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스님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 대예견'

"기미년인 올해 큰일 난다" 박정희 암살 예언…"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8/08/30 [16:42]

탄허스님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 대예견'

"기미년인 올해 큰일 난다" 박정희 암살 예언…"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박정대 기자 | 입력 : 2018/08/30 [16:42]

▲ 장화수 박사는 장 박사는 생전의 탄허스님과 나눈 대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를 가볍게 넘겨 단순한 예언이나 참설 따위로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건의내막

 

탄허스님과 장화수 박사의 대담(對談)은 큰스님이 열반하기 전 ‘한반도의 미래관, 세계관 및 우주관’에 관해서 단둘이 숱하게 논의되었던 사실들을 장 교수가 그대로 사장시키기 아까운 비밀 사료들이라 아까운 대로 최소한만을 추려서 엮어 세상에 공개했다. 큰스님의 감춰 둔 크나큰 포부들을―무릇 3차원의 초능력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로 집대성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최대공약수를 재구성하여 엮은 것.

 

장 박사는 이 대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를 가볍게 넘겨 단순한 예언이나 참설 따위로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궁금증을 일으켜 고래로 고금동서를 통해서 수많은 참설(讒說)이나 비결(秘訣)이 횡행해 왔다. 예컨대 서양에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에 관한 5백년 전의 예언(豫言)이나, 우리나라에서 고려 때부터 전래되는 정감록 비결(秘訣)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탄허 큰스님(대선사, 대종사)께서 3차원의 차원에서 부차적으로 표명하신 ‘예언과 사상’은 마치 송나라 때 유명한 학승, 소강절(邵康節)에 비견할 만한 대학승의 성현으로 받들어서 손색이 없다"고 덧붙였다.

 

생전의 탄허스님을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를 내다본 스님의 대예견(豫見)'을 소개한다.


▲증언1: 최옥화 스님; 대원암에서 출가. 2011년 7월29일. 장소, 대전대덕 네이커피숍
“저는 스님이 예언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쉽고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스님은 미래와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것은 스님이 처음에 유학부터 공부를 하신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직전에 스님께서 그런 대화(예언)를 하시는 것을 제가 잠시 들은 적은 있습니다.”


▲증언2: 원행 스님 ; 월정사 부주지. 자광사·삼화사·구룡사 주지 역임. 2012년 11월5일. 장소 월정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탄허 스님은 불교만을 위해서 고민한 분이 아니고, 한반도만을 내다본 분이 아닙니다.…우주와 세계를 통섭하시면서 새로운 방향, 세계를 제시한 어른이십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스님은 철인, 도인, 대학승으로 말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이 시대를 내다보는 예지로서 젊은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력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 세계를 내다보시면서 추후, 40∼50년 후에는 계룡산이 이 땅의 중심이 된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청남대, 육해공군의 3본부가 들어간 신도안, 지금의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 등이 다 계룡산 근처입니다.


이야기를 바꾸어서 하겠습니다.…나는 20대에 세상이 싫어서 세상 종교를 방황하다가 탄허 스님을 대원암으로 가서 찾아뵈었습니다. 제 관상을 흘깃 보시더니 ‘멍청이’라고 소리쳤어요. 제 법명(法名)을 너는 떠돌아다녀야 되니 ‘원행(遠行)이라 불러라. 그런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해, 기미(己未)년이지요. 봄부터 기미가 있다, 기미가 보인다. 즉 금년 기미년에 큰일 난다고 예언을 하셨어요. 그런 일(박정희 시해)이 났네요.”  


▲증언3 진관 스님: 진관사 회주.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  2011년 6월6일, 장소 진관사
“탄허 스님은, 우리나라는 평화통일은 안 된다고 그러셨어요. 북한의 변동을 말씀하시면서, 애들이 성냥갑 갖고 놀면서 불장난을 하다가 성냥갑 안에 불이 번져서 확 타버리는 듯한 그런 증세는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또 이북에 나이 젊은 사람이 무슨 장(長-김정은)이 돼서 변화는 있을 것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천안까지는 조금 위험하고, 천안 아래로는 괜찮다는 말도 하셨어요.”

