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 분석] 윤곽 드러내는 ‘조국 대망론’의 실체
입각은 대선행 티켓일까, 사실상 좌천일까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법무부 장관 거쳐 노무현-문재인 잇는 PK 적통 시나리오 솔솔
대중성 갖췄지만 ‘SNS 정치’ 부메랑, 현실정치 경쟁력은 의문
"(대통령이 되면) 법무부 장관에 누구를 임명하시겠습니까”
“비검찰 출신에 결단력 있는 조국 교수님이 어떻겠습니까”
2011년 12월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민정수석(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이에 오간 대화다. 문 대통령의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행사였다. 문 대통령의 대답에 청중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조 교수는 “저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말고는 욕심 있는 자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농담으로 지나쳤던 짧은 대화가 8년이 지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엔 그저 농담에 그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올여름 단행될 개각을 앞두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후임에 조국 민정수석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미 청문회에 대비한 인사 검증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빈말은 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성격상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견해다. 8년 전 손사래를 쳤던 조 수석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조 수석의 입각설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에 비서에서 각료로 자리를 이동하는 것 이상의 함의가 숨어있다고 보고 있다. 조 수석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투신하는 신호탄이 되리란 것. 이른바 ‘조국 대망론’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의 거리를 권력 크기의 척도로 여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 조 수석의 입각이 사실상 좌천의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어쨌거나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조 수석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과 그를 일컬어 “민주당이 유사시 먹으려 비축한 식재료”라고 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도 5월 18일 광화문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조 수석의 출마를 종용했다. “우리 당에서는 다음 대선에 잠재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유시민·조국이 가세해서 열심히 경쟁하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 유 이사장이 이미 정치권과 선을 그은 점을 감안하면, 이는 조 수석을 향한 러브콜이나 다름없었다.
PK 공백 솔솔 부는 ‘조국 대망론’
대망론의 전조는 ‘조국 차출론’으로부터 시작됐다. 조 수석을 내년 총선에 내보낸다는 예상이었다. 조 수석은 2011년에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로부터 분당을 출마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관심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후로도 정치권의 러브콜에 “현실 정치인으로서 소질이 없다”며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기용설에 조 수석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몇몇 민주당 의원들에게 연락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을 해명하고 나섰다. 정치권은 이를 청문회에 대비하는 포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큰 명분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제도 개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 수석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비(非) 검찰 출신 법학자 그룹의 핵심 멤버다. 서울대 법대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를 중심으로 조국·안경환·한인섭 교수가 주도했다.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로 발탁됐다가 사생활 논란으로 낙마했다. 한 교수는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맡아 검찰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뒤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면에 나서 검찰 개혁 과제를 마무리할 인물은 조 수석뿐이다.
조 수석은 민정수석에 임명된 뒤 사석에서 “문 대통령의 기록을 넘어 민정수석을 맡는 것은 불충”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2년4개월간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당시에는 검찰개혁 완수에 대한 조바심을 내비친 발언으로 읽혔다. 조 수석은 2017년 5월 10일에 임명됐다. 2019년 7월이면 2년2개월째다. 개각 시점은 7월 말에서 8월로 점쳐진다.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문 대통령의 최장수 민정수석 기록을 갱신하는 ‘불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검찰 개혁의 흐름도 끊기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
검찰 개혁은 입각의 명분일 뿐만 아니라 대망론의 명분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을 완수할 경우 조 수석은 정치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했다는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설령 현 정권 임기 중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다 해도 그 자체로 차기 대권 도전의 명분을 삼기에 궁색함이 없다.
민주당의 대선 캠페인 전략에 있어서도 조 수석은 끊임없이 후보군으로 불려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군의 경쟁력은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 비해 압도적 우위다. 지역별로 이미 후보군이 어느 정도 편성돼 있다. 일찌감치 선을 그은 유시민 이사장을 제외하더라도 이낙연 국무총리(호남)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수도권), 이재명 경기도지사(수도권), 김부겸 의원(대구·경북) 등이 대표 선수로 포진해 있다. 민주당 내 대선 후보 경선을 전국적으로 흥행시킬 수 있는 요소가 절반은 갖춰진 셈이다.
