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던 그 시각, 인근 공해상에 공교롭게도 당시 이른바 쌍용훈련을 마치고 모항인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환 중이던 미 해군 7함대 소속 본험 리처드함이 있었다. 4만 톤이 넘는 이 막강한 상륙강습함에는 수송용 대형 헬기인 '시 나이트(CH-46, Sea Knight)' 42대를 비롯해 해상 수색 능력이 뛰어난 대잠헬기(MH-60R) 6대를 탑재하고 있었다. 3천 명이 넘는 미 31해병대 병력을 태우고 있던 이 함정은 의료 시설 또한 웬만한 병원을 능가하는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당일 저녁, 이 본험 리처드함의 조 타인츠 사령관은 함대 공식 페이스북에 급박했던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공지를 남겼다.
"우리는 구조 요청을 받고 즉시 침몰하는 배를 향해 전속력으로 방향을 바뀌었습니다. 우리 대원들은 무슨 일을 하던 즉각 중지하고 구조활동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우리 대원들은 이 비극의 급박함을 알고 최고의 프로페셔널 정신으로 대응했습니다. 우리 수색팀은 즉각 한국 당국과 통신을 했고, 항해팀은 현장 접근의 안정한 코스를 파악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최고의 속력(RPM)을 올렸고 선상 승무원을 비행기(헬기) 출발을 준비했으며, 우리 대원들은 신속하게 20인용 구명보트를 장착해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메디컬팀도 즉각적인 준비 상태를 갖추었으며 우리 대원들은 만일의 필요에 의해 조그마한 보트도 대기시켰습니다. 정말 진정한 팀의 정신(effort)이었고 필요한 순간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본험 리처드'함의 블루팀과 그린팀은 비극에 빠진 친구를 돕기 위해 어깨를 맞대며 일했습니다.(중략)"
타인츠 사령관이 이처럼 즉각 비상(alert)을 발령하고 긴급 구조에 나섰지만, 결론적으로 세월호 구조를 위해 가장 먼저 사고 해역으로 급파한 MH-60 헬기 두 대는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진입 불허 방침으로 세월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회항하고 말았다. 이에 관해 미 해군도 16일(한국 시각 17일), 발표한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미 수륙양용 11함대 헤이디 에글 제독의 말을 인용해 "우리는 사고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 즉각적인 도움을 위해 항로를 변경했다"며 "그러나 한국의 대응(미숙)은 우리 (구조) 자산의 즉각적인 이용을 덮혀버리고(eclipsed) 말았다"며 이례적으로 당시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군의 '국방일보'격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도 당시 "구명보트(20인승)를 장착한 MH-60 헬리콥터가 초기에 본험 리처드 구조함에서 출발했으나, 이내 회항(recall)했다"고 주한 해군 아브라함슨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해병대 병력을 비롯한 막강한 구조 자산을 가진 본험 리처드함이 즉각적인 세월호 구조에 투입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일부 언론도 뒤늦게 다음 날(17일) 보도에서 "본험 리처드호를 이용하면 투입된 헬기가 급유 등을 위해 육지로 날아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그만큼 구조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해군)는 구조 헬기의 사고 해역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국방부 "이미 침몰한 상황"... 다음 날도, "인근 해역 수색하라"
당시(17일) 국방부는 트위터에 올린 해명 자료를 통해 "본험 리처드함은 오전 11시 58분경 우선적으로 MH-60 헬기 2대를 사고해역으로 출동시켜 탐색구조 현장에 도착했으나, 당시 사고 현장에는 이미 사고 선박(세월호)의 선체가 대부분 침몰한 상황에서 한국 공군 C-130 항공기를 비롯한 다수의 구조헬기가 집중 운영되고 있어, 한국 해군은 원활한 구조작전을 위해 출동한 미 헬기를 본험 리처드함으로 복귀시켜 추가 요청에 대기토록 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 정오 전후 세월호 참사 사고 현장 상공에 미군 구조 헬기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많은 한국의 구조 항공기나 헬기들이 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을까? 하지만 한국 정부의 본험 리처드함의 세월호 구조 투입 거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고 다음 날(17일) 미 '성조지'는 주한 해군 알로 아브라함슨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사고 다음 날에도) 본험 리처드 구조함에서 출발한 MH-60 헬기는 수색 현장 지휘관의 요구에 따라 재난 현장에서 약 5에서 15해리 또는 6에서 17마일(27km) 벗어난 지역을 수색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어 "아브라함슨 대변인은 왜 그들(한국 관계자)이 이 지역을 수색하라 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관해 당시 4월 21일, 미 '성조지'는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월요일(21일), 본험 리처드함이 이 지역을 떠날 계획은 없다며 미국의 추가 군사 자산이 수색에 참여할지는 알지 못하며, 한국 인력은 여객선 자체에 (수색의) 초점을 두는 반면 아마 본험 리처드함은 여객선에서 떠내려온 신체(bodies)를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마디로 사고 해역 근처에는 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험 리처드함에 수습되었다는 희생자도 없었다. 결국, 본험 리처드함은 당시 4월 22일, 한국 측이 자체의 수색 자산이 충분하다고 통보해 수색과 구조 임무를 완수했다며 진도 해역에서 출발하여 다시 일상적인 작전 구역으로 원대 복귀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대변인, 미 국무부 대변인 등은 미국 함정 본험 리처드함의 이름까지 직접 거명하며 사고 현장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진입 거부로 미국 전함의 구조 헬기는 사고 현장에 접근한 적도 없고, 미국 구조함도 인근 지역의 수색만 전담하는 모양새를 냈을 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된 여러 한미 합동 해상 군사훈련에서는 전투(combat)뿐만 아니라 재난구조 등을 의미하는 인도적 작전(humanitarian operations)을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는 막강한 구조 자산을 갖춘 미 함정이 세월호 사고 인근 해역에 있었음에도 인도적 구조 활동은 한국 정부의 거부로 하나도 진행되지 못했다.
왜 한국 정부는 단 한 명의 구조 인력이 아쉬운 사고 당일 상황에서 막강한 구조 자산을 겸비한 미군 함정의 구조 손길을 외면한 것일까? 왜 3천여 명의 해병대 특수 요원을 태운 미 전함을 사고 다음 날에도 사고 인근 해역 멀리서 떠내려온 신체만 수색하라고 한 것일까? 왜 미군 전함을 그렇게 세월호 사고 해역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 것일까? 반드시 밝혀져야 할 세월호 참사 의혹의 또 다른 하나이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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