 

“박정희 총 맞는다” 미리 예언

▲증언4
“탄허 스님은 장화수 박사가 객원교수로 일본국 명치대학으로, 그 뒤 미국 버클리 대학으로 떠나기 직전 인사차 찾아뵈었더니, 단둘이 있는 좌석에서 손을 살짝 붙잡고 “박정희 암살예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1978년 2월).


☞“이보게 며칠 전 늙은 남자무당 하나가 찾아와서 큰절을 4배 하고는 다음과 같은 귀신들린 방언(放言)을 하지 않았겠나. 보기에 큰 귀신이 들린 신통한 남자무당(90%는 여자무당임)이기에 이런 때는 할(갈=喝, 스님들이 귀신 잡는 방법)을 일갈했지. ‘너 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되는 것 알아!’ 그랬더니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듯 미쳐버리더니 ‘큰스님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맞습니다. 김(金)가예요. 보입니다. 태극기 속에서 권총을 꺼내 쏩니다. 박 대통령이 죽습니다’라고 모골이 송연한 말을 내뱄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해 10월26일 똑같은 시해사건이 서울 궁정동에서 일어났네. 이런 일을 체험해 보면 이 세상은 상식으로나 학술로만 통하지는 않는 일도 있구나 라고 여러 가지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네.”  


▲증언5
“큰스님은 마의(태자)관상법에 능통하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상(1978년)을 보시면서 ‘금(金)왕지절에 총 맞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눈 밑이 푹 패어서 허약하기 때문’이래요. (해설: 얼굴이 관상인데 코가 중앙토로 중심이고, 눈이 운세의 절반을 점한다고 하시면서, 예컨대 이마=목, 턱=화, 코=토(인중-人中), 왼쪽 눈밑=금, 우측 눈밑=수라고 함). 결국 눈밑이 푹 파였기 때문에 ‘금왕지절=음력8월(양력10월26일)에 총(금) 맞을 기미(증조)가 보인다’라고 귓소리로 말했어요. 아마 극비니까 나 혼자 들었겠지요. 불행하게도 적중했습니다.” 


그때 장화수 박사는 1978년 2월 야밤에 그런 예언을 듣고, 즉시 미국 버클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뜬금없이 1979년 10월25일(미국시간) 그 암살 소식은 그날 정오에 NBC TV 뉴스를 통해서 확인되면서 큰스님의 영험에 탄복했습니다. 뉴스는 한국 서울 궁정 레스토랑에서 새벽에 프레지던트 박이 암살(어세시네이트-Assassinate)된 것 같다는 충격적 뉴스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격변을 초래했습니다.


▲증언6
“큰스님을 공양하던 대원암에 신통하기 이름난 서석보살(여자 고급무당-당시 군 고급장교들은 많이 알고 있었음)이 큰스님께 속삭이기를, 1974년 8·15 해방 기념일에 대통령께 위험이 닥친다고 암시를 주었어요. 그것도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지하철을 뚫기 때문에 땅기운(地氣)이 경련을 일으켜서 청와대에 해(害)가 온다는 문제였어요. 그런 다음 직언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겨우 신도로 늘 찾아오는 서울지구 보안사령관에게 뱅이를 해보라고 했지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일개 대령 지위로 국란을 막을 도리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제일 쉬운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보살 왈 ‘굵은 미국 소금 한 댓박을 준비해서 서울역 앞에서 청량리역 앞까지 조금씩 뿌리라’ 하니까 지프차를 타고 그리 했습니다. 청량리역 지하철 개통(開通)하던 그날, 청량리역 지하철 개통하고 자리를 옮겨서 국립극장에 가서 대통령 연설 도중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습니다. 하늘에는 보라색 노을이 졌어요. 이건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한반도가 세계중심 된다”
 ▲증언7
“이건 또 풍수(風水)에 얽힌 야담 같은 미신이지만 대통령을 놓고 그럴 듯한 풍설이 돌았어요. 큰스님께서 몇 번 하신 말씀인데, 한양(서울)의 땅기운(地氣)이 대변화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땅굴(터널)이 서울의 안산(案山)인 남산(南山-목멱산)을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니 균형을 잃고 안정을 해친다는 말씀이었어요. 거기에 지하철이 땅속을 뒤집고, 또한 청계천이 서쪽 인왕산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압구정동에 가서 한강과 합류하고 있지요. 그런데 엄청난 한강은 멀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황해를 향해 흐릅니다.


