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무죄 반박유죄’ 시대에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 :2013-10-25 18:48수정 :2013-10-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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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디시에 있는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 입구.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법은 사회계약의 대등한 당사자인 모든 국민에게 같은 잣대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표창원 제공
미국 수도 워싱턴디시에 있는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 입구.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법은 사회계약의 대등한 당사자인 모든 국민에게 같은 잣대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표창원 제공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32> 연재를 마치며
미국 수도 워싱턴디시에 있는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 입구엔 ‘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정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어떤 위기와 위험이 발생해도 사회는 지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간단한 글귀 안에는 ‘자본주의 기반 민주 사회’의 원칙과 철학이 담겨 있다. 원래 무한히 자유로웠던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서로를 해치거나 빼앗지 않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보는 ‘사회계약론’이 그것이다. 국가 권력의 실체는 국민 각자가 ‘사회계약’에 따라 ‘양보한 자유와 권리’다. 마치 고객이 맡긴 돈을 은행이 관리·투자하고, 은행에서 빌려간 돈에 이자를 물리고 기한 내에 갚지 않으면 압류 등의 절차를 거쳐 원금과 이자만큼 회수를 해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예탁하지 않고 집 금고 안에 둔 돈은 은행이 가져갈 수 없고, 대출한 원금과 이자 이상의 돈을 은행이 빼앗아갈 수 없듯, 국가 권력은 사회계약의 틀 안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고 개입할 수 있다. 같은 금융상품에 가입한 모든 고객에게 같은 금리를 적용해야 하듯, 사회계약의 대등한 당사자인 모든 국민에게 법은 같은 기준과 잣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은행에 예탁한 돈이 필요하다며 밤에 은행 금고를 부수고 돈을 꺼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듯, 자유를 행사한다며 다른 사람에게 가해를 하고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일은 처벌받아야 한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정의’만 지켜진다면 사회는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전경환과 ‘사모님’의 형 집행정지 중단

그런데 부당하게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법 행위가 중단되거나 처벌받지 않고 방치되는 반면에, 이에 항의하는 질서위반 행위만 단호하게 차단되고 처벌된다면 ‘정의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있을까? 같은 성폭력이나 절도·횡령·살인 행위가 저질러져도 누구는 처벌을 피하거나 경미한 처벌만 받는데 다른 사람은 무거운 벌을 받는다면 ‘정의에 대한 믿음’이 그 사회에 유지될 수 있을까? 2012년,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우리나라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3.8%가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2013년 6월 흥사단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47%가 ‘10억원이 생긴다면 감옥에 갈 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대통령이라는 ‘5년 기한의 절대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국가정보원, 군 등 모든 ‘국가 정의 시스템’을 사유화하거나 무력화, 유린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고 이를 말리거나 꾸짖는 사람들은 모두 인격살인이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의의 위기’ 상태다. 사회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인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에 머무는 가장 주된 이유다. <한겨레> 토요판의 ‘죄와 벌’ 시리즈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비방했다고
50대 아주머니는 구속했지만
야당 후보를 비방한 이들은
입건유예·기소유예됐다
반복되는 ‘친박무죄 반박유죄’

국민의 73.8%는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창원·지강헌·전두환·전경환…
‘법 앞에 불평등’이 계속되는
우리나라는 정의의 위기 상태다

‘죄와 벌’ 시리즈의 첫 대상은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이었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에서 탈출한 뒤 2년6개월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전국을 누빈 무기수 신창원이 검거된 뒤 받은 형량은 22년6개월. 기존의 무기징역에 추가로 더해진 형량이다. 정권을 찬탈한 12·12 군사반란,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5·18 폭력진압, 수천억원에 이르는 뇌물 수수와 국고 찬탈의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특별사면되어 황제 같은 생활을 해온 전두환과 비교해볼 때, 과연 ‘죄에 걸맞은 타당한 벌’일까?

