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에서 피해자들의 인터뷰어로 출연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는 피해자와 나눈 대화를 복기하며 차오르는 감정에 말을 멈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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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영화를 촬영하다 보니, 광화문광장에서 내게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김영오(고 김유민양 아버지)씨는 최근 영화 한 편에 인터뷰어(interviewer)로 출연했다. 6.25 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에서 김씨는 강희권 태안유족회 상임이사와 유족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를 만든 구자환 감독은 <레드툼>, <해원> 같은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해왔다. 구 감독과 김씨는 2018년 말 처음 인연을 맺었다. 김씨가 지인의 추천으로 <해원>을 본 뒤 자신이 거주하는 광주에서 공동상영회를 연 것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구 감독은 김씨에게 <태안> 출연을 요청했고, 2019년 1월부터 작업에 들어가 최근 제작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을 지난 13일 광주극장에서 만났다. 광주극장에선 오는 27일 <태안> 상영회가 열린다(21일엔 메가박스 창원점에서도 상영회가 진행된다). 2021년 정식 개봉을 앞두고 6.25 전쟁 70주년인 올해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것이다.
아래는 두 사람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두 사람의 첫 인연
▲ 태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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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김영오씨를 섭외하게 됐나.
구자환(아래 구) :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김영오씨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다. 언론을 통해 어떤 분인지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영오씨가 '광주에서 영화 <해원>의 공동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더라. <해원>을 보고 놀라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김영오(아래 김) : "2018년 가을에 한 지인이 꼭 보라면서 <해원>을 추천해줬다.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부터도 몰랐던 이야기였다. 혼자 보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 공동상영회를 계획했다."
구 : "<해원> 공동상영회 후 식사 자리에서 영오씨가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더 큰 아픔을 가진 사람도 많더라"라고 말했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 그때 <태안>의 출연자를 찾고 있었는데 차마 말을 못 꺼냈다. 영오씨도 아픔이 큰 사람이잖나. '또 다른 아픔에 이 사람을 끌어들여도 되나'라는 생각에 사실상 포기했었다. 근데 <태안> 제작 초기에 영오씨가 후원금을 보냈더라.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가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제안했다."
김 : "사실 당혹스러운 제안이긴 했다. 영화는 내가 해보지 않은 일 아닌가. 부담감 때문에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널리 알릴 기회'라고 조언을 해줘서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 6.25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의 구자환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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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의 소재인 6.25 당시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구 : "처음에 영화의 소재를 여순사건으로 할지, 태안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을 알려야겠단 생각에 태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선택했다. 학살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인민군 점령기에 일부 보복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수복 이후 이른바 부역자 학살이 또 일어난다. 이 학살이 정말 끔찍하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인민군 점령기 학살에는 각 100여 명씩 사망했는데, 부역자 학살 때 900명 가까이 죽는다."
- <태안> 이전에도 <레드툼>, <해원>과 같은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구 : "2002년 태풍 루사가 왔을 때 내가 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창원의 산에서 유골이 흘러나왔다. 2년 뒤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져 취재를 갔는데 깜짝 놀랐다. 민간인 학살이란 이야기가 나왔고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는데,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부끄러웠다. 불과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온 거다.
빨갱이로 몰려 한평생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온 유족들이 유골을 보고 욱했는지 '꼭 영화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우리의 억울함을 알려달라'고 그러더라. 그땐 (기자 업무도 있고 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대신 중간중간 영상을 계속 찍어왔다. 그리고 처음 나왔던 영화가 2013년 <레드툼>이다."
"나도 아파봤잖나"
▲ 6.25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에서 피해자들의 인터뷰어로 출연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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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에서 김영오씨의 주된 역할은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김 : "질문 하나 하나 던지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나도 아파봤잖나.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되나', '내가 잘못 물어서 상처를 주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평생 말 한마디 못하고 한이 쌓여왔던 분들 아닌가."
- 제작 기간과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
구 : "2019년 1월부터 기획했으니 만 2년 정도 걸렸다. 사전 조사를 위해 2019년 3월부터 태안에 갔었고, 촬영은 2019년 5월부터 진행됐다. 태안에 한 번 가면 보통 2박 3일 촬영하고 오는 데 정말 힘들었다. 그동안 만든 영화 중 <태안>에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었다. <레드툼>은 1000만 원 들었고, <해원>은 2500만 원 들었다. <태안>엔 영오씨처럼 출연자도 있고 촬영팀도 늘었기 때문에 7300만 원이나 들었다."
김 : "가끔은 제가 직접 운전도 했다(웃음)."
- 가장 기억에 남는 유족이 있다면?
