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 명언

좋은 글 2015.11.21 03:30

빈자의 성녀, 가톨릭 복자(福者)로 시복(諡福)된 마더 테레사 수녀 명언

 

 

 

 

 

 

 

 

 

가난한 자의 벗이며 빈자들의 성녀로 추앙받는 마더 테레사는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종교적 신념에서 시작된 사랑과 봉사였지만 한 생애를 인류애 실천에 헌신한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한 존경심은 지구촌 특정 종교와 종파를 초월하고 있다.

 

 

 

 

 

 

 

 

2003년 로마 가톨릭 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톨릭 복자(福者)로 시복된 마더 테레사 수녀(1910 ~ 1997)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멸망한 오스만 제국의 스코페(舊 유고슬라비아, 現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계 가톨릭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이며 가톨릭 신자로 어릴 때 받은 세례명은 '아녜스'다.

 

1928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로레토 수녀원에 입회하였고, 1929년 인도 다르질링의 수녀원으로 간다. 1931년 정식 수녀가 되어 수녀원에서 운영하던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여 센트메리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다.

 

 

 

 

 

 

 

 

1945년부터 인도에서 빈민촌을 보고 하늘에서 자신에게 소명한 현장이라고 생각하여 본격적으로 빈민구제에 헌신한다. 1950년 인도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하여 인도에 귀화하여 로마 교황청 인가를 얻어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이후 교황청 직속 수녀회가 된다.

 

 

1952년 캘커타(現 콜카타) 시청에서 제공한 건물을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으로 불리었다. 검은 수녀복을 벗고 인도에서 가장 미천한 여인들이 입던 흰색 사리를 입는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위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마더(Mother)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후 한센병(문둥병) 환자를 위한 평화의 마을도 만들었다.

 

 

 

 

 

 

 

 

인도 캘커타에서 평생을 빈민과 고아 등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며 빈자의 성녀가 되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1975년 알버트 슈바이처 상과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빈자의 성녀이며 가난한 자의 벗이었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난 1997년 9월 5일 인도 정부는 국상일로 선포하여 마더 테레사를 추모했다. 마더 테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그녀의 숭고한 의지를 받들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말도 있다.

자신이 직접 봉사와 선행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이 하는 선행과 봉사를 보기만 해도 우리 몸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된다고 한다.

 

 

가톨릭 복자로 시복된 빈자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의 편지 40여 통으로 만들어진 책에는 인간 마더 테레사 수녀의 고뇌가 담겨 있다. 50년 동안 가난한 자들의 곁에서 끊임없이 헌신 봉사해온 그녀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았을 것이다. 국가가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 종교적 이상과 신념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한 한 인간의 존재론적 고백이 들어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사후(死後) 가톨릭 복자(福者)로 시복될 당시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는 선의의 비판자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가톨릭 성직자가 아닌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있었다. 

 

그는 마더 테레사 수녀를 비판한 책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의 저자다. 그는 책에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 기금 운영 등 여러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빈자의 성녀, 가난한 사람들의 벗 마더 테레사의 봉사 삶을 담은 영화 <마더 테레사>가 지난 2003년 올리비아 핫세의 주연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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