지금 현재 강북 문제는 협소하고 장풍득수가 서울의 지기(地氣)를 해칠 바도 전혀 없을 뿐더러 한강 남쪽 중심으로 남산 이남의 거대한 면적에 수도권까지 형성되어 자연결정론적인 풍수(掌風得水)는 힘을 잃고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크고 작은 환란이 많았지요.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의 서거나, 청와대 옆 궁정동에서 있은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해서 강북 중심의 풍수가 참설로 유비통신으로 횡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증언8
“큰스님은 늘상 한반도가 세계 중심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되면 국제적인 권능(權能)의 지도자(指導者)가 이 땅에서 출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말로 요순(堯舜) 시대에나 나왔던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한반도에 나타나고, 한국은 그때 만주(滿洲)까지 우리 땅이 되어 영토가 늘어나며 만주 계룡산[흥안령산맥=봉천(奉天)]이 중심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반도는 보통 극동(極東)=원동(遠東)이라고 중국 사람들이 부르지만 실은 ‘극동(極東)=동극(東極)’, 즉 북극과 같은 동극(東極)이 되고 해는 동방에서 한국을 향해 뜬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청(淸)나라 황제가 되었던 누루하치가 너의 조상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백두산(장백산)을 가리키며 ‘바로 이곳이다’라고 소리치면서 ‘봉천(奉天, 하늘을 받든다는 뜻, 지금의 심양)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사실 조선족과 여진(만주)족은 가장 가까운 사촌관계 종족이라는 뜻이래요. 실제로 청나라와 조선은 백두산(白頭山)을 양국이 공유했고, 지금도 북한과 중국이 국경선(國境線)을 백두산 천지 한가운데로 경계 짓고 있지요.


큰스님은 일찍이 한국에는 ‘권능(權能)의 지도자’가 나와서 앞으로 남북통일을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지금 때는 임박했는데 천시와 지리와 인화가 미처 합치되지 않아서 무극(無極)과 같은 안개 속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피력하셨어요.


지난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에 기미·경신년에 12·12 사태가 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라고 큰 변란의 신군부(전두환·노태우)가 출몰했지만, 큰스님은 전혀 ‘권능의 지도자는 아니 나온다, 참된 인물은 이 땅에 통일(統一)이 되면서 출현한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신군부 이것은 통일을 위한 진통(鎭痛)에 불과한 허상(虛想)일 뿐이라고 간단히 설명했지요.”


▲증언9
“탄허 큰스님은 한반도 중심의 통일이 올 때, 전지전능할 만한 권능의 지도자가 나온다고 일갈을 하셨습니다. 항상 말씀하시길 ‘엉뚱한 지도자가 나온다’라고 표현 했습니다. ‘엉뚱한’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살 만큼 해석이 구구한 갖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가 예상 밖의 일을 저지른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 가장 이상적이고 초능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人物)이라고 생각하면 합당하지 않을까 사료될 뿐입니다. 가장 좋은 의미에서 우리가 열망하는 구세주나 메시아에 비견하는 인물이 되겠지요.


