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블로그] 이숭용의 헌신과 이종범의 부항자국

입력시간 | 2010.05.31 07:50 | 정철우 기자 but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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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블로그] 이숭용의 헌신과 이종범의 부항자국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지난 20일 문학구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넥센 덕아웃에서 취재 중이었는데요. 타격 훈련을 마친 한 선수가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멈칫하더니 덕아웃에서 타격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뒷 모습만으로도 아시겠죠. 넥센의 주장 이숭용 선수였습니다. 그는 한참을 덕아웃에 있었습니다.  

잠시 걸음을 옮기다가도 다시 멈춰서고는 다시 타격폼을 가다듬었습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가로 젓기도 했습니다.  

‘그럼 타격 훈련을 더 하지?’ 이런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팀 훈련이라는 건 홀로 욕심을 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개수를 넘게되면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게되겠죠.  

한참을 그렇게 이숭용 선수 주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윙을 멈출 때 즈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뭐 마음에 안드시는게 있나요.”  

그는 희미하게 웃어보이더니 “이상하게 타이밍이 맞질 않네요. 요즘 제대로 맞은 공이 하나도 없어요.”  

그때 낯익은 얼굴이 넥센 덕아웃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역시 이숭용이 홀로 애쓰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던 듯 했습니다. 이숭용을 보자마자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숭용, 들어가서 그냥 쉬지 뭐하고 있냐. 내가 너 요즘 왜 안 맞는지 말해줄까. 빨리 잊지못하고 지금처럼 낑낑 거리고 있어서야.”  


주인공은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이었습니다. 이 위원은 지난 2008년 넥센 수석코치로 이숭용과 한솥밥을 먹은적이 있었죠.  

이 위원은 좀 더 말을 이어갔습니다. “너 올해 몇살이냐. 그런데도 지금 3할2푼 넘게 치고 있잖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좀 안 맞으면 ‘아, 그럴때도 됐다’하면서 편하게 생각하고 좀 쉬었다 가면 돼. 지금처럼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더 안맞는다고.”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위원이 LG 감독 시절 “현역때 제일 후회로 남는 것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같은 말을 했습니다. “너무 고민이 많았다. 안되는 것만 생각하고 잘 하는 건 금방 잊었다. 너무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야구했다. 다시 한다면 즐기면서 하고 싶다”구요.

이 위원의 충고를 웃는 얼굴로 받고 있던 이숭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알고는 있는데 그게 잘 안돼요. 이제 나이가 있잖습니까. 여기서 더 떨어지면 회복하기 힘들거란 생각 때문에 마음이 자꾸 급해지네요.”  

그렇게 둘의 대화가 끝났을 때 다시 물었습니다. “안될 땐 좀 쉬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이 주장 정도면 감독한테 그 정도 얘긴 할 수 있잖아요.”  

그러자 그는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애들은 지금 야구를 배우는 과정이잖아요. 타격도 타격이지만 야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요. 담도 결리고 몸살 때문에도 힘들어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경기는 나가려고 해요. 내 기록은 혼자 노력해서 어떻게든 해봐야죠.”  

그때 옆으로 황재균 선수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나갔습니다. 특타 다녀오는 길이었는데요. “특타하면서 고민이 더 늘었다”며 괴로워하더군요.  

그러자 이숭용 선수가 그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잊어버려. 요즘 특타 다녀온 애들 다 잘친다며.”  

순간, 그가 좀 전까지 했던 말이 진심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숭용 선수와 있었던 일을 잠시 잊고 있었던 어느날. 잠실 구장 안에 있는 LG 웨이트장에서 낯익은 한 선수의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등이 온통 부항 뜬 자국으로 가득했습니다. 부항은 원래 근육이나 피가 뭉친 ‘일부’ 부위 치료를 위해 쓰는 것이죠. 그의 등 위에 나 있는 부항 자국은 그가 온 몸에 아픈 곳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항 자국의 주인공은..  
[베이스볼 블로그] 이숭용의 헌신과 이종범의 부항자국

네. KIA의 심장인 이종범 선수였습니다.  

이종범 선수는 손가락에도 부상을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날(26일) 선발 출장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역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페이스도 안 좋은데 좀 더 쉬시죠.”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안돼요. 요즘 우리 팀에도 뛸만한 선수가 부족해요. 저쪽(LG) 선발이 좌완 봉중근이기도 하구요. 어떻게든 해 봐야죠.”

우리는 흔히 ‘정신적 지주’라는 표현을 씁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끌어주는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죠. 그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 쓰고 있었습니다.

두 선수와 헤어질 때 “고맙습니다”라고 하려다 “고생하십니다”라고 해버렸습니다. 쑥쓰러워서요. ㅎ.  
D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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