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새로운 거인족, 권력을 장악했다
[한겨레] 누리꾼·SNS세대·Y세대…
그들을 뭐라 부르든
한국 대선과 미 대선 앞두고
새 권력이 포효한다
한 책은 현실정치 관여 분석기
한 책은 스마트시대의 묵시록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한종우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1만6000원
<스마트 권력이 바꾸고 있는 것들> 이승제 지음/21세기 북스·1만3000원
이번주 초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이른바 ‘안룸박콘(안철수 룸살롱, 박근혜 콘돔을 줄인 말)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성인검색어 순위 논란이 벌어졌다.
대선 주자 이름에 피임기구와 유흥업소의 일반명사를 붙여 ‘고유명사화’하는 이 조어법이 논란거리가 된 전말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한 보수월간지가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룸살롱에 드나들었다는 기사를 싣자 네이버 검색어 상위권에 ‘안철수 룸살롱’이 올랐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한 진행자가 트위터에서 “‘룸살롱’은 성인 인증을 해야하는데, ‘안철수 룸살롱’은 그냥 검색된다”고 ‘흠집내기’ 음모론을 제기한 게 빌미가 됐다. 네이버 쪽이 “검색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성인인증을 푼다”고 해명하자, 포털에는 누리꾼들이 올린 ‘박근혜 콘돔’ ‘박근혜 룸살롱’ ‘이명박 룸살롱’ 등이 순식간에 검색어 상위권을 메워버렸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콘돔’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데 대해 네이버는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여론 조작하는 대형 포털에 날린 통쾌한 일격”이라고 고소해했다.
눈에 꽂히면 무섭게 뭉친다. 인정사정없이 ‘말펀치’로 정치권에 요동을 일으키는 누리꾼들, 그들은 이른바 ‘에스엔에스(SNS) 세대’로 표상되는 스마트 권력이기도 하다. ‘박근혜 콘돔’ 소동의 와중에 반권력인 스마트·네트워크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과 그들의 미래상을 더듬어본 책 2권이 나왔다.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가 쓴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과 중앙지 기자 출신의 이승제씨가 쓴 <스마트 권력이 바꾸고 있는 것들>. 두 책은 젊은 네트워크 세대들이 선거 같은 정치적 행위에 어떻게 개입하며 새 권력으로 부상해왔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소셜 정치혁명…>은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 세대가 어떻게 21세기 정치의 ‘킹메이커’로 등극했는지를 눈여겨본 책이다. 2007년부터 2년 동안 <뉴욕 라디오 코리아>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은이는 인터넷·휴대전화·블로그·유튜브·팟캐스트 등 네트워크 정보 신기술을 쓰는 청년 세대가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을 여섯 장에 걸쳐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틀로 뜯어본다. 휴대폰과 트위터로 2002년 노무현,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그들의 정치적 변화를 주시한 한 교수의 질문은 이렇게 요약된다. 왜 젊은층이 스스로 담쌓았던 정치 참여를 이끄는 ‘핸드폰 보이’로 돌변했을까.
핸드폰 보이 주축인 2030세대가 2002년 노무현 당선을 이끌어낸 건 그해의 극적인 집단경험들이 토대가 됐다고 책에서는 풀이한다. 그들은 연초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 선수가 미국 선수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금메달을 놓쳤을 때 미국 올림픽위원회 웹사이트로 몰려가 항의했다. 그해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거리응원 열기를 체험했고, 그 직후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자 촛불 항의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시험적 동원’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치적 잠재력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쌓인 사회적 자본과 정보화 기반이 함께 이뤄진 시점이었고, 2000년 386세대가 주도한 시민 사회의 총선 낙선운동이 전시 효과로 학습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들이 젊은층으로 하여금 핸드폰, 웹 등으로 투표 독려 메시지를 날리며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나서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고 그는 분석한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를 당선시킨 주역 또한 신정보기술로 무장한 와이(Y)세대였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18~32살 청년층인 이들은 ‘롱 테일’(long tail: 상대적 중요도가 덜한 부분)이란 별칭이 붙은 비정치적 유권자층에 불과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정치의식에 눈떴고, 즐겨 쓰는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로 오프라인 정치활동에 적극 개입하면서 이들은 대선 예비선거 돌풍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지은이는 2007년 대선에서 청년층이 이명박을 지지한 ‘반전’과 이듬해 10대들이 대거 참여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역반전’ 등에서 보이듯, 네트워크 세대가 특정 성향 후보에게만 쏠리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기존 권력에 책임성을 요구하고 여론을 무시한 정책 집행을 심판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고정화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올해 말 한국·미국 대선의 경우 진보·보수, 지역주의 구도가 고착화된 만큼, 적지 적소에 몰표를 던질 소셜미디어 주도 세력이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본다. 네트워크 정보를 확산, 배분하는 데 가장 능숙하며, 가상공간에서 정치적 집단 행위의 가능성을 이미 간파한 젊은 유권자층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태동한 네트워크 정치의 미래는 디지털 기술 혁명을 받아들이는 국가·사회의 관계와 각 부문의 민주적 역량이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결론짓는다.
