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일본 포기하지 않았던 인권운동가, 그 숭고한 일생

[리뷰] 영화로 만난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삶

19.08.15 17:11최종업데이트19.08.15 17:11
 영화 <김복동>(2019) 포스터

영화 <김복동>(2019) 포스터ⓒ 뉴스타파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고 김복동(1926~2019).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기억될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에 앞서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인권운동가라는 정체성에 더 부합하는 위인이었다. 

배우 나문희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 바 있는 김복동은 <아이 캔 스피크> 속 나문희처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했던 만행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며 고군분투 한 바 있다. 고령의 연세에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전쟁의 참사를 알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김복동은 한 치의 흐트림이 없었고 항상 꼿꼿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뉴스타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인권 평화운동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복동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김복동>(2019)은 1992년 김복동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놓는 증언을 시작으로, 바쁜 일정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씻고 옷 매무새를 꼼꼼히 정리하던 김복동의 생전 모습을 강조한다. 매사 흐트림 없었던 김복동의 정갈한 성품이 수십년째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던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터. 이쯤 되면 궁금해지기도 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어째서 어떻게 수십년 넘게 자신들의 과거 만행을 인정하고 반성 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질긴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영화 말미 배우 한지민의 내레이션을 통해 <김복동>은 김복동을 이렇게 평가한다. 분노와 고통을 감내하고 평화와 인권 향상의 물길을 열기 위해 노력한 사람. 암 투병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차별받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장학금을 마련한 어른. 김복동이 고령의 연세에도 전 세계를 누비는 평화 인권 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개인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후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희망과 의지로 맞물린다.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뉴스타파

 
어떤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끌려 갔던 할머니 대부분이 돌아가신 만큼, 과거의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한일 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게 맞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러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2015년 한일정부의 밀약으로 졸속으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이었다. 아직도 살아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모르게 한일 정부 관계자 마음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화해와 치유를 논하는 발상도 놀랍지만, 고작 10억엔의 위로금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들던 한일정부의 사려깊지 못한 태도는 평생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녀)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섰던 시민들에게 엄청난 치욕과 상처를 남겼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졸속으로 강행한 '화해,치유재단' 설립 이후 반평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헌신해온 김복동의 몸과 마음 또한 급격히 무너져 갔다. 혼자 거동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몸과 마음 모두 성한 곳이 없는 상황 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복동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해 앞장섰고 말로만 화해와 치유를 논하기 전에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촉구했다.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영화 <김복동>(2019) 한 장면ⓒ 뉴스타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자면, 비가 많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암 투병 중에도 휠체어에 몸을 기대어 사과하지 않는 일본과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향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김복동은 발언이 끝나고 차에 올라탄 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향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시라는 정의기억연대 활동가의 위로에 "욕을 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라면서 말을 급격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 준다. 

평화인권운동가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어떤 쓴소리와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와 분노에 관해서는 한없이 말을 아끼던 김복동 할머니. 대부분의 성범죄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김복동 또한 기억조차 하기 싫은 피해 사실을 거듭 떠올리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더 거동이 불편한 또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대신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연단에 오르고 주일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외친 김복동의 숭고한 일생은 영화 <김복동>을 통해 그녀의 진가를 알게된 사람들의 머릿속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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