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뉴리더] 치매 조기 진단기술 개척자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 "돈 버리는 연구하면 안된다"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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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6.02.06 14:00

    “대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실험실 3곳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 암, 니코틴마약 중독 중 알츠하이머 치매 연구실을 골랐습니다. 나머지 2개 분야는 이미 돌파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는 예방, 진단, 치료 모두 아직 미지의 영역입니다. 도전 정신이 발동한 이유입니다.”

    [3040 뉴리더] 치매 조기 진단기술 개척자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 "돈 버리는 연구하면 안된다"
    김영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뇌의약연구단 책임연구원(38)은 치매 연구에 새 역사를 썼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혈액만으로 치매를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최근 일진그룹의 의료 진단기기 전문업체 알피니언메디칼시스템에 이전됐다. 예정대로 진단기기가 2019년 상용화한다면 KIST는 기술료만 약 3300억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개발해 이전한 기술료로는 역대 최대다. 치매 조기 진단 관련 세계 시장의 선점도 기대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 말 알츠하이머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후보물질도 개발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합성화합물 ‘EPPS’를 개발한 것이다. 손상된 인지기능을 일정 부분 회복시키는 기존 약물과 달리 뇌 손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치료물질이다. 이미 전임상(동물실험) 단계에 돌입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2015년 국내에서 치매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12조 원으로 추정된다. 10년 뒤인 2025년 우리나라 예상 노인인구 1100만명 중 치매환자는 약 100만명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의 사회적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김 연구원의 연구성과는 이런 사회적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김 연구원이 주목받는 이유는 뛰어난 연구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척박한 국내 연구환경에서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분야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연구 초기 단계에는 연구비를 지원받지도 못했다. 해외 유학파이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 기초연구와 실용연구를 잇는 ‘중개연구’의 모범답안도 제시했다. 김 연구원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 “당장 임상에 참여하고 싶다는 치매 환자 리스트 쌓여 있어”


    [3040 뉴리더] 치매 조기 진단기술 개척자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 "돈 버리는 연구하면 안된다"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부모님이 두분 다 경희대 약대 출신입니다. 어머니는 약국을 운영했고 아버지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한국에서 의대에 가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미국 뉴욕대로 가 생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 의대를 가려고 했지만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으면 의대에 가기 무척 어렵습니다. 고등학교는 대원외고 불문과를 나왔습니다.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셈입니다. 생화학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국의 학업 환경은 어떤가요.

    “뉴욕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크립스(Scripps) 연구소’에 들어가 생유기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이 곳은 연구중심 사립대학원으로 화학과 면역학 분야 미국 톱클래스 연구소입니다. 특히 대학원생은 100여명인데 교수가 수백명이 있습니다. 저명한 교수들의 경험과 지식을 단기간에 빠르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구 중심 대학원도 이 연구소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운영되는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으로 왔습니다.”

    -치매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치매는 아주 무서운 질환입니다. 치매에 걸리면 환자는 자아를 잃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부모님이 만일 치매에 걸린다면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희한한 생각도 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입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뇌입니다. 치료나 진단법이 나올 때까지 파보자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실에 전화가 정말 자주 오네요. (인터뷰 중에도 전화벨은 여러 차례 울렸다.)

    “치매 진단 기술과 치료 신약 물질을 개발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문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 가족들이 연구실로 직접 전화를 합니다. 전화 주시는 분들의 성함과 전화번호 리스트를 갖고 있습니다. 정리해 놓은 전화번호만 수십 개가 넘습니다. 이 분들은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임상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임상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약 회사에 기술 이전을 한 뒤에 임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답해 줍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픕니다.”

    -제약 회사에서도 연락이 올 것 같은데요.

    “치료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한 뒤 국내 제약사들이 연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후보물질로 임상 연구를 하겠다는 제약사도 많습니다. 의사 중에서도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약 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후보물질을 이용한 건강식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사들은 당장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연구성과인데요, 연구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세계적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습니다. 연배나 경력, 실력으로 봐도 훌륭한 국내외 치매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지식이나 기초연구, 신약 개발에서 누구보다 감히 더 잘한다고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조기 진단 기술은 세계 처음으로 치매 증상 발현 전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신약 후보물질도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없앨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다른 연구자들과도 계속 협업해야 합니다.”

