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어느 봄날에 친구와 함께 모 야전병원에 병문안 간 일이 있다. 환자에게 함께
근무했던 절친한 몇몇 동료의 안부를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었다. 다 죽었다고 했다.
1980년 5월에 발생한 일 때문이었다.
순간 나는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져 더 이상 물어 볼 수도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녹색 군복 위로 피어나는 소금꽃. 10분간 휴식 시간엔 반합의 물에 소금을 한 웅큼 넣어서
흔들어 마셨다. 부동자세의 휴식 시간은 그렇게 소금기운으로 버텼다. ‘주목!’ 이라는 교관의
구령이 떨어지면 수십 개의 철모가 동시에 철커덕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핏발선 수십 개의
눈동자가 그 철모 그늘에서 형형한 빛을 냈다. 그들의 눈빛을 마주보기 어려워서 교관은 1년
내내 색깔 진한 선글라스를 착용한다고 했던가.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 공수부대는 항상 그 가운데에 있었다. 우리 공수대원들에게는 1년 내내
전투력 측정과 천리행군 등의 훈련이 끝없이 이어졌다. 전역후 집에서도 가끔 ‘너는 자랑스러운
공수부대 대위의 딸이야’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사무실 벽에는 지금도 그때의 베레모가
걸려 있다. 군복 차림의 사진도 몇 장 있다.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다.
지금도 길에서 부대 마크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올 5월18일엔 대통령이 광주의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대통령은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통합과 상생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부대는 국가가 인정하고 스스로도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 이 나라의 최정예부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5월은 공수부대원에게 눈물과 아픔과 어두움의 시간이 되었다.
현충일과 6·25가 있는 호국 현충의 6월이 가고 있다. 이제는 밝은 태양 아래 그리고 넓은
광장에서 고개를 들고 역사와 권력의 희생양이 된 그들 공수대원의 추모제를 가질 때도
되었다. 언제까지나 그들이 역사의 그늘에 은폐돼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들은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문경서 · 서울 광진구 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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