. 딱히 노후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먼저 퇴직한 선배를 만났다. 등산과 여행의 달인인 선배는 무력감에 빠진 내게 “자전거를 타라.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시기였으니까. 퇴직은 했어도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강원도 화천·양구의 산기슭을 누비며 하체를 단련했다. 야영 훈련도 빼놓지 않았다. 강원도 밤하늘의 별을 세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날 은하수를 상상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훈련을 통해 인내와 끈기를 배웠다. 페달을 밟으면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고 2012년 드디어 1차 자전거 여행 날짜가 잡혔다. 첫 여행의 컨셉트는 ‘실크로드’.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해 시안을 거쳐 미얀마·인도로 뻗어가는 4500㎞ 거리의 길을 자전거 한 대에 의지해 4개월 동안 달렸다. 하루 100㎞를 이동한다는 계획만 세웠다. 달리다 지치면 야영을 했고, 마을이 나오면 숙식을 해결했다.

관광도 빼놓지 않았다. 책으로만 봤던 세상을 다시 경험했다. 영화 속 현장을 확인하고 유적지를 둘러봤다. 자전거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2차 여행을 계획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럽 스페인까지라는 목표를 다시 세웠다. 2014년 5월 파키스탄에서 시작된 2차 여행은 그해 9월까지 4개월 반이나 이어졌다. 낯선 나라 이란에선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기도 했다. 바로 한류 때문이었다. 프라이드가 국민차고 드라마 ‘주몽’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나라. 그들의 따뜻함을 뒤로하고 여행은 이어졌다. 터키를 거쳐 유럽까지 자전거 여행은 순조로웠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아테네에서 동행한 선배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2차 여행은 로마에서 마무리됐다.

 한국에 돌아온 난 지난 4월 29일 삼성서울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장기기증 때문이다. 나를 두고 올해 2번째 ‘순수 신장기증인’이라고 했다. 순수 신장기증은 혈연이나 친분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콩팥을 떼 주는 것이란다. 2차 여행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한 여성의 딱한 사연을 접했다. 아내가 만류했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주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느끼니까.

나는 이제 봉사활동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퇴직 전 회사에서 양지나눔회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경험도 있고, 2002년엔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다. 내가 자리 잡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수술 회복 중인 난 내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알래스카에서 남미 칠레까지 1만2000㎞를 종단하는 3차 자전거 여행이다. 콩팥 하나를 떼 줘도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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