신창원은 남의 돈을 훔치고, 피해 가정에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남긴 ‘나쁜 범죄자’다. 어려서부터 ‘상습 절도범’이었고, 후배들과 함께 침입 강도를 저지르다가 공범인 후배가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현장에 같이 있었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적합한 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분명히 범인은 현장에 함께 있던 미군 군속 자녀 2명 중에 있는데, 우리 검찰과 법원은 둘 중 누군지 모른다며 결국 무죄를 선고하고야 말았다. 강도를 함께 모의해서 실행하고 살인이 벌어진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의 의도나 행동이 전혀 없었음에도 ‘강도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신창원에게 보였던 ‘과도한 정의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사법 식민지, 정의 식민지에 살고 있는가?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르짖던 다른 탈주범 지강헌은 500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총 17년형을 선고받은 데 반해 같은 시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100억원대의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유죄를 선고받고도 징역 7년형에 그쳤다. 그마저도 2년이 지난 1991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런 ‘법 앞의 불평등’은 피해의 확산과 가중을 부른다. 전경환은 결국 2006년 소위 ‘구권화폐 사기’, 2009년 광주 건설업체 대상 사기 등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업체와 가정을 파탄시키고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그런데 2010년 징역 5년형이 최종 확정된 전경환은 교도소에 수감된 지 채 두달도 지나지 않아 병을 핑계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초호화 병실에서 3년 넘게 휴양생활을 해왔다. 한겨레 ‘죄와 벌’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소위 ‘여대생 청부살해 제분업체 회장 사모님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형 집행정지가 중단되어 교도소로 되돌아갔다.

<7번방의 선물>, 늦게 온 정원섭씨의 정의

2012년 제18대 대선을 둘러싼 ‘친박무죄, 반박유죄’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수 아무개씨가 박근혜 후보의 아들’이라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50대 아주머니를 구속하고, 도난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박근혜 후보가 소장하고 있다는 의혹을 역시 트위터에 올린 안도현 시인을 기소한 우리 검찰은 대선 기간을 포함해 수년간 조직적이고 반복적, 상습적, 체계적으로 야당 후보와 정치인, 비판적 지식인 등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를 한 자들은 ‘상관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입건유예 내지 기소유예했다. 2012년 12월14일, 민간인은 절대로 열람도 할 수 없는 국가기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일부 내용을 쪽지에 적은 채 부산 대중 유세장에서 줄줄 읽어내려가며 그를 기반으로 한 허위사실로 야당 후보를 비방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은 ‘법 앞의 평등’을 도대체 누구에게 팔아먹었는가? 이러고도 가난한 국민의 생계형 범죄와 분노에 찬 국민의 저항적 질서위반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할 면목이 서겠는가?

대한민국은 정권의 위기 때마다 엉뚱한 사람을 간첩이나 영웅으로 둔갑시켜온 어두운 역사가 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수지 김 살인범’ 윤태식이 대표적인 예다. 국민적 분노를 야기하는 엽기적인 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해결 지연이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까 두려울 때 ‘범죄자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죄와 벌’ 시리즈에서 소개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정원섭씨가 대표적인 예다.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파출소장의 9살 딸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되자 국민적 분노가 일어났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내무장관을 불러 조속한 검거를 지시했고, 내무장관은 치안본부장을 불러 ‘열흘 안에 범인을 못 잡으면 모가지’라며 호통을 쳤다. 줄줄이 아래로 불호령이 내려졌고, 기적처럼 10일 만에 범인이 검거된다. 피해 어린이가 평소 잘 가던 동네 만홧가게 주인 정원섭씨. 범행 현장에서 경찰이 데려온 정씨의 아들이 자신의 연필을 발견하고,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만홧가게에서 일을 했던 종업원들도 정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정씨도 경찰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한 뒤 현장검증까지 마쳐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정씨는 이미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자백은 강압과 고문 때문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정씨는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감형을 받고 15년 만인 1987년에 출소했다.

