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조성진의 쇼팽…서정성과 격정, 광기를 넘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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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후 첫 고국무대…우승자 갈라콘서트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이제 쇼팽이라는 작곡가를 단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조성진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일 뿐 아니라 '피아노의 웅변가'이자 '피아노의 풍경화가'였다.

쇼팽의 음악 속에 담긴 그토록 다양한 뉘앙스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그처럼 힘들이지 않고 표현해낼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흔치 않다.

2일 낮 2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에서 조성진은 5명의 수상자들의 연주에 이어 음악회의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등장해 쇼팽의 녹턴과 환상곡, 폴로네이즈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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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 우승을 거머쥔 이후 첫 고국무대였다.

기교의 완벽성을 넘어 작품 자체의 핵심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조성진의 탁월한 재능은 연주회 내내 경탄을 자아냈다.

흔히 쇼팽의 음악은 감성적인 살롱 음악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쇼팽이 존경했던 두 작곡가는 18세기 고전 음악의 대가 모차르트와 바흐였던 만큼 쇼팽 음악에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형식미와 다성적인 짜임새가 숨어있다.

보통의 피아니스트들이 이런 점을 간과하곤 하지만, 조성진은 결코 쇼팽의 음악 속에 담긴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미와 바흐의 푸가를 닮은 다성적인 성격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쇼팽의 작품 하나하나 지닌 고유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이번 공연에서 조성진이 연주한 녹턴 제13번의 경우, 편안한 녹턴의 성격을 뛰어넘는 격정과 광기마저 서린 독특한 작품이기에 설득력 있게 연주해내기가 매우 까다로운 곡이지만, 조성진은 가식적인 표현이나 부자연스러운 어조가 조금도 없이, 어느 순간에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채, 이 작품에 담긴 서정성과 광기를 남김없이 표현해내 경탄을 자아냈다.

녹턴의 중간 부분을 장식하는 격정적인 악구에서는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풍경이 연상될 정도였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지나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러워 누구라도 그의 연주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영웅'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폴로네이즈 작품 53의 힘찬 연주는 마치 음악에서의 웅변이란 무엇인지를 말하는 듯했다.

음악회 마지막 곡으로 폴로네이즈 연주를 마친 조성진은 환호하는 관객들을 위해 쇼팽 녹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제20번 c#단조로 음악회를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조성진 열풍'으로 불릴 만큼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전에 없던 관심을 모은 그이기에 이날 연주회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번 갈라 콘서트는 당초 저녁 한 차례 예정돼 있었으나 지난해 10월 티켓 예매 시작 1시간여 만에 표가 매진되고, 관객들의 추가공연 요청이 쇄도하면서 이례적으로 한 차례 더 열리게 됐다. 이날 오후 2시, 8시 두번의 공연은 각 2천470석 전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조성진의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환호와 함께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보냈고, 곳곳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조성진은 환한 미소로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화답했고,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거나 가슴에 손을 얹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조성진이 3번의 커튼콜 후 앙코르곡 연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자 순간 객석에서는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나올법한 여성 관객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쇼팽 콩쿠르 입상자들이 선보인 각양각색의 쇼팽 연주를 듣는 즐거움도 컸다. 특히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샤를 리샤르 아믈랭이 선보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뛰어난 연주는 청중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1악장 첫 음에서부터 비범한 기품이 느껴지는 아믈랭의 톤은 주목할 만했고, 밀고 당기듯 자유자재로 템포를 조절하며 쇼팽 음악에 담긴 다채로운 성격을 표출해내는 솜씨는 대단했다.

또한 쇼팽 콩쿠르 3위를 차지한 케이트 리우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에서 들려준 세련되고 유려한 연주는 마치 '음악의 달변가'를 연상시켰으며, 음악회 도입부를 장식한 드미트리 시쉬킨의 쇼팽 스케르초 제2번의 드라마틱한 해석도 돋보였다.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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