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앞에서 뻔뻔하고, 도덕 앞에서 음흉하라 내 기사

2011/09/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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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 앞에서 뻔뻔하고, 도덕 앞에서 음흉하라
[서평]중국 5천년 역사를 관통하는 처세의 비밀 ‘후흑학’
이정민 (min93)

"중국이 인공호흡기를 떼는 순간, 북한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성공의 처세술이냐 아니면 인간경영의 심복술이냐를 놓고 전문 학자들과 경영인들에게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후흑학>의 저자 신동준은 책 서두부터 위와 같이 대놓고 언질한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치 북한은 배알도 없이 오직 중국에만 기대어 살아온 기생국가라는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리라. 대한민국과 같이 좌우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가에서 자칫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는 표현을 저자는 왜 가감 없이 던진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책 서두에 이와 같이 가장 민감한 명제를 화두로 던져놓고, 책을 덮는 순간 느끼는 오묘한 <후흑학>의 카타르시스를 독자 스스로가 체화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전해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귀신같은 고수들의 승리비결인 <귀곡자>, 제왕들의 인사교과서인 <인물지>등 굵직굵직한 레퍼토리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위즈덤하우스'가 이번엔 <후흑학>을 들고 찾아왔다. 이번 책은 중국학자 이종오가 펴낸 '노자와 한비자의 제왕학-후흑학'을 편역한 신동준의 현대판 책략서로 중국이 G2에서 G1으로 성장, 발전해갈 수밖에 없는 만고의 진리를 역설하고 있다.

 

글 전개에 앞서 먼저 <후흑학>에 대한 초월적 담론을 제시했던 중국학자 이종오에 대해 살펴보자. 중국 사천에서 1879년에 태어난 그는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에 <후흑학><후흑경><후흑전습록>등을 언론사에 연재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종오는 혁명 당시 손문(쑨원)이 결성한 동맹회에 들어가 활동을 하며 외세척결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앞장선다.

 

이후 그는 자신을 '후흑교주'라 칭하며 교육계에 투신, 1944년까지 '후흑'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내놓는다. 여기서 그가 내내 강조한 '후흑(厚黑,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커먼 사람)'은 결국, '도광양회(칼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 실력을 기르다)'의 내공을 강조한 말로 정치와 외교를 다루는 전략가로서의 뻔뻔함과 음흉함의 정수를 투영하고 있다. 즉, 중국의 역사를 관통했던 빛나는 제왕들의 마음을 분석해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인간경영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후흑의 최고봉은 불후불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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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은 마음을 숨겨야 하고, 아랫사람은 마음을 읽어야 한다.
ⓒ 이정민
후흑학

 

 

"얼굴이 얇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자는 패배한 뒤에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로 체면 앞에선 뻔뻔함이 승리하고 도덕 앞에선 음흉함이 승리하는 법이다"

 

중국학자 이종오는 <후흑학>을 통해 중국의 5천년 역사를 관통하는 처세의 비밀을 캐내려했다. 또 그렇게 태어난 <후흑학>은 청조가 멸망하고 신중국이 탄생하는 격변의 시기에 수천년 중국 통치술의 정수를 꿰뚫는 성공의 원리를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전연구가 신동준은 이종의 <후흑학>을 새롭게 탄생시키며 21세기의 시대적 해석으로 이번 책을 집필했다. 과거 처세술과 심복술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후흑'에 대해 신동준은 '후흑(면후심흑)'의 3단계를 통해 '외유내강'의 경지에 오르는 전 과정을 언급하려 했다.

