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지 , 그녀는 아직 꿈을 쫓는다. 청춘지침서

2015.02.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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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된 강연100도씨.

인터넷 기사로 알게됐던 신수지 의 볼링선수 전향소식.

정말 끊임없는 도전과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신수지.

대단하네요. 포스팅 시작합니다.


신수지

직업
방송연예인, 전 체조선수
출생
1991.01.08 (서울특별시)
학력
세종대학교



목표가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는,

이제야 비로소 자기자신을 되찾은 것 같다는 신수지.




Q) 시구자 신수지 로 많이 알고 계실만큼, 시구가 화제됐는데?



신수지 ▶처음 의뢰가 들어왔을때는 체조선수 다운 모습을 어떻게 보여드릴까 하다가

일루전이라는 기술을 보여드렸다. 한 다리에 축을 두고 몸을 360도 회전시키는 동작인데,

이 동작으로 인해서 시구상도 받고 했었는데 그 때만큼 관심이 체조할 때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10대를 아쉽지만 비인기종목의 선수로 지냈다.




Q) 리듬체조는 언제부터?



신수지 ▶초등학교4학년때이다.

우연치 않게 TV에서 리본체조 중계를 보게됐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보였다.

그래서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한 3년동안 조른것같다.

그리고 아버지가  고등학교까지 기계체조를 하셨기 때문에 반대를 하시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리듬체조를 시작했다.

안짱다리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다리찢기부터 시작했고 하루 13시간동안 연습을 했다.

남들은 턴 1바퀴돌때 나는 3바퀴 돌아야돼 라는 마음으로 하고 가고 그랬다.

그만큼 독종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연습을 했고 1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 전국체전 5연패를 달성했다.




Q) 슬럼프는 없었는지?



신수지 ▶중학교 1학년때 슬럼프가 왔었다.

부상과 함께 찾아왔었다. 이 훈련이 너무 힘들고 이걸 계속 해야하나? 싶었고

체육관에서 짐도 싸서 나와봤고 숨어있다가 선생님 나가면 나가고 그랬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도 몸이 근질근질하고 다시 운동이 하고 싶고 그랬다.

방황했던 시간은 한순간이었지만 말도 안되게 성적이 떨어졌다.

그 때 다시 자극을 받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중학교2~3학년때는 전종목을 휩쓸었고

고등학교때는 국내에 탑이 됐고 올림픽은 모두 불가능이라고 했지만 그 무대에 서고 싶었다.


Q) 러시아전지훈련을 했었다. 많은 비용이 들었을텐데?


신수지 ▶그렇다. 한달에 2000~30000만원, 많게는 4천만원 까지.

거액의 훈련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했다.

아버지는 낮에는 본업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시면서 후원했다.




Q) 올림픽을 준비하던 마음가짐과 러시아전지훈련때 어떤자세로 임했는지?


신수지 ▶하루 훈련비가 얼만데... 라는 생각으로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못한 채 훈련에 매달렸다.

그 결과 신수지 의 트레이드마크인 "백 일루전", 한쪽 다리를 머리로 올리고 수직으로 원을 그리는 기술.

9회 연속으로 세계 최초로 성공하며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Q) 최고성적은?


신수지 ▶2008년 꿈에 그렸던 올림픽 무대에 설수 있었고, 아시아 최초 종합12위 라는 성적을 거뒀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값진 기록이다.



Q) 은퇴결심 이유?




신수지 ▶체조가 수명이 짧은 편이고, 마지막엔 노장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더이상은 부모님이 계속 돈 써가면서 고생하게 해드리면 안되겠다.

나도 하루빨리 선수생활 쭉 할거 아니면 다른 먹고살길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발목도 네 번 정도 부러지고 인대도 두번 나가고 머리도 많이 깨지고

진짜 안아픈 날이 없었다. 항상 부상과 싸우다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게됐다.


Q) 은퇴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신수지 ▶정말 불안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하루 열세시간씩 훈련이 있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5~6시간씩 걸어다니고 그랬다.

그러던 중 작년 2014년 1월에 처음으로 볼링공을 잡게 됐다.



Q) 프로볼러로 전향하게 된 동기는?



신수지 ▶처음에는 재미와 취미로 시작했다.

볼링공을 처음 잡아 본날, 함께 간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점수가 안났다.

승부욕이 발동됐고 그 이후 하루 서른 게임씩 볼링을 쳤다.

여자분들은 대부분 두게임만 쳐도 팔에 알베기고 그러신다.

불과 한달만에 에버리지가 180점까지 달했다.

하다보니 볼링의 재미에 빠져 코치를 찾아가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었고

그 때 코치님이 제안을 했었다.





Q) 코치님이 했던 제안이 어떤것인지?



신수지 ▶2014년1월, 플로볼링 테스트에 통과하면 제자로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월부터 본격 연습에 들어갔다.

단 10개월 차에 프로볼링 테스트에 도전하게 되었고

에버리지 185점을 쳐야하는데 188.5점으로 가까스로 통과했다.

그리고 2014년 11월 프로볼러로 정식 데뷔했다. 2월부터 시즌이 시작되고 이제 내가 설수 있는 대회에는 다 출전하려고 한다.




Q) 신수지 의 최종 꿈은?



신수지 ▶프로볼러가 됐다고 해서 체조를 떠난 것이냐 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것, 내가 해왔던 것은 체조이기에 누구보다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기때문에

제일 잘 할수 있는 것도 체조라고 생각한다.

최종목표, 꿈은 체조지도자 가 되는 것이다.










신수지 는 올림픽 2회 연속 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연습에 몰두했지만,

각종 부상과 악재로 2011년 21살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 후 3년 뒤, 신수지 는 400g 리듬체조 공을 내려놓고 16배나 더 무거운 볼링공을 선택했다.





리듬체조 선수 신수지 였을 때는 1등을 항상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면,

프로볼러 신수지 는 볼링은 치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훨씬 재미있다고 이야기 하며,

특이한 체질인 것 같다고 한다. 운동만이 나를 채워줄 수 있고 풀어줄 수 있다고 느꼈고 볼링이 딱 그런것 같다.






끊임없는 도전, 프로볼러 신수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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