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서 따라잡기]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김유하 기자
  • 승인 2013.03.20 18:51
  • 호수 154
  • 댓글 0

일은 있지만 일자리는 없다

‘지하철역에서 일하던 사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용 승객은 끊이지 않지만, 운임을 받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매표원에게 ‘역삼이오’라고 행선지를 밝히고 차비를 지불해 표를 건네 받았던 일은 이젠 추억이다. 종이 전철표는 재사용이 가능한 1회용 교통카드로 바뀌었고, 대다수는 영구 사용이 가능한 교통카드를 구입해 쓴다. 개찰구 근처에 나란히 선 자동매표기와 교통카드 무인충전기는 매표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근 개통한 수도권 지하철 노선인 신분당선의 전차에는 기관사도 없다. 종합관제센터에서 원격으로 무인운전 운행을 한다. 사회 곳곳에서 첨단기계와 정보기술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노동을 대신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예견은 적중했다. 인간의 노동이 필연적으로 감소한다고, 인간에게 노동을 빼앗는 장본인은 효율성을 앞세운 기술과 그로 인한 경영 혁신이라고. 그 끝은 대량 실업일 수밖에 없다고. 1995년 발표한 ‘노동의 종말’은 당시 기술문명에 취해 있던 전 세계에 잿빛 미래를 제시했지만, 장밋빛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리프킨은 말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노동자 없는 세계

▲ 노동의 종말
[베리타스알파 = 김유하 기자] 노동은 역사적으로 인간 생존의 핵심 영역을 차지했다. 구석기 시대의 사냥과 채집, 신석기 시대의 농부, 중세의 장인, 현재의 조립 라인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기계와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한 3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종말을 야기한다고 내다봤다. “지능 기계가 무수한 과업에서 인간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프킨에 따르면 미국의 기업은 매년 20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앴다.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은 업무의 리스트럭춰링(restructuring, 기업에서 사업이나 조직의 효율을 높이려 실시하는 구조개혁 작업)으로 8000개의 직무를 제거했다. ‘유니온 카바이트’는 1995년까지 5억7500만 달러의 비용을 줄이고자 생산·관리·유통부문 리엔지니어링을 실시해 전체 종업원의 22%에 해당하는 1만3900명을 해고했다. 미국 실업률은 2000년 1월에는 4%였지만 2003년 봄에는 6%로 상승했다.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기술확산론은 무참히 깨어졌다. 신 기술이 생산 원가를 절감하고 값싼 재화의 공급을 촉진해 구매력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시장이 커지면서 국부가 증대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했지만, 실업률 상승 구매력 감소 등 전 세계를 불황시대로 몰아 넣었다. 적은 노동력으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보다 성능이 향상한 컴퓨터 네트워크는 일은 있지만 일자리가 없는 현상을 부추겼고 고용 없는 성장을 가능케 했다.

한 번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 새로 일자리가 생기기는 하지만 대부분 저임금 부문이거나 임시직일 뿐이다. 미국에서 1994년 4월에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는 저임금에 해당됐다. 그마저도 자리를 꿰기 힘들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보다 숙련된 노동자조차 구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002년 기준 미국에서 해고된 경영 및 관리자와 전문직 노동자 가운데 22%와 중간 경력을 가진 실업자 중 25.6%는 6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노동 없는 세계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주들에게는 고되고 정신 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 세계적인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극심해지는 일자리 양극화

리프킨은 사회사가인 헤리슨과 블루스톤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사회적 지형을 제시한다. “노동 시장의 상층부는 경영자, 변호사, 회계사, 은행가, 경영 컨설턴트 및 그 밖의 기술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을 포함하며, 그들의 일상 임무는 그들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세계 기업 및 기업의 서비스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 노동 시장의 하층부는 그 밖의 운이 별로 없는 도시 거주 집단으로 그들의 공통적인 기능이란 상층부 노동자들을 보조하는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1993년 미국 ‘통계국’보고에 따르면 3690명의 미국인이 빈곤 수준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1989년에 비해 540만 명 늘어난 결과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중산층이 무너지는 추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1개 회원국 가운데 중산층(소득이 중위소득의 50~150%인 가구) 비율은 최하위권인 18위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에 대한 중산층 비율은 1997년 74.1%에서 2011년 67.7%로 낮아졌다.

극소수 엘리트가 세계 재화의 98%를 생산하고 대다수가 2%만을 생산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사회분열을 야기한다. 적은 일자리를 둘러 싼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쓸모 없는 존재로 규정하며 우울증에 시달린다. 리프킨은 1992년에 발생한 LA폭동의 원인에 대해 “도시 내부 거주민의 집단적인 분노에 불을 당긴 것은 실업과 빈곤, 절망감”이라고 말했다. 폭동의 진앙지인 사우스 센트럴지역은 1970~1980년대 7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남아있는 노동자도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시달린다. 빠른 작업과 높은 성과를 요구하는 기업과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무직과 서비스 사원은 컴퓨터로 신속하게 정보를 접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인간의 상호작용을 참지 못해 조급함과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정보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미국 ‘기술 평가청’이 발간한 ‘전자 감독자’라는 1987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무직의 20~35%가 첨단 컴퓨터 시스템의 감시를 받았다.

리프킨은 심리학자 브로닌의 환자였던 슈퍼마켓 출납원의 경험을 사례로 든다. “앨리스의 주인이 전자 현금등록기를 설치하였을 때 이 컴퓨터 기계는 중앙의 터미널에 출납원별로 그 날 얼마나 많은 품목의 스캐닝을 해대었는지에 관한 현재의 양을 송신하는 일종의 카운터였다. 앨리스는 더 이상 손님들과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손님과의 잡담은 그녀가 계산을 위해 전자스캐닝을 할 수 있는 품목의 숫자를 줄여 놓아 결국 일자리가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의 회복 필요

노동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불가항력에 휩쓸려 생산현장에서 내쫓길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비일비재한 일들이다. 리프킨은 대량실업을 막고 실업과 고용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돕는 전제로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시장경제사고에서 벗어나 봉사 연대 친밀감 등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을 기반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제3부문(비영리 사회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친다.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 시간 단축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의 피로를 감소시키고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한편, 대량 해고에 대하여 노사측으로 하여금 공정한 대안을 제시해준다. 휴렛패커드의 그레노빌 공장은 생산시설 가동시간을 주5일에서 7일로 늘리고 주4일 근무제를 채택하여 250명의 노동자를 오전·오후·야간으로 나눠 근무하게 한 결과 3배 이상 생산성이 높아졌다. 1993년 ‘가정 및 노동 연구소’가 종업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5%가 가정의 책임과 사적인 필요를 목적으로 어느 정도 소득을 포기하고 대신 레저를 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제3부문은 자원봉사 등 전통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회서비스를 가리킨다. 빈민 구호, 기초 의료 서비스 제공, 청소년 교육, 임대 주택의 건설, 환경 보호 등 공공분야다. 기계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에서 고용 환경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기술향상에 따른 잉여 노동력을 사회적 경제에 투자해 실업률을 줄이면서도 사회적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복지 지출의 대안으로 사회적 임금을 제공하는 안을 고려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등이 필요하다.

리프킨에게 노동의 종말은 양날의 칼이다. 노력에 따라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에서 살 수 있다고 본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 오고 있다.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의 여부는 문명화가 제3차 산업혁명의 바퀴를 따라갈 후기 시장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