문제는 부산·경남(PK)이다. PK는 민주당의 선거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 출신 후보의 본선 경쟁력은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을 통해 입증됐다. 당초 PK를 대표할 적임자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꼽혔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이란 돌발변수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댓글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지사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2심을 다투는 중이다. 2심에서 당선무효형 이하로 낮추거나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지 못할 경우 대선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 주류인 친문 진영으로선 김 지사를 대신할 PK 출신 후보를 확보하는 게 당면 과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조 수석의 대선 경쟁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문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있고,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할 상품성도 뛰어난 편이다. 부산 출신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여기에 의식 있는 진보 지식인의 이미지까지 더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수려한 외모도 한몫한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이유다.
지(智)·재(才)·미(美) 모두 갖춘 ‘강남 좌파’
그의 이미지는 진보 지식인의 상징으로 굳어지고 있다. 조 수석에겐 ‘강남좌파’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강남좌파란 단어는 2006년 [인물과사상] 5월호에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기고한 ‘강남좌파 엘리트 순환의 수호신인가’라는 비평에 처음 등장했다. 본래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386세대 인사들을 비판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후 강 교수는 [강남좌파]라는 저서를 통해 강남좌파 현상을 담론으로 풀어냈다.
외국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프랑스에선 ‘캐비어 좌파(gauche caviar)’다. 넉넉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부자 좌파를 비꼬는 표현이다. 1980년대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정부를 향한 비판이었다. 미국에서는 리무진 리버럴, 독일에서는 살롱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조 수석은 강남좌파란 딱지를 자처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강남좌파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의미도 긍정으로 바뀌었다. ‘꼰대 같지 않으면서 성공한 의식 있는 화이트칼라’란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조 수석도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상층에 속하지만 부자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서민이나 약자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는 그룹을 강남좌파로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2011년 3월 2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이다.
강남좌파가 유행하자 ‘분당좌파’, ‘강북좌파’, ‘영남좌파’ 등의 유사 신조어들이 뒤이어 생겼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고리타분한 보수진영을 일컫는 ‘태극기 할배’와 분명한 선을 긋고 다름을 강조할 용어로 이만한 게 없다. 2011년 4월 18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대담에서 조 수석은 “(강남좌파가) 원래는 욕이었는데 지금은 ‘쿨’한 것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했다.
‘캐주얼한 법학 교수’. 대중은 조 수석을 SNS와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화한다. 그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보다 막후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전략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대학생 때 걸어온 여정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 시절 조 수석의 활동 범위는 사회변혁을 꿈꾸던 당시 대학생들의 활동과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는 농촌이나 도시 빈민촌,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민중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의식화하고 조직하는 게 운동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를 이론에 천착하게 만든 이유는 다소 엉뚱하다. 조 수석은 초등학교를 또래보다 2년 일찍 들어갔다. 부산 혜광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 그의 나이는 만 17세가 채 되지 않았다. 현장 투쟁에 나서기보다 쟁쟁한 동기들과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82학번 동기인 진중권, 이진경, 이창휘 등과 ‘서울사회과학연구소’를 결성해 학생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고민했다. 이들과 [주체사상비판]이란 책도 냈다. 민족해방(NL) 계열이 추종하던 북한 주체사상의 반지성주의와 맹목성을 비판했다.
외모도 그의 운동 방향을 결정짓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2010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사연은 이렇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는데요, 내 활동이나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외모에만 관심을 두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자꾸 반복되니까 힘들어집디다. 선배들이 저보고 ‘너는 너무 눈에 띄어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요. 경찰의 검문검색에 걸리기 딱 좋다는 거예요. 또 제가 이국적이고 도회적 분위기여서 당시 활발하던 농활이나 빈민활동에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그 때문에 갈등을 많이 했죠. (중략) 나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 내가 쓴 글을 안 읽고 그냥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내 생각을 전달하자는 거죠. 저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외모에 호감을 가진 대중들이 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생각까지 바꾸게 된다면 좋은 일 아닙니까.”