 

신동준이 책에서 밝힌 '면후심흑(굴욕도 참아낼 수 있는 강인함 유연함과 냉정한 결단력)'의 3단계에 따르면, 첫째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먼' 단계다. 이는 '후흑' 최초의 경지로 얼굴색은 우유처럼 흰색인데 반해 점차 회색, 검푸른 색으로 변하다 마침내 숯덩이처럼 시꺼멓게 되는 것이다. 이는 뻔뻔함의 극치가 그대로 드러나 이내 다수의 적을 만들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어 두 번째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다. 이는 '속마음은 칠흑같이 시꺼멓지만 얼굴을 투명하리만큼 밝다'는 뜻으로 어떤 공격을 퍼붓더라도 미동도 하지 않아 그 자체로 남에게 인정까지 받는 단계다. 하지만 이번 단계도 결국 형체와 색채가 드러나 자칫 이중인격의 인물로 비춰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채가 없는 소위 '불후불흑'의 경지다. 이 단계는 마치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으로 인간심성에서는 결코 갖추지 못할 대성현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성현도 인간이었듯 이 경지 또한 마음수행에 따라 누구든지 활용할 수가 있다.

 

시골건달 '유방'이 명장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책은 중국 역사를 관통했던 빛나는 제왕들의 처세술을 열거하며 역사의 승자들이 보여준 인간경영의 진수를 회상한다. 유방, 장량, 조조, 유비, 손권, 사마의 그리고 장개석과 모택동에 이르는 당대 최고 장수들의 전술비법과 인화술, 관계술, 복심술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등에 대해 소개한다.

 

한 예로 시골건달 출신인 한고조 유방이 '역발산기개세'의 명장 한우를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저자는 '후흑술'을 들어 비교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었던 유방은 평소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정의감과 용맹스러움으로 백성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반면 약관의 나이에 명장대열에 오른 항우는 능력 있는 참모를 업신여기고 친인척을 등용시켰으며, 변하는 민심의 향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유방은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해 불필요한 (무모한 권력다툼)사소한 논쟁의 씨를 단칼에 잘라버렸으며, 겉으로는 바보 같은 척 하면서 평화롭고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었지만, 속으로는 어둠속에서 칼을 가는 심정(도광양회)으로 내공을 다졌다. 이것이 바로 후흑의 처신이었다.

 

도광양회, 화평굴기 그리고 난득호도

 

저자 신동준은 후흑을 논하면서 중국의 근대 역사를 함께 되짚고 있다. 특히 그는 장개석과 모택동의 '후흑천하' 스토리를 논하며 '후흑구국(후흑으로 나라를 구함)'의 정수를 보여주려 한다.

 

저자가 밝힌 현재 중국 상황을 살펴보면, 지금 중국은 (평화)굴기외교를 지나 난득호도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굴기외교란 1980년대 덩샤오핑이 추진한 '도광양회(韜光養晦)', 1990년대 장쩌민이 추진한 대국외교에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새롭게 추진하는 외교 전략이다.

 

이런 (평화)굴기외교 전략은 2020년 중국이 경제대국 G1으로서 전망을 바라보고 있는 인근 강대국들에게 중국 위협론을 완화시키고 겉으로는 평화로운 경쟁자임을 인식시켜주는데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치에 걸맞은 행동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주성과 독립성의 '흑심'을 , 그리고 겉으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면서도 평화와 자주성을 견지하려는 '면후'의 유연한 외교 전략인 셈이다.

 

또한 최근 중국외교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난득호도'는 청나라 문학가인 정판교가 처음 사용했던 용어로 '똑똑하면서 바보인 척 한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단 한 번에 고수의 모습으로 우위를 선점한다는 뜻이다.

 

'난득호도'를 살펴보면, 중국인들이 평소 자신의 본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또 상대방을 우선 안심시켜 좀 더 강한 공격 효과를 기대하는 전술일 수도 있다는 함의도 담겨져 있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자 신동준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우려하며 한국 지도자와 정치인들부터 '후흑학'에 먼저 정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그 누구라도 한 우물을 깊이 파다보면 언젠가는 소기의 목표를 이루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이에 실패하는 것은 도중에 견인불발(뜻을 변치 않음)의 자세를 잃고 방황하거나, 방법론적으로 상황에 따른 다양한 변신이 필요한데도 환면(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채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한 결과다. 초지를 관철하기 위한 견인불발의 자세와 함께 상황의 변화를 좇는 환면술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자만이 결국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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