김 : "아버지를 잃은 어르신이 생각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펑펑 울더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질문을 잘못해 아픔을 드린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속에 있는 거 다 털어놓고 나니 눈물이 난다'더라. 평생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으니 한이 터져 눈물을 막 쏟아내신 거다. 지금도 울먹울먹 하다. 나도 그 느낌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구 : "모든 유족들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김 : "큰형과 아버지를 잃은 또 다른 어르신도 생각난다. 아들이 옆에서 밭농사를 돕는데, 그 아들이 우리 세대더라. 인터뷰 중 아들이 와서 계속 인터뷰를 말렸다. 빨갱이 자손이라고 연좌제까지 걸려 있었으니, 얼마나 핍박과 설움을 당했겠는가. 아무도 못 믿는 거다. 그럼에도 어르신께서 다 증언해주셨다."
구 : "<레드툼>, <해원>을 만들며 여러 민간인 학살 사례를 취재했지만, <태안>의 사례처럼 사람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사례는 처음 들었다. 나중엔 겨우 찾아내긴 했지만 그 현장을 찾아내기 정말 힘들었다. 유족 분들도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워 안 가본 거다."
-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제주도도 참 아름다운 섬 아닌가. 태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구 : "노래도 있을 정도로 태안의 만리포가 굉장히 유명하지 않나. 그런데 이곳의 관광버스 주차장이 학살 지역이었다. 저도 몰랐지만 주변의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 피해당한 분들만 이 사실을 아는데 평생 입 밖에 말 한마디 못 꺼낸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면 유족도, 목격자도 말 한마디 못하겠나. 이게 영화를 만든 주요한 이유다. 태안은 클 태(太) 자에 편안할 안(安) 자를 쓴다. 넉넉하고 편안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말 끔찍한 학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진상규명 없는 화해란 없다"
▲ 6.25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의 구자환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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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후 단식으로 항의한 김영오씨도 빨갱이란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 :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할 때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빨갱이 새X'라고 손가락질하더라. 기사에도 그런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땐 '빨갱이? 빨갱이는 북한군 아닌가?'라는 생각밖에 못했다.
민간인 학살 당시에도 '저 사람 빨갱이'라고 손가락 총을 쏘면 무조건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라. 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이 왜 내게 빨갱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 빨갱이 프레임이 뭔지 알겠더라. <조선일보>가 '단식하는 김영오의 주치의는 통합진보당 당원'이란 기사를 썼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빨갱이라며 해체시켜버렸고, <조선일보>는 그 프레임을 내게도 씌워버린 것이다."
구 : "인민군 이발한 사람도 부역 혐의로 죽었다. 그런 사례가 많다. 수복 후 경찰이 들어오니 마을 별로 환영대회를 열었는데 그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는데도 죽였다더라."
김 : "이발했다고 죽이고, 밥 해줬다고 죽이고. 전쟁 중 민간인에게 무슨 힘이 있나. 심지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선생이 치안대장이었는데 자기 제자들이 죽어나가는데도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구 : "1950년대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문제의 경우 1960년대 한 번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민간인학살전국유족회가 유해도 발굴하고 이런저런 조사도 해놨는데 5.16군사쿠데타 이후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쿠데타 직후 박정희가 한 일이 유족회 간부들을 용공분자란 이유로 군사법원에 회부해버린 것이다. 무기징역 내지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물론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그때 유해 발굴 현장이나 자료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때부터 유족과 목격자들이 1987년 6월 항쟁 때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인권과 생명을 중심으로 놓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후 광주 학살(5.18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문제가 잘 해결됐다면 개인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소중함이 시민들 가슴에 새겨졌을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면 어떤 정권도 함부로 못한다. 광주 학살을 저지른 자들도 '엄청나게 죽였더니 찍소리도 못한다'는 걸 생각했던 거다. 국민의 생명과 인권의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 영화 <태안>의 포스터. | |
ⓒ 구자환 |
- <태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김 : "유족 분들과 약속한 게 있다. 인터뷰 마치고 나서 '이 사실을 꼭 젊은이들에게 알리겠다. 이젠 난 빨갱이가 아니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위해 지금도 많은 분들이 손을 잡아주고 계신다. 이들을 위해서도 많은 분들이 같은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구 : "6.25 전쟁 이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100만 명 정도로 본다. 근데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꾸 들춰내서 뭐하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의 답은 분명하다. 이 문제의 진상을 드러내지 않고 정리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화해란 없다. 우리나라의 좌우 반목이 심하다고 하는데 서로의 아픔을 알아야 화해가 될 것 아닌가.
최근에도 우린 잔혹한 일을 겪을 뻔했다. 박근혜 정권 탄핵 집회 때 계엄령이 검토됐다는데 그런 게 학살의 시작이다. 사람이 알면 당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최소한 총을 들지 않은 민간인은 죽이면 안 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지켜야 한다. 그래야 어떤 잔혹한 정권이 들어서도 국민의 생명과 인권만큼은 지킬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 6.25전쟁 중 벌어진 태안 지역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태안>의 구자환 감독(오른쪽)과 인터뷰어로 출연한 김영오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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