SNS 무기 삼아 범 진보진영 책사로 ‘훈수’
조 수석에게 SNS는 젊은 시절 시국을 논하고 이론을 고민했던 ‘골방’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SNS 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조 수석의 모습이 신선하다. 그는 SNS를 잘 활용하기로 손에 꼽히는 지식인이다. 민정수석에 임명되기 직전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30만 명이 넘었다.
조 수석의 SNS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조국의 언어에는 도덕적 우월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SNS에 쏟아낸 그의 현란한 언어는 담론과 촌평으로 그득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지적 자신감이 묻어날지언정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송영길 인천시장의 경제사회특보를 지낸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이 점을 조 수석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조국은 진보의 정치적 지도자라기보다 관념과 문화의 전파자다. 그가 물질적, 문화적, 권위 측면에서 특혜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지적, 이념적 특혜는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 수석의 또 하나의 문제는 ‘가벼움’이다. 종종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내뱉은 말로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2011년에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언급했다가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의 발언은 이렇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밟고 가라. 나는 노동, 복지에서 실패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응을 잘못했다. 복지정책도 좀 더 밀어붙여야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것이 투신하기 전에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에게 남긴 유언이다.”
조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의 저서 [진보의 미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소개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출처와 내용이 불분명한 발언을 한 셈이다. 한·미 FTA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적 고려 없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11년 6월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강연에서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분들 중에도 이(한·미 FTA)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이상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마치 대통령께서 한·미 FTA에 대해 후회하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다.
최근에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정부 공식 보도자료를 조 수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먼저 유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7월 13일의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5시 27분에 ‘日 수출규제조치 WTO 일반이사회에서 논의 예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출입기자단에 배포했다. 7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정식 의제로 논의할 것이란 내용이다.
그런데 기자단에 배포되기 14분 전(5시 13분) 조 수석의 페이스북에 원문 그대로 자료가 올라왔다. 산업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았다. 산업부 관계자가 포함돼 있는 SNS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미리 올라온 자료를 조 수석이 내려받아 페북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 수석은 “혼선을 일으켜 송구하다”면서도 해당 게시글은 그대로 뒀다. 조 수석은 민정수석에 취임하면서 “당분간 페북활동을 접겠다”고 했지만 최근까지 정치·사회 현안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행된 뒤에는 페이스북에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올려 민정수석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메랑으로 돌아올 ‘페북 정치’의 흔적들
SNS를 통해 쏟아낸 그의 말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조 수석 스스로 현실정치와 선을 그었다지만 실제로는 SNS를 활용해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가 없지 않다. 조 수석의 SNS 활동이 ‘훈수 정치’, ‘페북 정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특히 3년 전 국민의당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조 수석의 발언은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그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2016년 6월 12일 조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김수민 의원이 총기획자라고 보이지 않는다. ‘프로’의 솜씨다. 선관위와 검찰을 비판하면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 정치’가 과거 그 노선의 모호성을 비판받았다면 이제 청렴에 대한 의심이 대중적으로 커지고 있다.”
노골적으로 안철수 대표를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박선숙, 김수민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이 대표로 있던 브랜드호텔의 광고·홍보 TF를 꾸려 인쇄 및 광고대행업체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162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은 1, 2심에서 두 사람이 무죄 선고를 받은 데 이어 지난 7월 10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조 수석이 글을 올렸을 당시에는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혐의가 입증되기도 전에 배후를 운운하며 안 대표를 부도덕한 정치인이란 프레임에 가둔 거나 다름없었다.