필자가 직접 체험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79년 한국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변란이 혹심한 그 한 해 동안 필자는 미국 버클리대학에 연구(남북한 경제교류, 박사논문) 중에 있었습니다. 강연을 두 번 담당했는데, 봄철은 교양강좌로 ‘탄허 스님의 사상과 미래한국’이란 제목으로 사상과 예언을 강의하면서 색다른 관심과 크로스 문화에 젖어 있는 300여 학생 청중들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철이 오면서 12·12 사태가 난 직후에 유명한 스칼라피노 교수와 같이 두 번째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통역 놓고 한국말로 현 사태를 분석하면서 당면한 정치상황이 본국에서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해서 평가를 부탁 받았습니다. 나는 그때 탄허 큰스님의 평소 예언을 떠올리면서 즉석에서 “지금 한국에는 엉뚱한 인물이 누군지는 몰라도 새 지도자로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설파했습니다, 순간 장내는 큰 소리로 술렁이고 그게 누구냐고 소란했습니다. 사실 나도 모르는 소리를 지른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엉뚱한 지도자는 탄허 스님 말씀하시던 권능의 지도자였을 뿐, 과연 그런 것이 나올까 믿기지 않고 막연한 말이었지요.


그때 장내에는 비지팅 스칼라(방문교수)로 와 있던 서울대학 여러 교수들을 비롯해서 유학생들, 현지 정치인들, 미국 망명 중인 정치인들 및 미국 학계 관계자들이 있었지요. 군부정권의 결과는 후에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급전직하로 빠졌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권위’가 부여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한국정치가 아이덴티티(주체성), 레지티머시(정당성), 콘센서스(합의성)를 최소한이라도 갖추기를 바랐으나, 겉만 좋은 사회정의만 나왔을 뿐 혼돈의 도가니로 빠지고 딕테이터십(권위주의 독재)으로 횡행했을 뿐이었지요.


그때 필자 강연의 본뜻을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스칼라피노 교수는 호의적인 칭찬을 해주었고, 비지팅 스칼라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사실(결과) 큰스님 말과는 정반대 현실로 나타났을 뿐이었지만요. 5공화국으로 나타난 군부(軍府) 인물들은 권능의 지도자는 커녕 정상적인 보통 지도자도 아니고 국가의 주체성이나 정치의 정당성이나 국민의 합의성이나 그 어느 것도 없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이상향)는 그렇게 쉽사리 오지 않는다는 체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지요.”

 

월악산의 통일 예언
▲증언10: 조선일보 조용헌 칼럼 탄허 큰스님 예언 인용
“월악산(月岳山)의 통일 예언<조용헌 살롱〔971〕>: 월악산 영봉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난다. 여자 임금이 나타나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 월악산(月岳山)이라 하면 충북의 제천과 충주에 걸쳐 있는 산이다. 월악산 일대 장년 식자층 사이에서는 통일을 예언하는 이 풍수도참(風水圖讒)이 진작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이 예언의 출처를 추적해보니 불교계 고승이었던 탄허(呑虛·1913∼1983)가 그 발원지였다.


탄허 스님이 1975년 무렵 월악산 자락인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덕주사(德周寺)에 들렀다고 한다. 덕주사는 신라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딸인 덕주(德周)공주가 머물렀던 절이다. 마애불을 덕주공주가 세운 것이라고 전해질 만큼, 덕주사는 망국공주의 한(恨)이 서려 있는 절이다. 탄허가 왔을 때 덕주사 주지를 맡고 있었던 월남(月南)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풍수도참에 기반을 둔 예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로 여겼음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천시한다.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월악산 봉우리 위에 뜬 달이 물에 비친다는 이야기는 납득이 안 됐다. 주변에 큰 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 임금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70년대 후반 댐 공사가 시작돼 1983년경 충주댐이 완성되는 게 아닌가!! 충주댐에 물이 차기 시작하니까, 월악산 달(月)이 드디어 물에 비치게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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