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도 우리땅 ! 만주도 우리땅!

2006/08/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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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ove4youkr님의 블로그 |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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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이에 맞선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독도와 대마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문부과학상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을 학습지도요령에 넣어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는 등 일본인들의 망언은 그칠 줄을 모른다. 독도와 대마도에만 국한하지 않는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 문제, 21세기 한국의 지도는 새로이 작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이에 맞선 마산시의회의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인해 독도와 대마도 등 우리 영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산시의회의 조례제정이 감정적이며 즉흥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대마도는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이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우리 영토’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잃어버린 영토찾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단 대마도 뿐만 아니라 간도 역시 1909년 간도협약에 의해 부당하게 상실한 영토라는 측면에서 북으로는 간도, 남으로는 대마도에 이르기까지 과연 우리의 영토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 것인지 되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I. 대마도

한반도의 지배를 받아온 대마도

대마도는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이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우리의 영토이다. 원광대학교 사학과 나종우 교수에 의하면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사실은 우리측 자료보다는 일본측 자료에 훨씬 많다.

13세기 일본의 사서 ‘진대’에 ‘대마도에는 신라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723년 대마도의 대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락’이라는 책에도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주에게 ‘탐라구당사’라는 직책을 주었던 것처럼 대마도주에게 ‘구당관’이라는 직책을 주어 우리의 속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대마도를 한반도 침략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처음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명치유신 때 처음으로 일본에 편입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 반환요구

대마도 문제가 처음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최초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면서부터이다. 이후 4년 뒤인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 정부의 주장을 즉각 반박하고 3년 동안 대마도 연구에 몰두,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학술적 근거 찾기에 노력한다. 이를 통해 봤을 때 ‘대마도가 일본영토’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알린 시점은 1950년대 초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중반까지는 우리가 대마도를 지배했고 중반 이후에는 일본이 영유권을 행사했으며 1950년대 대마도 영유권에 대한 공론화가 처음 이뤄진 것이다.

대마도학회 설립 절실

2002년에 ‘대마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대마도 회복운동에 나선 한빛코리아의 최동국 대표는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분명한 우리땅(대마도~후쿠오카는 147km)”이라고 말하고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대마도학회’가 조속히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II. 간도

잃어버린 땅, 간도

지금은 중국의 영토가 되어버린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땅이 바로 간도다. 간도는 넓게는 만주지역 전체를 일컫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백두산 북쪽의 만주지역 일대, 흔히 우리가 ‘연변’이라고 부르는 지역인 북간도를 가리킨다.

이 땅은 옛부터 우리 조상들이 땅을 개간하고 실질적으로 영유권을 행사한 우리의 고유의 영토이다. 그러나 간도는 대마도보다 훨씬 억울하게(?) 상실한 우리의 영토라 할 수 있다.

토문강이 어디냐?

조선 후기까지 만주 지역은 조선과 청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텅 빈 지역이었다. 이때까지도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은 불분명한 상태였으나, 조선의 실질적인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의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많은 옛 지도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후 청나라는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경계를 지었는데, 바로 이 토문강이 지금까지도 국경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중국은 중국어로 토문과 두만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이 송화강 지류임은 이미 여러 고지도와 고문서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일제가 경제적 이득 위해 간도 팔아

이 상태에서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제가 1909년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광산채굴권을 얻는 댓가로 간도지역을 청나라에 넘기는 간도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협약은 대한제국을 배제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일본이 맺은 조약으로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더욱이 중국과 일본은 1952년 4월 ‘1941년 12월 이전의 모든 협약·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선언하여 간도협약 역시 이미 효력을 상실한 것이다.

육낙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총무는 “중립지대였던 간도에 먼저 들어가 개간을 한 것은 바로 한민족”이라고 말하고 “이미 무효화된 간도협약을 폐기하고 명백한 우리의 영토인 간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완의 해방, 우리 영토는 어디에...

이와 같은 명백한 객관적,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에 의해 대마도와 간도는 우리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의 실무를 담당한 마산시의회 박중철 의원은 “8.15광복으로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으나 영토를 온전히 수복하지 못했으므로 이는 미완의 해방”이라고 말하고 “국가는 어쩌면 대마도와 간도를 잊었는지 몰라도 국민들은 침탈당한 우리의 영토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실효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간도와 대마도를 당장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종우 교수는 “중요한 것은 당장 이 영토를 찾을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대마도와 간도가 우리의 영토이며 또 언제가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소중한 영토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영토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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