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글로벌 제약사들의 음모

“당신의 아이는 이상한 아이가 아닙니다” ⇨ 하버드 의대 교수의 폭로③

Fact
▲전에는 단순하게 ‘속쓰림’이라고 했던 증상을, 요즘에는 ‘위식도역류증’이라고 부른다. 약어를 사용해 ‘GERD’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리 전에 여성이 느끼는 긴장감은 ‘생리전불쾌장애’ 또는 ‘PMMD’라고 한다. ▲요즈음엔 수줍음까지도 ‘사회불안장애’라고 부르며 ‘지속적인 치료’를 권한다. ▲어린이들에게 흔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환자는 1994년부터 2003년 사이에 무려 40배나 증가했다. ▲이 배후에는 제약사들의 무시무시한 상술이 있다. ▲마르시아 앤젤, 하버드 의대 교수의 폭로다.

View
<②편에서 계속>

글로벌 제약사들은 보다 새롭고,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해 ‘시장’을 확대해 왔다. 그들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의 약에 질병의 기준을 맞췄다.(의사들이 이에 공모했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의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자신이 처해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질병의 상업화(disease-mongering)’다.

제약사들은 새로운 상황 또는 과장된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 증상에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이거나, 약어를 사용한 신조어를 만들어 퍼뜨리는 방법이다.

예전엔 단순하게 ‘속쓰림’이라고 했던 증상을, 요즘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위식도역류증(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이라고 한다. 약어를 사용해 ‘GERD’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기력증(impotence)’이라고 불렀던 증상은 ‘발기성부전장애(erectile dysfunction)’ 또는 ‘ED’라고 줄여 부른다. 생리 전에 여성이 느끼는 긴장감(premenstrual tension)은 ‘생리전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 또는 ‘PMMD’라고 한다. 이제는 수줍음(shyness)도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라는 질병이다.




 
“속쓰림→ 위식도역류증, 수줍음→ 사회불안장애”로 이름 바꿔

 
이같은 신종 병명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적인 사람을 ‘고질적인 상태’로 만든다. 그 결과 시장은 대단히 쉽게, 그리고 대단히 넓게 팽창된다.

‘우울증 치료제’로 알려진 화이자 제약의 뉴론틴(Neurontin)이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멜로디 페터슨(Melody Petersen)은 ‘우리가 매일 먹는 약(Our Daily Meds)’이란 책에, 화이자 제약의 고위 관계자가 판매상에게 한 ‘조언’을 소개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통증에도 뉴론틴, 단일요법에도 뉴론틴, 조울증에도 뉴론틴…. 뉴론틴은 모든 병에 다 통한다.”

제약사와 판매상은, 소비자를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의 2종류로 양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같은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전략에는 의사들의 ‘공모’가 필수적이다.

전직 뉴욕타임스 기자 멜로디 페터슨(Melody Petersen)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합법과 불법을 오가면서 어떻게 ‘블록버스터(매년 10억달러 이상 팔려나가는 인기 약품)’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여기서 의과대학 저명 교수들을 포함한 ‘핵심 여론 리더(KOL; key opinion leaders)’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세하게 추적했다. 여기서 그녀는 뉴론틴(Neurontin)의 사례를 소개했다.





간질약 ‘뉴론틴’이 두통에도 좋다?


뉴론틴은 원래 적용 범위가 ‘간질(epilepsy)’에만 국한돼 있는 것으로, 다른 약이 발작을 진정시키지 못할 때에 한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특화돼 있는 약이다. 그런데 이 약이 조울증에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도, 불면증에도, 하지불안증후군에도, 안면홍조에도, 긴장성 두통에도, 편두통에도 기타등등에도 모두 다 효과가 있다고 극찬하는 의료 전문가들 논문이 잇달아 발표됐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뉴론틴을 이같은 증상에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컨퍼런스가 거듭 열렸다. 물론 제약사가 뒤에서 후원한 컨퍼런스다.

그 결과 제약사인 화이자는 2003년 한 해에만 ‘매출 27억달러(3조원)’라는 블록버스터를 터뜨렸다. 페터슨 기자의 폭로로 화이자는 이듬해 4억300만달러(4900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시장을 교란한 혐의였다. 4억300만달러(4900억원)는 엄청난 거액이다. 그러나 화이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는 사업비용이다. 뉴론틴이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매년 수십억달러(수조원)의 매출을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4900억 벌금 냈지만… 매년 3조원어치 팔아

 
노스웨스턴 대학의 연구 교수인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은 급증하고 있는 정신병 진단과,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향정신성 약물(psychoactive drugs)의 사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뉴욕 북 리뷰’ 2007년 12월 6일자 ‘프로작’(prozac)‘에 관한 글을 썼다. 프로작(prozac)은 미국 일라이릴리 제약이 개발한 우울증 치료제로 “우울증 외에도 강박장애, 폭식증, 대인공포증, 도벽,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공황장애, 안면홍조, 심지어 비만치료에 까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판매상들은 이 약을 ‘해피메이커(happy-maker)’ 또는 ‘QOL(Quality of Life) 개선제’라고 홍보했다

레인은 이 글에서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검증 방식은 객관적이지도 않은데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제약사가 새로운 진단기준을 세우고, 기존의 진단 범위를 넓혀 시장을 확대하기에 정신의학은 더할 나위 없이 비옥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황금 시장 ‘정신질환’

 
정신병의 진단 기준은 전적으로 ‘정신병 진단과 통계에 대한 매뉴얼(DSM)’에 의존하고 있다. 이 매뉴얼(DSM)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정신과 의사들인데, 앞에서 밝혔듯, 이들 의료전문가 170명 중 95명은 제약사들과 재정적 후원관계를 맺고 있다.