    ◆ “한국 아직 바이오의료 강국 아냐...중개연구 활성화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수출과 전통 산업의 위기를 계기로 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바이오 분야에서 강국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서 강국이 될 방법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개 연구입니다. 실험실에서 발견한 것을 실제로 병원이나 제약사가 빠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기초 연구와 병원이나 제약사가 하는 연구는 엄밀히 보면 다릅니다. 그동안 원천기술 연구와 실용화 연구 간의 벽이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시도가 많이 이뤄졌지만 속도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바이오 산업에서 ‘속도전’을 거론하기에는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신약 개발은 당연히 오래 걸립니다. 신약의 효용만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 신뢰성 등을 모두 검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장기적인 계획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좋은 연구결과가 나와도 지속적으로 연구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단절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연구자들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초 연구 기반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기초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올수록 실용화 연구 기획들도 많이 나올 테고 중장기 계획에 따라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도 범부처 신약개발 연구과제가 있습니다. 아주 좋은 취지의 사업입니다만 예산 규모가 크지 않아 혜택을 보는 연구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바이오 분야가 매력적이긴 한 것 같습니다.

    “5~10년 전만 해도 이공계가 취업이 잘된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만지는 일을 해야 잘먹고 잘산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삼성,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이 주도하면서 취업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R&D 분야는 더 그렇습니다. 제가 취업할 때만 해도 연구기관이나 기업체 연구소 가면 45세까지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50~60대도 기업체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는데 출연연에 있으면 상용화 연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업체 연구소에 있는 분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과학자가 꿈이라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이돌’ 스타가 꿈이라는 청소년들도 워낙 많아졌습니다.

    “제가 과학자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학자가 되어도 얼마든지 잘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 영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모두 과학자라는 사실을 아느냐고요.”

    ◆ “과학자는 이윤을 남기지 않아...그렇다고 돈 버리는 연구 하면 안된다”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이 생쥐를 이용한 치매 연구 실험을 하고 있다. / KIST 제공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이 생쥐를 이용한 치매 연구 실험을 하고 있다. / KIST 제공
    -연구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치매 치료제 연구만 6년 했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연구입니다. 생쥐를 이용해 실험했습니다. 연구자 한 명이 아침 9시에 나와 12시간 동안 3~4평 되는 공간에서 생쥐를 관찰해야 합니다. 하루는 연구팀원 중 한 명이 과로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전날 무리를 하고 아침에 일찍 나왔다가 빈혈기가 생겨 쓰러진 것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연구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까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4년 전에 비해 체중이 30kg 늘었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연구 활동을 하면서 가진 신념이 있나요.

    “과학자는 이윤을 남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돈을 받아서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좋게 말하면 R&D 투자입니다. 그래서 돈을 날리는 연구를 하면 절대 안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3년, 또는 5년 내에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설 수 있는 연구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습니다. 반드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에 맞추려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간과 돈을 버리는 연구 활동은 의미가 없습니다.

    -위기는 없었나요.

    “치료제 연구를 시작할 때는 연구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알츠하이머 관련 다른 연구 과제에 끼워넣는 일종의 편법을 써서 연구비를 확보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위기는 크게 없었습니다. 한동안 논문을 내지 못한 적은 있었습니다. KIST에 와서 선임 연구원이 된 뒤 연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였습니다. 그만두고 싶다거나 하는 위기는 없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개인적인 목표로는 알츠하이머 연구를 그만둔다는 게 목표입니다. 치매 조기 진단 기기를 상용화해서 치료제가 나오면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최근 치매 진단 기기 기술이 이전됐습니다. 치매 치료제는 제약사들과 힘을 합쳐 빠르게 상용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음에는 뇌출혈을 진단하고 치료할 방법을 찾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6년간 누워 계십니다. 뇌출혈이나 우울증 같은 질병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오른쪽)이 지난해 12월 ‘이달의 KIST인상’을 받고 이병권 KIST 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KIST 제공
    김영수 KIST 책임연구원(오른쪽)이 지난해 12월 ‘이달의 KIST인상’을 받고 이병권 KIST 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K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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