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세력의 생생한 목소리... 정말 경악스럽다
[리뷰] 영화 <주전장>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본 '위안부' 문제
▲영화 <주전장> 포스터ⓒ (주)시네마달
그동안 일본군 성 노예 피해 문제를 조명하는 영화는 꾸준히 제작됐다. 최근 3~4년간 개봉한 극영화만 해도 <소리굽쇠>(2014), <귀향>(2015),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 <눈길>(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허스토리>(2017)까지 7편이 관객과 만났다. 다큐멘터리로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 <그리고 싶은 것>(2013), < 22 >(2015), <어폴로지>(2016)가 제작되었다. 올해엔 <에움길>(2019)과 <김복동>(2019)이 개봉했다.
영화계에서 일본군 성 노예 문제를 조명하는 데 초석을 마련한 작품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일반 극장에서 개봉한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성 노예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2>(1997)와 <낮은 목소리3>(1999)로 이어지는 연작 다큐멘터리를 발표하며 시대의 아픔을 보듬었다.
지난 7월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도 이 문제를 파고든다. 그런데 그동안 일본군 성 노예 문제를 소재로 한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보인다. 감독인 미키 데자키가 미국계 일본인이란 사실이다. 그는 어떤 까닭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기사를 쓴 우에하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일본 우익 세력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왜 일본의 우익들은 저렇게까지 안간힘을 쓰는 걸까?"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미키 데자키 감독은 자신이 제3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극우세력의 핵심 인물, 활동가, 학자, 저널리스트, 전 일본군 병사, 유튜버 등 관련 인사 30여 명을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련 인사들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첨예하게 대립한다. 영화의 제목이 '주된 전쟁터'를 뜻하는 <주전장>(主戰場)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전장>은 '위안부' 문제의 쟁점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말 성 노예였나', '본인의 의사를 무시당한 채 강제동원 되었나?',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의 숫자는 모두 20만 명일까?' 등. 인터뷰만으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공식 문서와 기사를 검증하고 분석한다.
영화는 한쪽이 문제를 제기하면 반대쪽에서 반론을 내놓고, 다시 반박하는 식으로 편집돼 있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7월 19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인터뷰를 교차 편집한 이유에 대해) 사안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싶었고 이것이 인권의 문제이고 역사, 정치가 얽혀 있는 문제임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장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논쟁 형식에 한 일본인 다큐멘터리 영화제 이사는 "말과 논리의 지적 복싱을 보는 듯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영화는 특히 일본 극우세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본군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잖아요", "일본 정부가 강제연행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일본 사람 대부분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국가는 사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성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매춘부였습니다" 등 극우세력은 끊임없이 망언을 쏟아낸다. 특히 카세 히데아키 일본회의 대표위원의 망언은 참으로 경악스럽다.
"위안부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죠? 이렇게 멍청한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요?"
엇갈리는 주장들 속에서 극우세력의 의도와 민낯은 점차 실체를 드러낸다. 극우 세력은 역사를 부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특별하다"는 인종차별적 주장을 앞세워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길 꾀한다. 나아가 메이지 헌법 시대로 돌아가길 원한다. 역사를 뒤바꾸려는 극우세력의 중심엔 야스쿠니 신사와 천황 중심의 종교 '신토', 그리고 극우 세력의 본산인 '일본회의'가 위치한다. 코바야시 세츠 헌법학자는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하는 일본회의를 우려한다.
"정말 무섭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헌법 개정은 곧 착수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 주전장>은 제3자의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한 영화답게 우리가 불편하게 느낄 부분도 건드린다. 우리나라는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 노예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고발하며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나영 사회학자는 그때까지 피해 여성들을 침묵시킨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성적 순결을 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화가 심했어요. 그렇기에 이 여성들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수치, 가문의 수치, 공동체의 수치다'라는 인식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했죠."
< 주전장>은 여타 '위안부' 소재 다큐멘터리 영화와 달리 피해자의 증언을 최소한으로 실었다. 따로 인터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피해자의 장면으로 채웠다. 영화의 첫 장면엔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 나눔의 집을 찾아온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이용수 할머니가 마주한 모습이 담겼다. 이용수 할머니는 당사자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합의한 정부의 태도에 울분을 토하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호통을 친다.
마지막 장면엔 일본군 성 노예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인터뷰를 배치했다. 시간 순서대로라면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반대로 놓아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처음 장면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협상 타결과 마지막 장면의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를 놓은 <주전장>의 수미상관법은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관련 인사들의 목소리는 많이 나오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현실도 반영한다.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역사, 정치, 여성, 인권 등 <주전장>이 담고 있는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가짜뉴스가 온라인과 SNS를 통해 확산하여 역사의 진실마저 왜곡하는 현실도 언급한다. 그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만의 외교 문제가 아닌, '전시 여성에 대한 폭력'임을 주장한다. 바로 국제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는 외친다.
"'위안부' 문제는 사회가 여성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어떻게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지워내려 했는지, 나아가 이들을 어떻게 성적 대상화 했는지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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