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운전해,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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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19 03:04
[Cover Story] "이미 무인차 시대" 로봇 전문가 다니엘라 러스 MIT 인공지능연구소 소장
1769년 프랑스에서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이후, 인류에게 자동차는 늘 '복잡한 연장'이었다.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차가 앞으로 나갔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멈췄다. 핸들을 돌리면 차는 그 방향대로 움직였다.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정보기술(IT) 업계를 관통하는 공통의 주요 화두(話頭)는 '무인차(無人車)'다.
자동차가 인간의 조작 없이 달리고 장애물을 피하며 목적지에 멈춰 선다. 사실 여기까지는 너무 복잡한 길만 아니라면 현재 기술로도 그리 어렵지 않다.
- ▲ Getty Images / 멀티비츠
자동차 업계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는 무인차 시대는 이런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이 부르면 혼자 달려오고, 냉장고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생수나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동차에 타고 있는 인간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메일을 읽어주고 일정을 알려준다. 즉, 자동차가 주어가 되는 세상이다. 자동차 속 인간은 차가 운전하는 동안 기차에서처럼 낮잠을 잘 수 있다. 자동차가 인간이 조작하는 '연장'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며 달리는 '로봇'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인자동차 연구의 끝은 '로봇' 분야로 통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인공지능연구소(CSAIL)의 다니엘라 러스(Rus·52·사진) 소장은 세계 최고의 로봇 전문가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 '로봇의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무인차 전문가이기도 하다.
러스 소장은 CSAIL 사상 첫 여성 소장이다. 53년의 역사를 가진 CSAIL은 소프트웨어를 공유한다는 '오픈 소스'라는 개념을 처음 발명했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이 젊고 뛰어난 과학자에게 시상하는 '커리어 어워드' 수상자이기도 한 러스 소장는 최근 일본 자동차 그룹 도요타의 인공지능 기반 자동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조선비즈 주최 '스마트 클라우드쇼'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곱슬머리에 세련된 치마 정장을 입은 그는 기자의 네일케어(손톱장식)에 관심을 보이는 '천생 여자'였다. '로봇이란 주제와 잘 안 어울린다'고 말하자, 러스 소장은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로봇"이라며 웃었다.
러스 소장은 "이미 우리는 무인차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무인차에 필요한 레이더, 센서, 카메라, 인공지능 등 30여 가지 기술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개발된 것이며 지금은 이 기술들을 자동차라는 하나의 틀에 집어넣는 단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 탑재된 '위급 시 자동 제동 장치' '주행시 차간 거리 유지 장치' 등은 무인차 기술의 한 부분이다.
- ▲ 다니엘라 러스 MIT 인공지능연구소 소장 / 박상훈 기자
"로봇이라는 것이 TV에 나오는 인간 형태의 특이한 로봇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로봇을 접하고 있습니다. 최근 등장한 로봇 청소기도 하나의 로봇이죠. 일본에서 유행 중인 애완 로봇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로봇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힐 것입니다.
무인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인차 자체로만 보면 초기 단계입니다. 미국 교통안전국은 무인차의 발전 단계를 4단계로 나눴는데, 현재는 아직 운전자가 센서의 도움을 받아 운전하는 1단계입니다. 하지만 최종 4단계에 이르기 위한 수십 가지의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 더욱 정확한 지도 등입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기술들을 '융합'하는 단계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무인차는 상상하기 어려웠지 않았나요. 테슬라나 닛산 같은 완성차 업계도 2020년이면 무인차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업계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미 무인차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무인차와 비슷한 로봇도 곧 대중화된다는 말이겠군요.
"1963년 CSAIL이 문을 열 당시엔 컴퓨터가 딱 한 대 있었습니다.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죠. 당시 연구원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 컴퓨터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 당시 '오픈 소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 그런 궁핍 때문입니다.
- ▲ 블룸버그
이제는 로봇의 기술 개발뿐 아니라 로봇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 고양이와 놀아주는 '장난감 로봇' 같은 것 말입니다.
최근 개발된 체스 로봇은 100%까진 아니지만 거의 스스로 판단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1인 1 로봇 시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과 무인차로 인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 중 하나가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세탁기'입니다. 세탁기 발명으로 여성들은 빨랫감과 씨름하던 시간에서 해방돼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세탁기가 대신 빨래를 해주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연구를 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단순하고 의미 없는 노동의 일을 로봇이 대신해준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요.
무인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미국인은 1년에 총 470억시간을 운전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 시간 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은 아주 큰 '혁명'입니다.