<스마트 권력…>은 훨씬 급진적 전망을 내놓는다. 스마트기기 서비스가 ‘평등의지’와 결합된 스마트 권력의 미래를 성찰하는 이 책은 ‘빼앗기’ 속성을 지닌 기존 권력과 달리 스마트 권력은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란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놀라운 응집력과 확장성을 지닌 스마트 권력의 팽창 앞에 정치권력이 아부하면서 국가·정치·경제 권력으로 이뤄진 기존 트로이카 권력 체제에 일어난 균열을 짚는가 하면, 구글 등 스마트 아이티(IT)업체들을 회유해 거대 권력의 일부로 끌어들이려는 기존 권력의 길들이기 전략도 뜯어본다. 구체적 각론을 제시하진 않지만, 그는 평등을 좇는 스마트 의지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유엔을 능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집단지성에 바탕한 반권력 스마트 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스마트 정보, 스마트 의지, 집단지성이 하나로 엮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거인족, 스마트 인류의 출현을 목격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 이 책 말미에서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의 엄지가 이 위대한 거인을 만듭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들을 뭐라 부르든
한국 대선과 미 대선 앞두고
새 권력이 포효한다
한 책은 현실정치 관여 분석기
한 책은 스마트시대의 묵시록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한종우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1만6000원
<스마트 권력이 바꾸고 있는 것들> 이승제 지음/21세기 북스·1만3000원
이번주 초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이른바 ‘안룸박콘(안철수 룸살롱, 박근혜 콘돔을 줄인 말)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성인검색어 순위 논란이 벌어졌다.
대선 주자 이름에 피임기구와 유흥업소의 일반명사를 붙여 ‘고유명사화’하는 이 조어법이 논란거리가 된 전말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한 보수월간지가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룸살롱에 드나들었다는 기사를 싣자 네이버 검색어 상위권에 ‘안철수 룸살롱’이 올랐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한 진행자가 트위터에서 “‘룸살롱’은 성인 인증을 해야하는데, ‘안철수 룸살롱’은 그냥 검색된다”고 ‘흠집내기’ 음모론을 제기한 게 빌미가 됐다. 네이버 쪽이 “검색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성인인증을 푼다”고 해명하자, 포털에는 누리꾼들이 올린 ‘박근혜 콘돔’ ‘박근혜 룸살롱’ ‘이명박 룸살롱’ 등이 순식간에 검색어 상위권을 메워버렸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콘돔’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데 대해 네이버는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여론 조작하는 대형 포털에 날린 통쾌한 일격”이라고 고소해했다.