조 수석의 글을 SNS에 올린 수많은 단편적인 정치 평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기정사실화했다는 점 때문이다. 조 수석은 “관련자들은 합당한 책임을 질 것”, “특권과 반칙과 편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서부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는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는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놨다. 바른미래당의 한 당직자는 “형사법을 전공한 법학자가 무죄 추정의 원칙조차 무시한 채 검찰의 편에 서서 그런 음모론적인 주장을 했다는 건 조 수석의 가벼움과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안에 대해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직후인 7월 11일 조 수석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오 원내대표는 “조 수석의 SNS 영향력을 볼 때 국민 열망에 부응해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의 싹을 잘라버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제라도 당사자들과 국민들께 정중하게 사과할 용기는 없는가”라고 공개적으로 힐난했다. 조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될 경우 이 사건은 청문회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치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그의 SNS 발언이 논란이 됐다. 그해 10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진보 진영의 최대 과제였다. 두 사람의 단일화 없이는 대선 승리 가능성은 거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조 수석은 트위터를 통해 단일화를 압박했다. “두 후보 모두 등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고, 촛불시위를 주동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강남 좌파’ 이미지로 ‘비강남’ 정서 품을 수 있을까
진보 진영에선 이를 안 후보에 대한 사퇴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조 수석은 당시 문 대통령의 북콘서트에 단골 게스트로 참여해 친분을 과시했다. 대선 막바지에는 TV 찬조연설자로 나서 문 후보 지지활동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파워 트위터리언들은 조 수석의 트위터 발언을 퍼 나르며 안 후보 진영을 압박했다. 반면 “공갈 협박 수준이다. 단일화가 무슨 민주화운동이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걸림돌보다 더 중요한 건 조 수석 본인의 권력의지다. 친문 진영과 대중의 요구가 간절하다 해도 그가 대권 로드맵을 가동하려면 과거의 자기 부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실 정치로 출마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터다.
최근 들어 조 수석의 레토릭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2017년 5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민정수석으로 도와드리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정(民政)이란 단어 자체에 정치란 뜻이 내포돼 있다. 그의 말은 이미 학자의 언어라기보다 정치인의 레토릭에 가깝다.
대망론이 본격 가동될 때 닥칠 첫 번째 산은 여권 내부에 있다. 비주류 대권 주자들이 반(反) 조국 전선으로 뭉칠 경우 내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판은 전쟁터다. 치열한 전투를 겪어보지도 않은 인물에게 지휘봉을 쥐어주고 따르라고 하면 영(令)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지적은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6번의 대선(1992~2017년)에서 당선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있다. 당내 리더십도 문제지만,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와 현실 정치인의 조건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란 의미다.
조국 대망론을 지나친 억측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수석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그의 본업인 실천적 지식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예상이다. 조 수석과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조 수석이 험한 정치판으로 뛰어들지 아니면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지는 한국당 하기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앞서 안 의원의 정치 입문 요구를 조 수석은 “임무 완성 후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안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평했다. “조 수석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절감한다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의로운 대한민국 실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무대를 준비하려 할지도 모른다. 한국당이 권력기관 개혁 4대 과제(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개정, 자치경찰제) 실시를 약속하면 조 수석도 당장 청와대에서 짐을 빼고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갈수록 검증의 강도는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조국 민정수석의 과거 행적은 정치적 자산이자 동시에 부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성 갖췄지만 ‘SNS 정치’ 부메랑, 현실정치 경쟁력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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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찰 출신에 결단력 있는 조국 교수님이 어떻겠습니까”
2011년 12월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민정수석(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이에 오간 대화다. 문 대통령의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행사였다. 문 대통령의 대답에 청중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조 교수는 “저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말고는 욕심 있는 자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농담으로 지나쳤던 짧은 대화가 8년이 지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엔 그저 농담에 그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올여름 단행될 개각을 앞두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후임에 조국 민정수석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미 청문회에 대비한 인사 검증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빈말은 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성격상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견해다. 8년 전 손사래를 쳤던 조 수석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조 수석의 입각설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에 비서에서 각료로 자리를 이동하는 것 이상의 함의가 숨어있다고 보고 있다. 조 수석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투신하는 신호탄이 되리란 것. 이른바 ‘조국 대망론’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의 거리를 권력 크기의 척도로 여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 조 수석의 입각이 사실상 좌천의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어쨌거나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조 수석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과 그를 일컬어 “민주당이 유사시 먹으려 비축한 식재료”라고 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도 5월 18일 광화문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조 수석의 출마를 종용했다. “우리 당에서는 다음 대선에 잠재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유시민·조국이 가세해서 열심히 경쟁하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 유 이사장이 이미 정치권과 선을 그은 점을 감안하면, 이는 조 수석을 향한 러브콜이나 다름없었다.
