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철폐’ 車·철강 수출길 활짝… 내수 위주 中企 피해 우려 [‘메가 FTA’ RCEP 서명]
입력 : 2020-11-16 06:00:00 수정 : 2020-11-16 08:55:40
RCEP과의 철강 교역, 세계 물량의 절반
냉장고·세탁기·볼베어링 등도 관세 ‘0’
섬유 등 중기품목도 추가 시장개방 확보
KIEP “韓 GDP 10년간 0.51% 성장 효과”
기존 FTA 대비 추가 양허 품목 136개
쌀·고추·마늘 등 민감 품목은 양허 제외
콘텐츠 개방 확대 ‘한류’ 진출환경 개선
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아르셉)이 서명되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대국 대부분과 FTA 협정을 체결하는 효과를 누리면서도, 농업과 수산업 부문은 추가개방을 최소화해 현재와 비슷한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거대 시장인 인도가 막판에 빠졌지만, 한·인도 FTA가 체결된 상태이므로 한국은 이번 서명으로 한국은 미국, 중국, 독일, 인도 등 세계 5위 경제대국과 모두 FTA를 체결하게 된 셈이다. 특히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거두게 되면서, 브라질을 제외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과 모두 협정을 체결하게 됐다.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이 RCEP 협정문 타결을 선언한 지난해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RCEP 발효에 따라 상품 관세 감축으로 한국 경제는 0.41∼0.62%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KIEP는 RCEP에 인도가 불참하고 자유화 수준이 92%일 경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0년에 걸쳐 0.51% 증가하고, 소비자 후생은 약 54억8000만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혜 업종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과 철강업 등이 꼽힌다. 인도네시아는 자동차 부품에 최대 40% 부과했던 관세를 없앴다. 현대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서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부품업계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종에서는 봉강, 형강 등 관세율 5%의 철강제품과 철강관(20%), 도금 강판(10%) 등에 대한 관세가 철폐됐다. RCEP 대상 지역은 우리에게 세계 철강 교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RCEP 지역에 대한 수출은 129억달러로 전 세계의 47.8%를 차지했다. 수입은 120억달러로 전체의 81.8%였다.
전기·전자 제품 가운데는 일부 국가에서 최대 30%에 달하던 냉장고와 세탁기, 최대 25%였던 냉방기에 대한 관세가 없어진다. 또 합성수지·플라스틱관·타이어 등 석유화학과 볼베어링·기계 부품·섬유기계 등의 기계업종에서도 관세를 추가로 없앤다. 섬유 등 중소기업 품목과 의료위생용품 등 ‘포스트 코로나19’ 유망 품목도 추가 시장개방을 확보해 수출길이 넓어질 전망이다.
이로써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은 수출시장 확대와 다변화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협정에서는 중소기업이 경제성장·고용·혁신에 기여함을 인정하고, 중소기업들 사이의 협력을 증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협정 체결에 따라 값싼 외국산 제품 수입이 늘어나면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은 일정 부분 피해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대형 FTA 체결로 내수 위주 중소기업은 위축되고, 경쟁력을 지닌 중소기업은 살아남는 등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는 RCEP이 국내 농업 부문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RCEP 체결 결과 자료를 통해 농산물의 민감성을 반영해 이미 체결된 FTA 대비 추가 개방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쌀·고추·마늘·양파 등과 바나나·파인애플처럼 수입액이 많은 민감품목은 양허 제외로 보호했다.
기존 FTA 대비 추가 양허 품목은 136개다. 일부 품목은 관세 철폐 기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구아바(관세율 30%), 파파야(30%), 망고스틴(30%)은 유예기간 10년을 뒀다. 중국에는 녹용(관세율 20%·관세철폐기간 20년)과 덱스트린(8%·즉시철폐), 호주에는 소시지 케이싱(27%·20년)을 추가 개방했다.
수출 유망품목 중 소주·막걸리(일본), 사과·배(인도네시아), 딸기(태국) 등의 품목은 시장 접근성이 개선될 전망이다. 수산 분야 협상은 새우, 오징어, 돔, 가리비, 방어 등 국내의 민감한 수산물에 대해서는 현행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류 콘텐츠 진출 환경은 보다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시청각 후반제작과 방송 분야를 제외한 문화서비스 시장을 전면 개방함으로써 가장 높은 자유화 수준을 보였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다수도 서비스무역의 자유화를 높이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추가로 개방했다. 필리핀은 게임 분야에 외국인 지분 제한을 없앴고, 말레이시아는 인터넷·모바일 게임시장을 개방했다. 회원국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저작권 보호의 근거가 되는 규범들을 도출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체부는 “협정에 참여한 국가들이 한류 콘텐츠의 주요 소비국이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한류 콘텐츠의 안정적인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美 제치고… 中, 亞·太 영향력 확대 기대감
중국은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자유무역협정)인 RCEP(역내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체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영향력 확대에 미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자평하는 분위기다.
15일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RCEP 발효 시 상품 관세 감축으로 중국 경제는 0.55%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히면서 수치적 성장보다는 아시아 지역이 경제적으로 미국보다 중국과 긴밀한 연관을 맺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부각했다.
앨릭스 카프리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중국 주도의 RCEP 체결에 대해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광범위한 지정학적 야망을 공고히 하게 됐고, RCEP은 일종의 보완 요소”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밝혔다.
미국의 무역 압박 탈출구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은 다자간 FTA인 RCEP 체결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띄우고 있다. 홍콩시립대 왕장위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에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편을 선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이자, 지역경제 통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중국21세기경제보도 역시 “RCEP 협상 성공은 동아시아 경제통합 20년 역사 이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RCEP에 대해 “충돌과 대항이 아닌 단결과 협력으로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다)하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라고 말했다.
일본은 RCEP 체결로 한국에 대한 공산품 수출 관세 철폐율이 현재 19%에서 92%까지 단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RCEP은 일본 입장에서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3위 교역 상대국인 한국을 포함하는 첫 FTA이다.
신문에 따르면 RCEP 발효로 일본 기업이 한국에 수출하는 에어백과 전자계 부품 등 자동차 관련 품목 중 80% 가까이는 관세가 철폐된다. 일본 청주인 니혼슈와 일본 소주 등의 관세도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일본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공산품의 경우 관세 철폐율이 현재 8%에서 최종적으로 86%까지 높아진다. 전체 RCEP 가맹국을 상대로 한 일본 수출 공산품의 관세 철폐율은 품목 수 기준으로 최종 91.5%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이 수입하는 쌀과 보리 등 5개 주요 농산물은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우중·김희원·강구열 기자, 세종=우상규 기자, 베이징·도쿄=이귀전·김청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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