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해먹는 `네포티즘`…나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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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턴어라운드 ⑥ / 이 와중에 또 낙하산 ◆

매일경제
정운호, 진경준, 최순실까지. 올 들어 잇달아 터진 초대형 게이트의 공통점은 '끼리끼리 다 해먹었다'는 것이다. 사익(私益)을 위해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네포티즘(Nepotism·연고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근혜정부가 국정 공백의 곤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노골적인 네포티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장이 자회사 대표로 추천한 인물을 청와대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뒤엎는가 하면, 공기업인 3개 발전사 대표에는 대구 출신들만 임명됐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자회사인 IBK자산운용 신임 대표 후보로 경북 김천 출신인 정만섭 전 IBK저축은행 대표를 최근 청와대에 추천했다. 기업은행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당초 권선주 행장은 2년의 기본 재임 기간 중 실적 개선을 이끈 안홍열 대표(전남 보성)가 1년 더 연임하도록 1순위로 추천하고, 2순위로 김성미 기업은행 부행장(전남 여수)을 추천했지만 최근 청와대에서 반려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둘 다 호남 출신이라 부적절하니 OB(기업은행 출신) 중에 알아보라'며 사실상 정 전 대표 추천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현재 IBK자산운용을 제외한 기업은행 자회사 6곳 중 3곳은 대구·경북 출신이다.

안 대표의 임기 만료일인 지난달 6일 당시 기업은행 자회사 인사추천을 담당한 강석훈 경제수석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모두 경북 봉화 출신이다. 여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정 전 대표를 인사권자인 기업은행이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의사에 반해 청와대가 추천을 강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로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청와대 내홍이 계속돼 최종 인선 작업은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기업은행과 금융위원회는 각각 "IBK자산운용 대표 인선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청와대 외압설을 포함한 사실관계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 역시 새누리당 총선 후보 출신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하마평이 나돌고 있다.

이날 일제히 취임한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3개사 사장 인사도 'TK(대구·경북) 챙기기'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신임 사장(경북고), 장재원 한국남동발전 신임 사장(경북고), 정하황 한국서부발전 신임 사장(계성고)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출신이다.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관료, 법조,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대혁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선거동맹'을 '통치동맹'으로 바꿔야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데, 박 대통령은 이보다도 협소한 '개인동맹' 성격의 인사를 했다"며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인치(人治)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대 정부에서 '자기 지역 사람 챙기기'는 노골적으로 이뤄져 왔다. 박근혜정부에선 TK 챙기기가 두드러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실이 국내 32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상임감사 41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로 TK와 PK(부산·경남)를 합친 영남권 출신 인사는 모두 159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 38.4%나 됐다. 이는 호남 출신 인사(59명, 14.3%)의 3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5대 사정기관장 내역을 보이며 "현재까지 12명 중 6명이 영남권 TK 인사"라며 "한 지역을 중심으로 인사 사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인사 자체가 잘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공기업, 금융계 인사뿐만이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에 앞서 터진 정운호·진경준 게이트는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조계의 뿌리 깊은 전관예우와 연고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부패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 정운호 씨(51)는 검찰과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자신의 형사사건 변호인들로 선임해 이들이 전관예우·연고주의를 활용해 법을 벗어난 선처를 받길 기대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57)는 정씨에게서 구속 무마 청탁을 받고 거액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고, 김수천 부장판사(57)도 정씨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진경준 전 검사장(49·21기)도 대학 친구 김정주 전 NXC 회장(48)으로부터 주식 등 대가성 뇌물을 받고 재산을 부정 축재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을 받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49·19기)은 진 전 검사장과 근무한 인연으로 이를 미리 알고도 눈감아줬다는 의혹으로 형사사건 피의자가 돼 있다. 우 전 수석은 민정수석으로서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태를 방치했다는 의혹에 직무유기 혐의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네포티즘은 박 대통령과 지연, 혈연, 학연 관계도 없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에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해주고, 해외순방 때 의상을 직접 챙겼다. 정호성(47) 등 청와대 비서관들은 정당한 직함도 없는 최씨와 외교·안보 등 각종 국정 현안을 상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씨 국정농단 사태는 통상의 네포티즘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라며 "의회와 언론의 감시 기능이 더 강화돼야 하고, 권력 구조도 개헌 논의 과정을 통해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 네포티즘(Nepotism) : '조카(nephew)'와 '편애(favoritism)'가 합쳐진 말로 자신의 친·인척에게 관직을 주거나 측근으로 둬 중용하는 '연고주의'를 뜻한다. 아는 사람만 요직에 앉힌다는 '정실 인사'로 의미가 확대됐다. 중세 때 로마 교황들이 자기들의 사생아를 요직에 앉히면서도 조카(nephew)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특별취재팀 = 조시영 차장 / 고재만 차장 / 전지성 기자 / 서동철 기자 / 전정홍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 김규식 기자 / 김세웅 기자 / 이승윤 기자 / 김윤진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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