PK 공백 솔솔 부는 ‘조국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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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법무부 장관 기용설에 조 수석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몇몇 민주당 의원들에게 연락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을 해명하고 나섰다. 정치권은 이를 청문회에 대비하는 포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큰 명분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제도 개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 수석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비(非) 검찰 출신 법학자 그룹의 핵심 멤버다. 서울대 법대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를 중심으로 조국·안경환·한인섭 교수가 주도했다.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로 발탁됐다가 사생활 논란으로 낙마했다. 한 교수는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맡아 검찰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뒤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면에 나서 검찰 개혁 과제를 마무리할 인물은 조 수석뿐이다.
조 수석은 민정수석에 임명된 뒤 사석에서 “문 대통령의 기록을 넘어 민정수석을 맡는 것은 불충”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2년4개월간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당시에는 검찰개혁 완수에 대한 조바심을 내비친 발언으로 읽혔다. 조 수석은 2017년 5월 10일에 임명됐다. 2019년 7월이면 2년2개월째다. 개각 시점은 7월 말에서 8월로 점쳐진다.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문 대통령의 최장수 민정수석 기록을 갱신하는 ‘불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검찰 개혁의 흐름도 끊기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
검찰 개혁은 입각의 명분일 뿐만 아니라 대망론의 명분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을 완수할 경우 조 수석은 정치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했다는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설령 현 정권 임기 중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다 해도 그 자체로 차기 대권 도전의 명분을 삼기에 궁색함이 없다.
민주당의 대선 캠페인 전략에 있어서도 조 수석은 끊임없이 후보군으로 불려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군의 경쟁력은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 비해 압도적 우위다. 지역별로 이미 후보군이 어느 정도 편성돼 있다. 일찌감치 선을 그은 유시민 이사장을 제외하더라도 이낙연 국무총리(호남)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수도권), 이재명 경기도지사(수도권), 김부겸 의원(대구·경북) 등이 대표 선수로 포진해 있다. 민주당 내 대선 후보 경선을 전국적으로 흥행시킬 수 있는 요소가 절반은 갖춰진 셈이다.
문제는 부산·경남(PK)이다. PK는 민주당의 선거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 출신 후보의 본선 경쟁력은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을 통해 입증됐다. 당초 PK를 대표할 적임자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꼽혔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이란 돌발변수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댓글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지사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2심을 다투는 중이다. 2심에서 당선무효형 이하로 낮추거나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지 못할 경우 대선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 주류인 친문 진영으로선 김 지사를 대신할 PK 출신 후보를 확보하는 게 당면 과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조 수석의 대선 경쟁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문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있고,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할 상품성도 뛰어난 편이다. 부산 출신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여기에 의식 있는 진보 지식인의 이미지까지 더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수려한 외모도 한몫한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이유다.
지(智)·재(才)·미(美) 모두 갖춘 ‘강남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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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프랑스에선 ‘캐비어 좌파(gauche caviar)’다. 넉넉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부자 좌파를 비꼬는 표현이다. 1980년대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정부를 향한 비판이었다. 미국에서는 리무진 리버럴, 독일에서는 살롱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조 수석은 강남좌파란 딱지를 자처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강남좌파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의미도 긍정으로 바뀌었다. ‘꼰대 같지 않으면서 성공한 의식 있는 화이트칼라’란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조 수석도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상층에 속하지만 부자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서민이나 약자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는 그룹을 강남좌파로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2011년 3월 2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이다.
