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혁신의 '그늘'과 '붉은 깃발법'
입력 2019.05.28 06:00
‘자동화된 첨단 공장에 필요한 직원(?)은 둘 뿐이다.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다. 사람이 하는 일은 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개가 하는 일은 그 사람이 기계를 건드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몇년전 미국에서 회자됐던 유머다. 익살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술발전과 혁신으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데 대한 불안과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우화의 21세기 버전(ver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무리 긍정적인 혁신과 발전이라도 그로 인한 피해자가 나온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는 언제나 기존 산업과 그 종사자들에게 중대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혁신은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 결과에 따라 국가 경제와 산업의 명운이 바뀌기도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말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동차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혁신과 신기술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강조한 말이다. 프리드먼은 함축성 있는 표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무덤 묘비에 이 말을 새길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말은 투표권이 없다. 하지만 마부는 투표권으로 정치인들을 압박할 수 있다. 영국 의회가 1856년 ‘붉은 깃발법’을 제정한 배경이다. 시속 30km로 달릴 수 있는 28인승 증기자동차에 대해 도심에서는 시속 3.2km(2마일), 교외에서는 6.4km 이상 달리지 못하도록 했다. 자동차 55m(60야드) 앞에서 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의회는 자동차 사고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기술 발전에 급제동이 걸렸다. 영국은 증기자동차를 가장 먼저 상용화했지만 붉은 깃발법으로 30년을 허송세월하는 바람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 독일, 프랑스에 넘겨줘야 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력을 키우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현대적 특허 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영국 정치인들이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붉은 깃발법은 자동차 산업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차산업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았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날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택시업계와 차량공유 업계의 대립이 정부와 IT 스타트업계 간 마찰로 번지는 양상이다. 혁신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금융위 소관은 아니지만 ‘타다’와 택시 업계 갈등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했다. 이 대표를 겨냥해 "상당히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와 택시업계에 거친 비난을 쏟아낸 데 대한 지적이다.
이 대표는 정부가 공유경제 진전에 소극적이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해 "어느 나라 부총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기사의 분신 사망과 관련해서는 택시업계에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번 최 위원장의 발언에는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며 조롱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의 언사가 때로 상당히 거칠고 자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할 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 거부감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태는 본인이나 기업, 공유경제 산업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 위원장이 소관 업무도 아닌 일에 그렇게 정색하고 나선 것 역시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논란이 커지자 최 위원장은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톤을 다소 낮췄다. "혁신 사업자도 사회적 연대를 중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름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정부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까지 혁신의 그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실패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이 성공한다. 그 기준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다만 ‘사회적 연대’ 및 ‘상생’과 혁신의 성공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때 사회적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혁신 사업자는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 혁신의 그늘을 살피고 피해자들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혁신 사업자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혁신을 하더라도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은 혁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붉은 깃발법은 혁신의 그늘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응이다. 상생을 위해 혁신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 길로 가고 있다. 말로는 혁신성장을 내세우면서 행동은 딴판이다. 규제 개혁을 장담하다가도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에 부딪치면 곧바로 몸을 사린다.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그렇지 않아도 뒤처진 혁신에 제동을 걸기 일쑤다.
프리드먼은 "이뤄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이뤄지게 돼있다. 문제는 ‘당신에 의해 이뤄지는가 아니면 당신에게 이뤄지는가’라는 것"이라고 했다. 변화를 이끌어가지 못하면 변화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 정부는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혁신성장 구호가 더 공허하게 들린다.
몇년전 미국에서 회자됐던 유머다. 익살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술발전과 혁신으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데 대한 불안과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우화의 21세기 버전(ver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무리 긍정적인 혁신과 발전이라도 그로 인한 피해자가 나온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는 언제나 기존 산업과 그 종사자들에게 중대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혁신은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 결과에 따라 국가 경제와 산업의 명운이 바뀌기도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말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동차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혁신과 신기술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강조한 말이다. 프리드먼은 함축성 있는 표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무덤 묘비에 이 말을 새길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말은 투표권이 없다. 하지만 마부는 투표권으로 정치인들을 압박할 수 있다. 영국 의회가 1856년 ‘붉은 깃발법’을 제정한 배경이다. 시속 30km로 달릴 수 있는 28인승 증기자동차에 대해 도심에서는 시속 3.2km(2마일), 교외에서는 6.4km 이상 달리지 못하도록 했다. 자동차 55m(60야드) 앞에서 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의회는 자동차 사고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기술 발전에 급제동이 걸렸다. 영국은 증기자동차를 가장 먼저 상용화했지만 붉은 깃발법으로 30년을 허송세월하는 바람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 독일, 프랑스에 넘겨줘야 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력을 키우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현대적 특허 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영국 정치인들이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붉은 깃발법은 자동차 산업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차산업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았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날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택시업계와 차량공유 업계의 대립이 정부와 IT 스타트업계 간 마찰로 번지는 양상이다. 혁신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금융위 소관은 아니지만 ‘타다’와 택시 업계 갈등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했다. 이 대표를 겨냥해 "상당히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와 택시업계에 거친 비난을 쏟아낸 데 대한 지적이다.
이 대표는 정부가 공유경제 진전에 소극적이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해 "어느 나라 부총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기사의 분신 사망과 관련해서는 택시업계에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번 최 위원장의 발언에는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며 조롱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의 언사가 때로 상당히 거칠고 자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할 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 거부감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태는 본인이나 기업, 공유경제 산업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 위원장이 소관 업무도 아닌 일에 그렇게 정색하고 나선 것 역시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논란이 커지자 최 위원장은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톤을 다소 낮췄다. "혁신 사업자도 사회적 연대를 중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름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정부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까지 혁신의 그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실패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이 성공한다. 그 기준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다만 ‘사회적 연대’ 및 ‘상생’과 혁신의 성공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때 사회적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혁신 사업자는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 혁신의 그늘을 살피고 피해자들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혁신 사업자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혁신을 하더라도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은 혁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붉은 깃발법은 혁신의 그늘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응이다. 상생을 위해 혁신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 길로 가고 있다. 말로는 혁신성장을 내세우면서 행동은 딴판이다. 규제 개혁을 장담하다가도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에 부딪치면 곧바로 몸을 사린다.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그렇지 않아도 뒤처진 혁신에 제동을 걸기 일쑤다.
프리드먼은 "이뤄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이뤄지게 돼있다. 문제는 ‘당신에 의해 이뤄지는가 아니면 당신에게 이뤄지는가’라는 것"이라고 했다. 변화를 이끌어가지 못하면 변화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 정부는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혁신성장 구호가 더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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