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과장은 얼마 전 팀장의 메일을 받았다. 최고경영자(CEO)가 ‘업무낭비 30% 제거 운동’을 천명했으니 회사 내부의 불필요한 보고, 전자우편, 시스템을 줄이자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이메일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팀장은 ‘불필요한 업무 낭비를 줄이는 아이디어를 1인당 10개씩 적어서 달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불필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몇 달 전 대기업으로 이직한 ㅂ대리는 ‘대기업에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궁금했다. 중소기업에 있을 때보다 시간이 2배는 빨리 가는 듯했다. 뒤늦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복잡한 업무 체계 때문이었다. 하나의 일에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보고만 해도 착수 보고, 중간 보고, 종료 보고, 결과 보고를 정확한 형식에 맞추어야 했다. 이메일 한 통을 써도 수십명의 관계자 가운데 누구를 수신·참조로 넣어야 하는지까지 고민해야 했다. 이런 일들은 ‘시간 도둑’이었다.
프로젝트 기획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정교한 계획=좋은 전략’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인 곳이다. 견고한 프레임과 깔끔한 흑백의 도표와 도형으로 정리된 기획서는 보통 수십 쪽에 이른다. 그러나 꼼꼼히 읽어보면 핵심은 몇 장에 불과할 뿐, 지나치게 신호보다 ‘잡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접근 방식도 너무 다양하고 거창하다. 재미있는 건 몇 시간에 걸친 기획 보고가 끝나면 실행은 오리무중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개는 실무자들이 다시 계획을 단순화시키거나 계획 중 일부만 실행하는 데 그치고 만다.
이제는 경영의 고전이 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여우와 고슴도치의 우화를 통해 이 사실을 지적한다. 여우는 영리한 동물이다. 매일 고슴도치를 공격할 전략과 전술을 짠다. 그러나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우직한 고슴도치다. 고슴도치는 단순한 한가지 전략에 집중한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방어하는 것이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가지 큰 것을 안다. 이 책은 이 비유를 통해 ‘위대한 기업’은 모두 고슴도치와 같이 행동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들은 가장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한가지 비즈니스에 집중한다.
‘고슴도치’ 기업들은 복잡한 현상들을 한데 모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전략으로 축소시킨다. 물론 단순한 전략을 위해서는 주제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 심입천출(深入淺出), 즉 깊이 들어가 얕게 나오는 자세가 필요하다. 깊이 고민해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기업은 오랜 고민과 토의를 통해 그들만의 강점을 단순화하고, 회사의 모든 자원을 여기에 집중함으로써 결국 위대함으로 도약한다.
복잡하면 여러 사람이 실행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전략이 단순해야 하는 이유다. 좋은 전략은 고속도로처럼 목적지를 향해 시원하게 뚫려 있어야 한다. 길이 복잡하거나 가파르면 참여자들이 곧 지치거나 끊임없이 결과를 의심하게 된다. 사람들이 동참하지 않는 복잡한 전략은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
박승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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