강남좌파가 유행하자 ‘분당좌파’, ‘강북좌파’, ‘영남좌파’ 등의 유사 신조어들이 뒤이어 생겼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고리타분한 보수진영을 일컫는 ‘태극기 할배’와 분명한 선을 긋고 다름을 강조할 용어로 이만한 게 없다. 2011년 4월 18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대담에서 조 수석은 “(강남좌파가) 원래는 욕이었는데 지금은 ‘쿨’한 것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했다.
‘캐주얼한 법학 교수’. 대중은 조 수석을 SNS와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화한다. 그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보다 막후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전략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대학생 때 걸어온 여정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 시절 조 수석의 활동 범위는 사회변혁을 꿈꾸던 당시 대학생들의 활동과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는 농촌이나 도시 빈민촌,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민중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의식화하고 조직하는 게 운동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를 이론에 천착하게 만든 이유는 다소 엉뚱하다. 조 수석은 초등학교를 또래보다 2년 일찍 들어갔다. 부산 혜광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 그의 나이는 만 17세가 채 되지 않았다. 현장 투쟁에 나서기보다 쟁쟁한 동기들과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82학번 동기인 진중권, 이진경, 이창휘 등과 ‘서울사회과학연구소’를 결성해 학생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고민했다. 이들과 [주체사상비판]이란 책도 냈다. 민족해방(NL) 계열이 추종하던 북한 주체사상의 반지성주의와 맹목성을 비판했다.
외모도 그의 운동 방향을 결정짓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2010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사연은 이렇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는데요, 내 활동이나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외모에만 관심을 두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자꾸 반복되니까 힘들어집디다. 선배들이 저보고 ‘너는 너무 눈에 띄어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요. 경찰의 검문검색에 걸리기 딱 좋다는 거예요. 또 제가 이국적이고 도회적 분위기여서 당시 활발하던 농활이나 빈민활동에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그 때문에 갈등을 많이 했죠. (중략) 나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 내가 쓴 글을 안 읽고 그냥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내 생각을 전달하자는 거죠. 저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외모에 호감을 가진 대중들이 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생각까지 바꾸게 된다면 좋은 일 아닙니까.”
SNS 무기 삼아 범 진보진영 책사로 ‘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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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수석의 SNS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조국의 언어에는 도덕적 우월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SNS에 쏟아낸 그의 현란한 언어는 담론과 촌평으로 그득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지적 자신감이 묻어날지언정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송영길 인천시장의 경제사회특보를 지낸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이 점을 조 수석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조국은 진보의 정치적 지도자라기보다 관념과 문화의 전파자다. 그가 물질적, 문화적, 권위 측면에서 특혜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지적, 이념적 특혜는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 수석의 또 하나의 문제는 ‘가벼움’이다. 종종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내뱉은 말로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2011년에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언급했다가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의 발언은 이렇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밟고 가라. 나는 노동, 복지에서 실패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응을 잘못했다. 복지정책도 좀 더 밀어붙여야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것이 투신하기 전에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에게 남긴 유언이다.”
조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의 저서 [진보의 미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소개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출처와 내용이 불분명한 발언을 한 셈이다. 한·미 FTA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적 고려 없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11년 6월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강연에서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분들 중에도 이(한·미 FTA)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이상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마치 대통령께서 한·미 FTA에 대해 후회하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다.
최근에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정부 공식 보도자료를 조 수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먼저 유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7월 13일의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5시 27분에 ‘日 수출규제조치 WTO 일반이사회에서 논의 예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출입기자단에 배포했다. 7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정식 의제로 논의할 것이란 내용이다.
