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고모델이 강호동에서 신동엽, 김원희 등 4인방으로 바뀐 ‘이가탄’의 원래 이름은 ‘이가튼’이었다. 명인제약은 ‘튼튼하다’는 의미를 살려 제품이름을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식약청에서 품목허가를 진행하던 중 느닷없이 이가탄으로 바뀌었다. 김영찬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상근 부회장(당시 담당 공무원)이 즉석에서 변경을 제안한 것. ‘튼’보다는 ‘탄’이 훨씬 더 힘이 있고, 부르기도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름 덕분인지, 91년 발매 이후 이가탄은 일반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연 매출 200억 원을 기록, 잇몸시장 양강구도를 구축하면서 명인제약 대표상품으로 성장했다.
한 순간에 회사 이름이 바뀌기는 ‘BBQ’도 마찬가지다. BBQ는 Best Believable Quality(가장 믿을 수 있는 품질), 즉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처음 브랜드 네이밍 회의에서 나온 이름은 ‘BB’였다. 주요고객인 아이들에게 친숙한 캐릭터 느낌을 주자는 의견이 많아 최종 결정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발음이 너무 약하고, 중간에 끊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탈락했다.
그 외에도 BBC는 영국 방송사 이름과 같다는 점에서, BFQ는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많은 시간 격론을 벌인 끝에 미국에서 바비큐를 의미하는 BBQ로 최종 결정된 것. 발음도 쉽고 ‘큐’자 마무리가 친근감과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BBQ역시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데 이름이 한 몫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반대로 제품발표 당시 네이밍에 실패해 고전을 치른 경우도 많다. 한 순간 사라지거나 중도하차 운명을 맞이하기도 한 것. 국산 자동차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중형세단 ‘SONATA’가 대표적이다.
브랜드 전략 차원 접근이 바람직
85년 첫 모델을 발표한 이 차의 최초 한글표기는 ‘소나타’ 였다. 그러나 경쟁사를 중심으로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다. 우스개 소리는 삽시간에 퍼지면서 결국 차 이름을 ‘쏘나타’로 전격 변경했다. 쏘나타는 우여곡절 끝에 위기를 모면, 햇수로 27년째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미주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이 차는 지난 5월 20일 현재까지 모두 6세대 모델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누적판매 6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제품은 물론 기업 운명까지 가를 수 있는 ‘네이밍’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서상희 네임넷 대표는 “네이밍은 단순히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의 이름을 짓는 차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보는 것이 옳다. 작게는 하나의 제품브랜드에서 크게는 애플이나 버진처럼 기업을 대표하는 제품이자 철학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이 브랜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소비자 인식의 시발점에서 네이밍을 살펴보라는 의미다.
네이밍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주제가 쉽고, 명확하게 설정돼야 한다. 예를 들어 풀무원의 생과즙 쥬스 ‘I’m Real’과 같이 고객들이 한 번 만 들어도 제품의 기능을 쉽게 이해한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최고경영자가 최종 결정
다음은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우콤의 개인방송브랜드인 아프리카 TV는 네임 속에 ‘A free casting(자유롭고 무료로 즐기는 방송)’이라는 서비스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 그와 함께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가 주는 ‘미지’와 다듬어지지 않은 대륙의 이미지를 통해 제3의 방송이란 의미를 호기심 있게 표현했다.
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네이밍도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기법이다. ‘SK Planet’의 오픈마켓 브랜드 ‘11번가’의 경우 이미 포화된 오픈마켓 브랜드와 차별화시켜 고객들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즉 아날로그적 감성을 표현하면서 SK의 자산인 숫자(011)까지 자연스럽게 연계시킨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소셜 쿠폰사이트 ‘위메프 (We make price)’와 같이 긴 문장을 채팅용어처럼 줄이거나, KT ‘올레’ 처럼 별도의 설명을 듣지 않고는 그 의미를 전혀 연상 할 수 없는 형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성스럽고 따뜻한 이미지를 강조한 ‘엔제리너스 커피’도 돋보이는 네이밍 중 하나다.
다만 네이밍 결정 시 주의할 점은 법률적인 권리확보 선점여부다. 새로운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워낙 다양한 네이밍이 등장하다 보니 법률적 권리확보가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밍이 주로 전문집단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요인이 상당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명명권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으로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상희 대표는 “네이밍이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측면에서 남과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지금에야 ‘애플’이 좋아 보이지만 창립 당시 다른 회사에서 애플을 제안했던들 결코 채택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네이밍은 기업 측면에서 보면 아주 작은 작업에 불과하지만 최고경영자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디어를 사줄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서랍 속에 있다면 아무런 소용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네이밍 뿐 아니라 브랜드전략 차원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의 설명이다.
’포미즈’ 등 병원에서도 네이밍 바람
다행히 국내기업들의 네이밍에 대한 인식은 꾸준히 상승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웬만한 기업체는 물론, 병원 등 특수 업종에서까지 속속 전문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산부인과를 의미하는 ‘포미즈병원’이나 척추질환 비수술 치료를 슬로건으로 내건 ‘모커리’ 한방병원이 돋보인다.
정종일 포미즈여성병원장은 “그 동안 병원들은 출신학교나 지역, 의사이름 등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병원 경영환경과 신세대 환자들의 성향이 바뀌면서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미즈병원은 2003년 대대적인 건물 리뉴얼과 함께 사용한 이름이다.
이와 함께 국내기업들의 세계진출을 계기로 해외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글로벌 브랜드 개발이 한창이다. 특히 중국진출을 목표로 중국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중문 브랜드 개발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최근 세계경제 불황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브랜드 개발보다는 기존 브랜드를 최근 트렌드에 맞춰 리뉴얼하려는 업체들도 늘고 있는 것이 추세다.
현재 국내에서 브랜드 네이밍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는 10개 정도다. 순수 네이밍만으로 출발, 전문성이 강한 회사로는 ‘네임넷’이나 ‘메타브랜딩’, ‘브랜드메이저’, ‘인피니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일부 디자인회사에서 네이밍 업무를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브랜드 정도가 외국계로 활동 중이다.
네이밍 업체 한 관계자는 “브랜드는 소비자와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하는 핵심요소이다. 따라서 이러한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에 활용될 브랜드 보이스를 가지기 위해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글 : 김동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