크리스토퍼 레인은 이 매뉴얼(DSM)의 변화 과정을 추적했다. 1952년 DSM이 처음 생겼을 때는 스프링으로 제본된 얇은 핸드북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4차례의 개정을 거쳐 943페이지의 방대한 책으로 진화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정신질환의 바이블’로 변신했다. 이 매뉴얼은 오늘날 법원, 감옥, 학교, 보험사, 응급실, 병원, 기타 모든 의료시설에서 참고하는 ‘진단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같은 중요성에 비춰 보면, DSM은 방대한 과학적 내용을 응집해 놓은 ‘정수’인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토퍼 레인은 미국정신과의사협회(APA)의 미공개 출판물과 관련 의사들의 비공개 인터뷰를 찾아냈다. 그런데 이들 기록을 보면 DSM은 권력관계의 산물이자, 개인적인 야심의 반영이며, 나아가 제약산업이 발휘한 영향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DSM 3차 개정에 참여했던 한 의사는 “체계적인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현존하는 연구들은 엉망진창이고, 산만하고, 앞뒤가 맞지도 않고,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공개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레인은 제약사들이 질병을 상업화(disease-mongering)하는 대표적 사례로 ‘수줍음(shyness)’을 꼽았다. 수줍음이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란 이름의 정신병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의 ‘DSM 3차 개정’부터였다. 이때까지 ‘사회공포증’은 흔한 병명이 아니었다. 수줍음은 1994년 ‘DSM 4차 개정’ 때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매우 많은 사람이 앓고 있는 ‘사회불안장애’가 이것이다.




 
치료제 팔기 위해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

 
크리스토퍼 레인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를 ‘의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으로 규정한 것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다. 이 회사는 우울증치료제 ‘팍실(Paxil)’의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이같은 ‘판촉행위’를 벌였다. GSK가 FDA로부터 ‘사회불안장애’ 치료를 목적으로 팍실(Paxil)을 판매해도 된다는 승인을 얻은 것은 1999년이다. 그러자 GSK는 대대적인 언론 캠페인을 전개했다. 전국의 버스 정류장에 허망한 표정의 모델 포스터를 붙여놓은 것이 한 예다. 모델은 “내가 사람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니…”라면서 절망한다.

팍실의 판매는 급증했다. 이 약의 프로덕트 디렉터였던 배리 브랜드(Barry Brand)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규정되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찾아 개발하는 것은 모든 제약 마케터들의 꿈이다. 우리는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를 통해 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어린이 조울증 환자’가 갑자기 40배로 늘었다

 
약품 시장 중에서도 가장 큰 블록버스터 시장은 향정신성 의약(psychoactive drugs)이다. “생화학적 균형이 정신의학적 상태를 좌우한다”는 이론은 ‘향정신성 의약’의 사용을 정당화시켰다. 그런데 이같은 이론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증명된 바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바로 어린이들이다. “당신의 아이가 아프다”면서 의사가 약물치료를 권하는데, 어느 부모가 “No”라며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어린이 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고 부르는, 이 증상은 어린이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뉴욕타임스 2008년 6월 8일자에 따르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는 1994년부터 2003년 사이에 무려 40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어린이에게 처방되는 약품은 오프-레이블(off-label)이란 점이다. ‘오프-레이블’이란 약사법에 의해 허가된 범위나 용법-용량을 벗어나, 처방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이같은 처방은 그 약의 성분이 어떻든 간에, 거의 예외없이 심각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허가된 용법을 벗어나는 ‘오프-레이블’ 처방


이같은 문제점은 정신과 한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사한 이해관계는 사실상 제약의 모든 분야에 걸쳐 만연해 있다. 사람들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약에 의존하고 있다. 약을 먹는 것보다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에도, 사람들은 약을 찾는다. 그리고 의사들은 새로 나온 약일수록, 비싼 약일수록, 기존 약이나 복제약보다 더 효과가 좋다는 생각을 갖도록 학습된다.

그러나 제약사들이 새로 나온 약과 기존 약을 비교할 때는, 동등한 용량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새 약이 더 좋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 ‘오프-레이블’도 그렇다. 의사들은 ‘오프-레이블’이 좋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허가된 사용 범위를 벗어나는 위험한 처방을 환자들에게 하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 제약사들의 책임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사기 혹은 ‘오프-레이블 마케팅’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미국의 탭(TAP Pharmaceuticals) 제약은 2001년 전립선암 치료제 ‘루프론(Lupron)’에 대한 사기혐의로 8억7500만달러(1조원)의 벌금을 냈다. 미국의 화이자(Pfizer), 일라이 릴리(Eli Lilly), 애보트(Abbott),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미국 머크(MSD; 독일 Merck로부터 1차대전 이후 분리됐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머크' 브랜드를 사용)도 그렇다.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액은 엄청나지만, 이같은 불법행위를 통해 거대 제약사가 거둬들이는 이익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1조원 벌금도 ‘새발의 피’


일부에서는 “제약사들은 자기들이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며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약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의사들과, 의과대학과, 연구기관에게는 이같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환자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에 세금이 면제되는 이유는 이들에게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의사들을 교육하고 △과학적으로 중요한 연구를 시행하고 △사회의 병약한 자들을 돌보는 중대한 책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끝>

 

-------------

필자 마르시아 앤젤(Marcia Angell)은?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저명 의학저널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편집장(2015년 12월 현재)을 20년 가까이 맡고 있는 저명 학자다. 이 글은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York Review of Books) 2009년 1월 15일자에 실렸다.



2016-04-15, 업데이트: 2016-04-19 16:31:5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