그런데 기자단에 배포되기 14분 전(5시 13분) 조 수석의 페이스북에 원문 그대로 자료가 올라왔다. 산업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았다. 산업부 관계자가 포함돼 있는 SNS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미리 올라온 자료를 조 수석이 내려받아 페북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 수석은 “혼선을 일으켜 송구하다”면서도 해당 게시글은 그대로 뒀다. 조 수석은 민정수석에 취임하면서 “당분간 페북활동을 접겠다”고 했지만 최근까지 정치·사회 현안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행된 뒤에는 페이스북에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올려 민정수석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메랑으로 돌아올 ‘페북 정치’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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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년 전 국민의당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조 수석의 발언은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그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2016년 6월 12일 조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김수민 의원이 총기획자라고 보이지 않는다. ‘프로’의 솜씨다. 선관위와 검찰을 비판하면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 정치’가 과거 그 노선의 모호성을 비판받았다면 이제 청렴에 대한 의심이 대중적으로 커지고 있다.”
노골적으로 안철수 대표를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박선숙, 김수민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이 대표로 있던 브랜드호텔의 광고·홍보 TF를 꾸려 인쇄 및 광고대행업체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162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은 1, 2심에서 두 사람이 무죄 선고를 받은 데 이어 지난 7월 10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조 수석이 글을 올렸을 당시에는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혐의가 입증되기도 전에 배후를 운운하며 안 대표를 부도덕한 정치인이란 프레임에 가둔 거나 다름없었다.
조 수석의 글을 SNS에 올린 수많은 단편적인 정치 평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기정사실화했다는 점 때문이다. 조 수석은 “관련자들은 합당한 책임을 질 것”, “특권과 반칙과 편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서부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는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는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놨다. 바른미래당의 한 당직자는 “형사법을 전공한 법학자가 무죄 추정의 원칙조차 무시한 채 검찰의 편에 서서 그런 음모론적인 주장을 했다는 건 조 수석의 가벼움과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안에 대해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직후인 7월 11일 조 수석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오 원내대표는 “조 수석의 SNS 영향력을 볼 때 국민 열망에 부응해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의 싹을 잘라버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제라도 당사자들과 국민들께 정중하게 사과할 용기는 없는가”라고 공개적으로 힐난했다. 조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될 경우 이 사건은 청문회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치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그의 SNS 발언이 논란이 됐다. 그해 10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진보 진영의 최대 과제였다. 두 사람의 단일화 없이는 대선 승리 가능성은 거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조 수석은 트위터를 통해 단일화를 압박했다. “두 후보 모두 등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고, 촛불시위를 주동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강남 좌파’ 이미지로 ‘비강남’ 정서 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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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림돌보다 더 중요한 건 조 수석 본인의 권력의지다. 친문 진영과 대중의 요구가 간절하다 해도 그가 대권 로드맵을 가동하려면 과거의 자기 부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실 정치로 출마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터다.
최근 들어 조 수석의 레토릭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2017년 5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민정수석으로 도와드리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정(民政)이란 단어 자체에 정치란 뜻이 내포돼 있다. 그의 말은 이미 학자의 언어라기보다 정치인의 레토릭에 가깝다.
대망론이 본격 가동될 때 닥칠 첫 번째 산은 여권 내부에 있다. 비주류 대권 주자들이 반(反) 조국 전선으로 뭉칠 경우 내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판은 전쟁터다. 치열한 전투를 겪어보지도 않은 인물에게 지휘봉을 쥐어주고 따르라고 하면 영(令)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지적은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6번의 대선(1992~2017년)에서 당선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있다. 당내 리더십도 문제지만,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와 현실 정치인의 조건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란 의미다.
조국 대망론을 지나친 억측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수석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그의 본업인 실천적 지식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예상이다. 조 수석과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조 수석이 험한 정치판으로 뛰어들지 아니면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지는 한국당 하기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앞서 안 의원의 정치 입문 요구를 조 수석은 “임무 완성 후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안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평했다. “조 수석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절감한다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의로운 대한민국 실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무대를 준비하려 할지도 모른다. 한국당이 권력기관 개혁 4대 과제(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개정, 자치경찰제) 실시를 약속하면 조 수석도 당장 청와대에서 짐을 빼고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갈수록 검증의 강도는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조국 민정수석의 과거 행적은 정치적 자산이자 동시에 부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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