정씨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2001년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2003년 대법원조차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설립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정씨의 사건을 다시 조사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당시 범인의 정액을 검출해 혈액형을 확인했는데 정씨의 혈액형과 달랐다는 결정적인 ‘은폐된 증거’를 찾아내게 된다. 2007년 7월, 위원회는 사법부에 재심권고문을 보냈고, 2008년 11월 춘천지방법원은 치열한 법정공방과 심리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009년 2월 서울고등법원 역시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2011년 10월27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져 누명을 쓴 지 39년 만에, 77살이 된 정원섭씨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잔인할 정도로 아주 늦었지만 ‘정의’가 찾아온 것이다. 경찰과 검찰로 대표되는 국가는, 자신과 권력자의 과오를 감추겠다는 이유 하나로 약하고 힘없는 국민 한 사람의 삶을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짓밟았던 것이다. 조작 수사, 고문, 허위 자백, 증거 은닉에 가담한 경찰과 검찰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원섭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심보감>을 인용해 “하늘은 옳지 못한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若人 作不善 天必戮之·약인 작불선 천필륙지)는 말을 남겼다. 범인과 정액과 혈액형이 다른 정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범인으로 ‘만든’ 가해자들뿐 아니라 명백한 부정선거 범죄를 감추기 위해 성실하고 양심적인 공직자들을 파멸시키고 있는 현재의 권력 범죄자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범죄 중에는 생계형, 원한이나 치정 등 처벌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이해할 만하고, 동정의 여지가 있는 사건들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이해나 동정의 여지가 없는 반인륜적 유형들이 있다. 친족 성폭행, 가족 살인, 아동 성폭행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죄와 벌’에서 다룬 의사의 ‘만삭 부인 살인사건’과 배아무개 교수의 부인과 아들 살인사건은 그 범행의 치밀성과 계획성, 비인간성뿐 아니라 전문가라는 특성과 지위를 이용한 증거 인멸 과정의 철저함이라는 측면에서 공포스러울 정도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유산을 미리 받으려 했던 미국 유학생 박한상과 최근 발생한 인천 모자 살인범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마저 불러일으켰다.

권력형 범죄는 사회인륜 붕괴와 무관치 않아

아동 성폭행 살인범 김길태, 손녀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들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처벌과 비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인륜적 범죄의 특성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절대 신뢰하거나, 가해자의 지배와 통제하에 있어 전혀 방어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 주의하거나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그 발생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의 제 기능, 가족간 대화, 교육 과정의 정상화, 성격이상 혹은 일탈 청소년에 대한 치료, 보호, 선도 시스템의 구축 등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부서인 법무부와 집행부서인 검찰의 분리 및 전문화가 필요하고, 보호관찰 기능의 독립이 시급하다. 국가 교육목표와 체계의 변화, 위기 가정에 대한 복지적 개입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 문화와 윤리의 정착일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계층에 따른 차별과 무시, 냉대가 만연하면 계층 상승이나 유지를 위한 지나친 경쟁이 촉발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스트레스와 분노 및 불만이 팽배하게 된다. 이는 다시 법과 도덕, 윤리 등 사회의 규범 체계를 약화시키고 ‘감정’과 ‘이익’이 강하게 연관된 극단적 범죄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사회 정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포함한 헌법 정신을 무력화시키며, 교육과 복지 등 사회 정책의 국민적 선택 과정을 왜곡시키는 ‘국정원 사건’ 같은 권력형 범죄가 사회 인륜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완전한 사회’도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되겠다거나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을 저지르거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고 숨기느라 더 큰 문제와 위기 상황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범죄의 실상과 발생 원인 및 배경을 분석해 차분하고 체계적인 대응책을 제시해나가는 사람이 법과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담당해야 한다. 결국은 정치와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범죄자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는 사람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법과 불의를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고 그들이 이 사회의 범죄를 줄여나간다. ‘죄와 벌’ 시리즈가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만드는 데 기여했길 바라며 그동안 ‘죄와 벌’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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