눈에 꽂히면 무섭게 뭉친다. 인정사정없이 ‘말펀치’로 정치권에 요동을 일으키는 누리꾼들, 그들은 이른바 ‘에스엔에스(SNS) 세대’로 표상되는 스마트 권력이기도 하다. ‘박근혜 콘돔’ 소동의 와중에 반권력인 스마트·네트워크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과 그들의 미래상을 더듬어본 책 2권이 나왔다.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가 쓴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과 중앙지 기자 출신의 이승제씨가 쓴 <스마트 권력이 바꾸고 있는 것들>. 두 책은 젊은 네트워크 세대들이 선거 같은 정치적 행위에 어떻게 개입하며 새 권력으로 부상해왔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소셜 정치혁명…>은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 세대가 어떻게 21세기 정치의 ‘킹메이커’로 등극했는지를 눈여겨본 책이다. 2007년부터 2년 동안 <뉴욕 라디오 코리아>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은이는 인터넷·휴대전화·블로그·유튜브·팟캐스트 등 네트워크 정보 신기술을 쓰는 청년 세대가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을 여섯 장에 걸쳐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틀로 뜯어본다. 휴대폰과 트위터로 2002년 노무현,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그들의 정치적 변화를 주시한 한 교수의 질문은 이렇게 요약된다. 왜 젊은층이 스스로 담쌓았던 정치 참여를 이끄는 ‘핸드폰 보이’로 돌변했을까.
핸드폰 보이 주축인 2030세대가 2002년 노무현 당선을 이끌어낸 건 그해의 극적인 집단경험들이 토대가 됐다고 책에서는 풀이한다. 그들은 연초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 선수가 미국 선수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금메달을 놓쳤을 때 미국 올림픽위원회 웹사이트로 몰려가 항의했다. 그해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거리응원 열기를 체험했고, 그 직후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자 촛불 항의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시험적 동원’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치적 잠재력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쌓인 사회적 자본과 정보화 기반이 함께 이뤄진 시점이었고, 2000년 386세대가 주도한 시민 사회의 총선 낙선운동이 전시 효과로 학습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들이 젊은층으로 하여금 핸드폰, 웹 등으로 투표 독려 메시지를 날리며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나서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고 그는 분석한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를 당선시킨 주역 또한 신정보기술로 무장한 와이(Y)세대였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18~32살 청년층인 이들은 ‘롱 테일’(long tail: 상대적 중요도가 덜한 부분)이란 별칭이 붙은 비정치적 유권자층에 불과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정치의식에 눈떴고, 즐겨 쓰는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로 오프라인 정치활동에 적극 개입하면서 이들은 대선 예비선거 돌풍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지은이는 2007년 대선에서 청년층이 이명박을 지지한 ‘반전’과 이듬해 10대들이 대거 참여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역반전’ 등에서 보이듯, 네트워크 세대가 특정 성향 후보에게만 쏠리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기존 권력에 책임성을 요구하고 여론을 무시한 정책 집행을 심판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고정화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올해 말 한국·미국 대선의 경우 진보·보수, 지역주의 구도가 고착화된 만큼, 적지 적소에 몰표를 던질 소셜미디어 주도 세력이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본다. 네트워크 정보를 확산, 배분하는 데 가장 능숙하며, 가상공간에서 정치적 집단 행위의 가능성을 이미 간파한 젊은 유권자층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태동한 네트워크 정치의 미래는 디지털 기술 혁명을 받아들이는 국가·사회의 관계와 각 부문의 민주적 역량이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결론짓는다.
<스마트 권력…>은 훨씬 급진적 전망을 내놓는다. 스마트기기 서비스가 ‘평등의지’와 결합된 스마트 권력의 미래를 성찰하는 이 책은 ‘빼앗기’ 속성을 지닌 기존 권력과 달리 스마트 권력은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란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놀라운 응집력과 확장성을 지닌 스마트 권력의 팽창 앞에 정치권력이 아부하면서 국가·정치·경제 권력으로 이뤄진 기존 트로이카 권력 체제에 일어난 균열을 짚는가 하면, 구글 등 스마트 아이티(IT)업체들을 회유해 거대 권력의 일부로 끌어들이려는 기존 권력의 길들이기 전략도 뜯어본다. 구체적 각론을 제시하진 않지만, 그는 평등을 좇는 스마트 의지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유엔을 능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집단지성에 바탕한 반권력 스마트 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스마트 정보, 스마트 의지, 집단지성이 하나로 엮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거인족, 스마트 인류의 출현을 목격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 이 책 말미에서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의 엄지가 이 위대한 거인을 만듭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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