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모인 노동자대회 “노동 절망 사회, 전태일 숨져 간 49년 전과 뭐가 다른가”

등록 :2019-11-09 18:08수정 :2019-11-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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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열려
60일째 점거농성 중인 도로공사 요금수납원 노동자와 학교 비정규직 등
“대법원 판결도 무시한 채 비정규직 자회사 강요” “교육 공무직 법제화해야”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자의 대투쟁으로 민주화 이룬 현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어도 지키지 않은 이 나라가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49년 전과 뭐가 다릅니까.”

9일 서울 영등포구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 지난 9월9일부터 2달 동안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교통공사(도공) 본사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며 점거 농성 중인 도명화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이렇게 호소했다. 도 부위원장은 “도공은 불법과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이제는 진짜 청와대가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970년 22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난 지 오는 13일이면 49년이 된다.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앞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 10만명(주최 쪽 추산)은 △노동개악 분쇄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사회공공성 강화 △재벌체제 개혁을 요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정부가 노동개악 운을 띄우면 국회가 더 많은 개악을 요구하는 ‘노동 절망 사회’다. 대법원 판결도 무시한 채 비정규직 자회사 강요와 질 것이 뻔한 소송으로 시간과 돈을 허비해 차별을 고착화하고 있다. 노동이 없는, 노동을 희생하는 정부는 포용과 공정을 얘기할 수 없다”며 “노동자의 자긍심을 걸고 노동기본권 쟁취와 비정규직 철폐, 사회 공공성 강화와 재벌체제 개혁을 위한 총파업 투쟁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 김천시 도공 본사에서 60일 넘게 점거농성을 하다가 노동자대회 참가를 위해 지난 7일 서울로 온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 백흥기(55·사진 왼쪽)씨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조합원들. 오연서 기자
경북 김천시 도공 본사에서 60일 넘게 점거농성을 하다가 노동자대회 참가를 위해 지난 7일 서울로 온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 백흥기(55·사진 왼쪽)씨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조합원들. 오연서 기자

이날 노동자대회에선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이 각자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김천 도공 본사에서 60일 넘게 점거농성을 하다가 노동자대회 참가를 위해 지난 7일 서울로 왔다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 백흥기(55)씨는 “도공은 자회사 입사가 정규직 전환이라고 주장하는데, 자회사는 덩치가 큰 비정규직일 뿐, 외주 회사와 처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도공이 ‘직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시행에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동자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60일째 이어지고 있는 도공 본사 점거농성 상황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백씨는 “(농성 현장에) 창을 굳게 닫아도 찬바람이 들어와 최근에는 비닐로 창을 다 막았다”며 “날이 추워져 농성이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요금수납원들 13명은 본사 점거농성 60일째를 맞아 청와대로 행진을 이어가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과 장애인이 대부분인 요금수납원들 100여명의 인도행진에 경찰이 3개 중대를 배치한 것부터 과잉대응”이라며 “종로경찰서는 요금수납원들의 몸에 덧씌운 상처와 기습적이고 악의적이었던 과잉 대응에 사과해야 한다. 연행한 동료들도 당장 석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청와대 행진 톨게이트 노동자 13명 연행)

경남 양산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12년 동안 일하고 있는 문경화(50·사진 오른쪽)씨와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 오연서 기자
경남 양산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12년 동안 일하고 있는 문경화(50·사진 오른쪽)씨와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 오연서 기자

교육 공무직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리사와 교무보조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교육 공무직은 일부 시·도 조례에만 규정되어 있고, 법적인 근거가 없다. 무기계약직 또는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20만명에 이른다. 경남 양산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12년 동안 일하고 있다는 문경화(50)씨는 “급식 노동자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건 불에 데는 등 크고 작은 사고에 자주 노출된다는 점이다. 근골격계 질환뿐만 아니라 질병, 사고가 많다. 그런데 대체인력이 없어 아파도 그냥 진통제를 맞고 참고 일을 해야 하는 등 처우가 열악하다”며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있는 교육 공무직들을 ‘진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20년째 일하고 있는 박인기(51)씨와 아들. 오연서 기자
충남 당진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20년째 일하고 있는 박인기(51)씨와 아들. 오연서 기자

가족과 함께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민도 있었다. 충남 당진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20년째 일하고 있는 박인기(51)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이날 낮 12시에 여의도에 도착했다. 박씨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중에는 무기계약직 등 다양한 종류의 비정규직이 많다. 학교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돈을 가지고 기간제 직원들을 채용하기도 한다. 정부 지원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먼 훗날 커서 노동자가 될 아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 3년째 노동자대회 때마다 아들과 함께 오고 있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노동자대회에서는 국외에서 온 활동가들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람슈메이 홍콩노총 건설노조 활동가는 “송환법(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하는 대대적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조 결성의 물결이 홍콩 안에서 형성됐다. 노동권, 자유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오후 4시30분께 본 집회가 마무리된 뒤 참가자들은 국회로 행진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철도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은 서울 여의도와 청와대 사랑채 앞 등 서울 곳곳에서 이날 오전부터 사전집회를 이어가기도 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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