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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조진호 감독은 "우리 팀엔 간절한 선수들이 많다. 이것이 원동력"이라며 정신력이 대전의 돌풍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 이민성 기자 |
대전 시티즌이 달라졌다. 대전은 지난 몇 년간 K리그 클래식 강등권을 헤맸다. ‘축구 특별시’란 별명이 무색했다. 그런데 2014년 K리그 챌린지의 화두는 단연 ‘대전’이다. 조진호(41) 감독은 수석코치였던 지난해 시즌 막판 지휘봉을 넘겨받아 좋은 성적을 거뒀다. 5승 2무 1패. 대전을 강등권에서 구해내진 못했지만 팀에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대전은 올시즌 챌린지에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대행'이란 꼬리표를 떼어버린, 그래서인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인 조진호 감독을 만나 그와 대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조 감독과의 일문일답.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대전의 성적이 좋다. 비결이 뭔가. ▲ 저비용 고효율이다. 우리 선수들은 대체로 어리거나, 아니면 축구를 하면서 한 번쯤 쓴맛을 봤다. 몸값이 높은 선수들이 아니다. 그런데 동계 훈련을 하다보니 다른 팀 선수들과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대개가 볼을 세밀하게 찰 줄 안다. 자신감만 불어넣었다. 그랬더니 잠재력이 드러나고 있다.
- 대전의 돌풍을 예상한 이는 별로 없었다. 이렇게 잘할 줄 알았나. ▲ 2월 즈음부터 자신감은 있었다. 안산 경찰청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경기 내용이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다음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중국 팀과 경기를 했는데 1-1로 비겼다. 감이 왔다. 우리가 우승권까지는 못 들더라도 충분히 경쟁은 되겠다고 생각했다.
- 2009년 제주유나이티드, 2013년 대전 시티즌에서 감독 대행을 두 번이나 거친 독특한 이력이 있다. ▲ 제주에선 시즌을 마무리하는 상황이었다. 차기 감독에게 잘 넘겨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대전에선 달랐다. 8경기나 남아있었다. 어떤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정리돼 있었다. 코치도 꽤 오래 했고 동기인 최용수 FC서울 감독도 잘하고 있으니 이제는 때가 됐다고 여겼다.
- 구단이 바로 감독직을 주지않았다. 서운하진 않았나. ▲ 선수들이 '감독님'이라 안 불렀다. 선생님, 줄여서 ‘쌤’이라고 불렀다. 주위에서도 대행이란 직책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다고 아쉬운 건 없었다. 정식이든 대행이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팀을 잘 만들다보면 자연스레 대행 꼬리표를 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10여년 동안 코치로 지내면서 많은 감독님과 함께했다. 무엇을 배웠나. ▲ 부천 시절 정해성 감독님은 승리욕이 굉장히 강했다. 제주 알툴 감독님은 세밀한 플레이, 반복적인 훈련이 인상 깊었다. 올시즌 강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팀을 만들어냈다. 대전 김인완 감독님에겐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열정을 배웠다.
- 롤모델로 삼는 지도자는. ▲ 국내 감독님들도 계시지만 요즘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이 눈에 띈다. 선수 때 굉장히 터프했던 걸로 기억한다. 감독으로도 카리스마가 있더라. 선수들과 함께 뛴다. 가만히 앉아 있질 않는다. 축구 자체도 빠른 축구라서 내 입맛에 잘 맞는다.
- 평소 유럽 축구를 자주 보나. ▲ 축구 유학을 한 번도 못 가봤다. 그래서인지 유럽 축구 보는 걸 좋아한다. 직접 가서 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TV로 자주 본다. 전술이나 세트플레이 등을 머리로 숙지하고 메모한다. 선수들에게도 권장하는 편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선 칠레의 경기 내용이 인상 깊어 선수들에게도 추천했다.
-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유독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나. ▲ 전남 코치로 있을 때 윤석영과 이종호가 기억에 남는다. 석영이는 해외에 진출할 때, 월드컵에 나갈 때 등 중요한 일이 생기면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 인성이 참 좋은 선수다. 종호는 아끼는 제자다. 재능이 매우 좋다. 작년에도 ‘종호야 힘 빼라’라고 짧게 문자를 보냈다. 제주에서 함께한 조용형이 지금 팀을 찾고 있다. 슬쩍 대전으로 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감사합니다’란 애매한 문자로 선을 긋더라.
- 선수시절 부상이 잦았다. 대표팀 감독과 마찰도 있었다. 당시 경험이 지도자로서 어떤 도움이 되나. ▲ 내가 겪은 걸 안 겪게 하려고 한다. 일단 조금만 아파도 무조건 쉬라고 한다. 확실하게 회복하고 나오라는 뜻이다. 어차피 경기 감각은 남아있으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선수와 관계는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가끔 지도자와 선수는 각자의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이럴 때 오래 끌지 않고 다 털어놓아야 한다. 지난 1995년 2월 올림픽대표 시절 비쇼베츠 감독과의 불화로 스스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일은 내 일생일대의 실수다. 지금 제자들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
- 진정한 지도자상은 무엇인가 ▲ 융합과 책임이다. 대전은 남들이 보기에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아니다. 이름값 없는 선수들이 하나로 뭉쳤기에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성적이 좋지만 언제든 안 좋아질 수 있다. 그때 감독은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감독은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 앞으로 대전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질 것 같다. ▲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전을 대하는 상대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시즌 초엔 조금 얕봤던 모양이다. 대부분 팀이 선수비 후역습으로 나온다. 골을 넣기가 쉽지 않다. 골 결정력에 대한 부분을 더 가다듬을 것이다. 한 골이 들어가면 상대도 마냥 잠그고 있을 순 없다.
- 올시즌 목표는 승격인가. ▲ 당연하다. 승점상 크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경기는 많이 남아있고, 시즌은 아직 안 끝났다. 축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스포츠다. 돌다리도 두드려 봐야 한다. 선수들에게도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수시로 충고한다. 끝까지 이 기세를 이어서 클래식으로 꼭 복귀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