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삼성전자 부장을 스타트업으로 꼬신 이 기술은...우버 창업자도 반했네

입력 2019.03.03 06:00

미국 증강현실(AR) 솔루션 스타트업 ‘스페이셜’의 이진하(32) 최고제품책임자(CPO) 겸 공동창업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9년 일본 도쿄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석사를 마쳤다.

MIT 미디어랩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2012년 삼성전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같은 해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연구원으로 입사해 2013년 책임 연구원, 2015년 수석 연구원(부장급)이 됐다. 남들은 8~13년 걸리는 진급을 3년 만에 해냈다. 진급할 당시 이진하 CPO 나이는 28살이었다.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으로는 최연소다.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함께 일하자고 요청이 왔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삼성전자 최연소 타이틀과 글로벌 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안까지 버리고 창업에 나선 이진하 CPO를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

이진하 스페이셜 CPO가 혼합현실 웨어러블 기기 ‘홀로렌즈’를 착용하고 스페이셜 솔루션을 시연하는 모습. /안별 기자
스페이셜은 2010년 3차원(3D) 소프트웨어 범프탑(Bumptop)을 구글에 매각한 아난드 아가라왈라 대표와 이민하 CPO가 함께 창립한 미국 AR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총 12명이 일한다.

스페이셜 솔루션은 동료의 AR 아바타와 음성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회의가 가능한 기술이다. 이용자는 스페이셜 솔루션을 통해 주변 3차원 공간에서 디지털 작업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손을 활용해 사진 자료 등을 공중에 뜨게 한 채로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 ‘홀로렌즈’나 AR 헤드셋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다. 헤드셋이 없어도 기존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화상통화 식으로 원격 회의에 참여 가능하다.

홀로렌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16년 출시한 혼합현실 기반 웨어러블 기기다. 25일에는 ‘홀로렌즈 2’가 공개됐으며 가격은 3500달러(약 392만원)다.

스페이셜은 이 아이디어 하나로 차랑공유 서비스 ‘우버’ 공동 창업자 가렛 캠프 등에게 2017년 25억원을 투자 받았다. 삼성넥스트도 지난해 10월 800만달러(약 89억원) 규모의 펀딩 라운드에 참여했다. 삼성넥스트는 삼성전자 산하 스타트업 투자 전문 조직이다. 지난달 23일에는 카카오벤처스로부터 50만달러(5억6000만원)를 투자받기도 했다. 2019년 현재 투자 받은 금액은 90억원을 넘었다.

스페이셜 솔루션을 통해 동료(왼쪽)들이 아바타화돼 가상공간에 나타난 모습. /스페이셜 제공
스페이셜 솔루션이 구현되는 모습. /스페이셜 유튜브 채널
창업 전 이진하 CPO는 미래 컴퓨터 활용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다. 단순히 혼자 쓰는 기계가 아니라 3D 공간에서 함께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 2012년 MIT 미디어랩 석사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등이 활성화된 시기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TV가 한창 나올 때였다.

이진하 CPO가 2012년 MIT 미디어랩 박사 과정을 밟던 도중, 삼성전자 VD사업부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유저 인터페이스 전문가인 이진하 CPO 영입을 통해 스마트TV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진하 CPO는 당시 스마트TV가 미래 컴퓨터 활용법을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 의무(5년)도 삼성전자에서 마쳤다.

이진하 CPO는 "컴퓨터가 단순히 혼자만 쓰는 기계가 아니라, 3D 공간에서 모두가 함께 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에는 스마트TV가 그 플랫폼으로 적절해 보였고 AR 기술 상용화 같은 생각하던 미래가 오려면 오래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AR 홀로렌즈 등이 나오고 그 미래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TV 대신 AR에 급격하게 관심이 쏠렸다"고 말했다.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호텔 피라 콩그레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이진하 스페이셜 CPO. /안별 기자
이진하 CPO는 MIT 미디어랩에서 창업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진하 CPO는 "MIT 미디어랩의 출발 자체가 다르다"며 "논문 백개를 써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연구 결과를 기술적으로 잘 포장하고 그 결과의 효용성을 인정받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마침 생각이 같은 파트너도 찾았다. 이진하 CPO가 2013년 글로벌 강연 플랫폼 ‘테드’에 3D 인터페이스 관련 강연자로 나서면서, 2006년 테드 3D 소프트웨어 관련 강연자였던 아가라왈라 대표와 연이 닿았다. "미래 컴퓨터는 3D 공간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같은 생각 하에 2017년 스페이셜을 함께 창립했다.

현재 포춘 1000대 기업 중 100여기업 이상이 스페이셜 솔루션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5일 스페이셜과 홀로렌즈·스페이셜 솔루션 파트너십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에서 스페이셜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

스페이셜의 목표 매출액은 없다. 기업과 기업간 거래(B2B)에 집중하는 게 우선 목표다. 스페이셜 솔루션을 꾸준히 사용하는 정기 기업 고객 5~10곳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이진하 CPO 철학이다. 시작은 좋다. 바비인형 등으로 유명한 미국 완구업체 ‘마텔(Mattel)’ 그룹이 유료 고객으로 1월 전환됐다. 디자 인·개발·생산팀이 스페이셜 솔루션을 통해 한 곳에 모여 협업한다.

이진하 CPO는 "소수지만 확실한 고정 사용자가 더 자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애플의 맥킨토시가 사무실 작업환경을 바꾸었듯 AR 기술도 세상을 바꿀 것으로 생각한다. 스페이셜 솔루션은 단순한 AR 기술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나 맥킨토시와 같은 생산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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