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관천초교 '맨발걷기' 화제
맨발로 운동장 흙길 매일 40분…"공부가 더 잘돼요, 신기하죠"
"화가 덜 나요" "인사 더 잘해요" 학생 스스로 등교시간 앞당기고 수업할때는 집중력까지 높아져
시행 두달만에 마법 같은 변화
"인성교육 효과 커 확산될 필요"
맨발로 땅을 딛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흙의 부드러운 촉감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다. 더욱이 학교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경우 흙과의 접촉을 불편하게 여긴다. 또 대부분 부모들도 아이들이 손으로 흙장난을 해도 손사래 치며 막는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학교 운동장 맨발걷기'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과 흙과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체(體)·덕(德)·지(智) 교육으로 이끄는 학교가 있다. 대구 관천초등학교의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교장 아이디어로 3월부터 시작
대구시 북구 태전동에 있는 관천초교는 13개 학급, 학생 수 260여 명의 작은 학교다. 지난 1일 찾은 이 학교에선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모여 '관천 어울림 체육대회'가 한창이었다. 학부모들의 줄다리기, 학년별 계주 등 다양한 체육행사를 마치고 정리체조를 한 후 학생들은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했다.
곧이어 1학년을 선두로 6학년까지 학생들은 맨발로 줄줄이 학교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신나는 동요에 맞춰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과 손을 잡고 걸었으며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걷는 모습에도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관천초교는 학교 주요 행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맨발로 운동장을 걷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학교 운동장 흙길 맨발걷기' 프로젝트다. 지난해 9월 이 학교로 첫 부임한 이금녀 교장의 아이디어로 '맨발 교육'이 출발했다. 이 교장은 "앞서 교육청에서 오래 근무하는 동안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왔는데 우연히 맨발걷기를 접하면서 몸이 회복되는 것을 체험했다"면서 "내가 학교에 나간다면 꼭 이 운동을 소중한 학생들과 또 힘들어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마침 관천초교는 우레탄 트랙을 깔려고 예산까지 잡혀 있었는데, 지난해 유해성 파문으로 흙 운동장을 유지한 것도 다행이었다.
이 교장은 연초 올해 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전체 교직원 워크숍 자리에서 '맨발걷기' 시행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했다. 학부모들에게도 가정통신문을 보내 자녀들의 맨발걷기 참여 동의서를 받았다. 3월 새 학기 첫날, 대구교육대학교 행복인성연구소와 '흙길 맨발걷기' MOU를 체결하고 전체 교직원들이 첫 체험을 했다. 학교공개의 날에는 학부모들에게 '맨발걷기와 인성교육의 효과'에 대해 교육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참을 이끌어 냈다.
이후 매일 오후 4시 30분 일과를 마친 교사들이 먼저 맨발걷기를 하면서 운동장 구석구석 널려 있는 돌멩이와 유리조각들을 주웠다. 맨발로 걷기에 안전하고, 부드러운 흙길 운동장이 만들어졌다. 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 및 발 건조 시설도 갖췄다.
◆선생님과 걸으며 정겨운 대화
관천초 학생들은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침 등교시간과 중간 체육시간, 점심시간, 하교시간 등을 활용해 하루 40분 이상의 맨발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 교장은 학교 단위에서 규칙적으로 맨발걷기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3월부터 시작된 운동장 흙길 맨발걷기는 학생과 교사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맨발걷기를 하고 교실에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김재현·3학년),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맨발 달리기를 해요."(김동율·3학년)
교사들은 "1학년 때부터 성격이 예민하고 신경질을 많이 내서 걱정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맨발걷기 이후 신경질이 줄고 친구들과의 부딪힘이 없어졌다"(구영미 교사·2학년 담임)며, "수업시간에 충동 조절을 못 해서 무작정 떼를 쓰거나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학생도 매일 운동장을 돌고 나서는 변화가 나타났다. 자기 의사를 선생님에게 표현하고 눈을 맞추어 인사를 한다"(최수형 교사·5학년 담임) 는 등의 사례를 들려줬다.
모두 맨발걷기에 빠지지 않고 아침시간과 중간 체육시간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들이다. 맨발걷기를 하고 오면 아침독서 시간이 진지해진다고 했다. 또 학생들은 운동장을 걸으면서 스스로 돌멩이를 줍고, 평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도 줄었다. 학교에서 만난 교사들은 "맨발걷기는 분명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적인 힘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매일 오후 7시 맨발걷기에 참여한다는 학부모 김은애 씨는 "아이가 흉곽 기형이 있어 숨 쉬기가 불편해 학교생활에 의기소침해했다. 그러다 흙길을 매일 걸으면서 증상이 한결 나아지고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고 했다.
맨발걷기에 재미를 들인 학생들은 등교시간까지 스스로 앞당겼다고 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등교하던 학생들이 8시에 학교에 도착해 운동장을 걷는다. 맨발걷기 목표를 저학년은 3~5바퀴, 고학년은 6~10바퀴로 정했지만 매일 20바퀴 이상 도는 학생들도 꽤 있다.
또 퇴근 후 교사들끼리 맨발로 걸으면서 학교문화도 바뀌게 됐다. 학생들 하교 후 교실에서 담임교사들이 개별로 교재연구를 하거나 업무를 보고 바로 퇴근하다가 운동장에서 맨발로 만나 서로 업무나 학생지도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는 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효과도 있다.
이 교장은 "흙길 맨발걷기는 학생들의 건강과 두뇌활성화, 학생들 속에 잠재해 있는 바른 인성을 일깨우는 모두를 살리는 참삶을 위한 교육"이라면서 "지금도 조금씩 효과가 나고 있지만 꾸준히 실천하면 반드시 작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학생 건강(체)과 바른 인성(덕), 두뇌 활성화(지)를 위해 시작된 관천초의 행복한 흙길 맨발걷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흙의 부드러운 촉감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얻는 교육적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된다면 전체 교육공동체로 확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석수 기자 s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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