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4.29 21:40
- ▲ 강천석 주필
보수 세력에게 아직 궤도 수정 시간은 있다
정권과 財界, 책임 밀지 말고 서로 끌어안아야
4·27 재·보선은 기껏해야 중간급 지진이다. 진도(震度)로 따져 7이 될까 말까다. 이만한 지진에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일로 내려앉았다. 대통령 비서들도 일괄 사의(辭意)를 표시했다. 장관들도 솎아내고 갈아끼운다고 한다. 눈치와 담쌓고 살던 정권도 천당 다음이라는 분당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심상찮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내년 4월 총선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게 어제오늘의 말이 아니다. 여론조사라는 도깨비놀음에 헛말뚝을 박고 선 사람들만 먹구름 뒤편의 천둥소리를 놓쳤을 뿐이다. 4·27 분당(盆唐) 지진은 내년 4월 대지진설(說)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제 관심은 내년 지진이 4월 지진 한 번으로 잦아들 건가 아니면 12월 쓰나미로 이어질 건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말 같지 않은 말이라며 핀잔을 받았을 이런 궁금증이 당당하게 질문을 하고 나섰다.
국민 곁엔 족집게 같은 여론조사기관도, 어떤 물음에도 막히지 않고 척척 대답해주는 만물박사 정치 컨설팅 회사도 없다. 더듬이 하나에 의지해 더듬고 사는 게 국민이다. 정치 절기(節氣)가 변하는 걸 알고, 무대 위 인물의 정체를 꿰뚫고, 상대가 먹잇감인지 사냥꾼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것도 더듬이 덕분이다. 이 원시적 더듬이가 이번 4·27 재·보선에서 청와대의 현대적 안테나를 압도했다. 너나없이 다들 살기가 더 팍팍해졌다고 하소연한다는 걸 미리 일러 준 것도 이 더듬이다. 국세청과 통계청의 뒤늦은 통계는 그저 사족(蛇足)일 따름이다. 잘되는 자영업자 소득이 10년 사이 몇 십% 늘었다는데 안 되는 업자는 찬물에 자라 목 움츠러들듯 수입이 반 토막 났다거나 월급쟁이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역시 구문(舊聞)이다. 몸 사릴 사람은 자기 몸부터 사렸던 여권이 이번 선거에 기대를 걸었다면 그게 정신 나간 것이다.
청와대 안테나만 망가진 게 아니다. 세계와 경쟁하고 세계 1등 하는 상품을 몇 개씩 갖고 있다는 재벌 안테나도 눈치 없고 물정 모르긴 마찬가지다. 2009년 퇴직금이나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문을 연 가게 주인 78만여명이 돈만 까먹고 가게를 닫았다. 이 통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증권시장 상장 회사와 비상장 회사 주주들이 가져간 이익 배당금이 발표됐다. 어제는 조(兆) 단위로 이어지는 대기업들의 올해 1분기 순이익 발표도 나왔다. 대기업 대주주로 2000억·1000억·수백억씩 배당을 받은 명단에는 같은 성씨(姓氏)들이 즐비했다. 물론 경영혁신과 기술개발로 물려받은 회사를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을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한 기업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누구 부인, 누구 아들, 누구 딸, 누구 조카라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다른 성씨도 거개가 처가 쪽 식구들이다.
이 가운데 누군가 멀리는 록펠러나 카네기처럼, 가까이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대학 교육 혁신을 위해, 의학 진보를 위해 자신에게 돌아온 배당금을 내놓았다는 소문은 없었다. 자신을, 또 자신에게 이익을 안겨준 체제를 방어할 뜻이 없는 것이다. 문 닫은 수십만명 가게 주인 얼굴과 족보(族譜) 덕에 고액 배당을 받은 몇 백명 얼굴을 겹쳐 보면 이 나라 경제 체제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시장경제'라는 말 대신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꺼내 들고 나오는지 그 배경을 알 듯하다.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원래가 '공격용'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사람도 기업도 중간이 허물어지고 양극단으로 찢겨가는 현실이 '시장경제'라는 말을 뭉개고 녹슨 '자본주의'라는 단어에 새 기름을 칠하고 새 숨을 불어넣은 것이다.
우리는 바다 건너 후쿠시마에서 작은 지진이 큰 지진으로, 큰 지진이 대지진으로, 그리고 이어 밀어닥친 해일(海溢)이 땅 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치 원리와 경제의 이치도 때론 자연의 법칙을 닮아간다. 4·27 재·보선은 그런 쓰나미의 기점(起點)일지 모른다. 한나라당과 재계(財界), 넓게 말해 이 땅의 보수세력에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지구와 충돌하는 길로 달려오는 혜성의 궤도는 누구의 기도(祈禱)로도 바꿀 수 없다.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
결정적 분수령(分水嶺)을 넘기 전까지는 당사자들의 결단과 행동으로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피난 보따리부터 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건 내 책임'이라 해도 부족할 대통령과 한국 제1재벌 총수가 초과 이익 공유 문제에 이은 국민 연금의 주주권한 행사 문제를 놓고 다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그게 상책(上策)이라고 짐작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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