무인차가 개발되면 졸음운전이라는 단어도 사라질 것입니다. 자동차가 컴퓨터처럼 각종 데이터를 모아 교통 체증을 피해간다면, 길에서 버리는 연료와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에서는 5초마다 한 번씩 교통사고가 발생하는데, 이 교통사고의 95%가 인간의 작동 실수입니다. 교통사고로 미국에서 매년 124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연간 2770억달러(약 326조7000억원)입니다. 교통사고는 세계 8위의 사망 원인으로 고혈압성 심장병보다 높습니다. 무인차의 개발은 인류 생존에서 심장병 특효약을 개발한 것보다 효능을 발휘하는 셈입니다."
- ▲ 달리는 차 안에서 ①비디오게임을 하고 / 테슬라
러스 소장은 이런 와이저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인차 시대도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현재 무인차가 부딪혀 있는 기술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자동차가 센서나 카메라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입니다. 지금 자율주행 기술은 차선을 지키며 달리는 것은 잘합니다. 그런데 폭설이 내려 차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공사 중이라 장애물이 차선을 막고 옆으로 가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면? 이 상황에서는 기존 레이더나 센서, 카메라만으로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합니다.
로봇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원하는 형태의 로봇을 대충 다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것은 그 로봇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지요. 컴퓨터가 개발되고 난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이 개발되며 대중화됐지요? 이제 로봇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도요타의 인공지능 자동차 개발에 합류한 것입니까?
(도요타는 이달 초 향후 5년간 5000만달러를 투자해 MIT와 스탠퍼드 대학에 로봇 협력 연구 센터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센터의 1차적인 목표는 인공지능 기술을 스마트 차량과 가정용 로봇 기술에 접목하는 것이다. MIT 측 협력 파트너가 러스 소장이다.)
"무인차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직렬 개발'과 인간이 운전하면 자동차 시스템이 경우에 따라 개입하는 '병렬 개발'입니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나려 할 때 속도를 자동으로 줄여주는 것 등입니다. 지금 구글과 다른 자동차 업계가 진행하는 방향은 '병렬 개발'입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직렬 개발'에 초점을 맞추지요. 자동차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인간과 협력합니다. 이런 자동차에 꼭 필요한 것이 인공지능 기술입니다."
- ▲ ②노트북으로 업무를 하며 / 테슬라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무지(無知)에서 나옵니다. 무인차에 대해 경험해본 적이 없고, 잘 모르니 막연히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 연구팀이 최근 싱가포르에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무인차 실험을 했을 때 일입니다. 학생들은 사람 없이 캠퍼스 내를 돌아다니는 무인차를 두려워했지만, 한 달이 지나자 대부분 '편하고 흥미롭다'고 답했습니다.
모든 기술은 도입 초기 단계에는 두려움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생활로 변합니다.
법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무인차는 불법입니다. 미국에서도 5개 주 정도만 시범 주행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무인차의 시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입법화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일단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고, 이에 대해 사회가 적응하면, 사회는 그 기술의 사용 방법에 대한 규칙을 마련합니다."
―16일 아침에도 현대자동차의 전(前) 임원이 구글 자율주행자동차팀으로 옮겼습니다. 현재 무인차 개발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곳도 구글입니다. 무인차 시대는 곧 자동차 업계와 IT 업계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당연히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양쪽 업계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입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 업계와 카메라 업계는 구분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도구가 뭔가요? 바로 '휴대전화'입니다. 사진이라는 것은 필름이란 형태로 존재하다가, 디지털 카메라에 넘어갔다가, 이제는 휴대전화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자동차는 달리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IT' 기계, 그보다 더 나아가 로봇이 될 것입니다. 이건 다른 가전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미 청소하는 로봇이 나와 있지요? 앞으로는 냉장고도, 식기 세척기도 로봇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통하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가 냉장고에게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은 뒤 장을 봐 가는 세상 말이지요.이런 세상을 대비하려면 자동차 업계 경영자들은 컴퓨터 기술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IT 업계 경영자들은 하드웨어를 만드는 제조업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휴대전화 업계가 카메라 업계를 삼켰듯, 자동차와 IT 중 한쪽만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무인차 개발이 영향을 주는 것이 두 업계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무인차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해보죠.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인프라'가 변하는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 차를 스마트폰으로 부르면 그 차가 달려옵니다. 그렇게 되면 대중교통 체계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택시, 버스, 기차 이런 시스템이 달라질 것입니다.
- ▲ ③화상 화면을 켜놓고 동료들과 회의를 한다. 미국 자동차 기업 테슬라가 제시하는 무인차 시대의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이 거의 끝났다. 앞으로는 졸음운전이란 단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테슬라
기술의 발전은 고령화 시대 삶의 질을 바꿔 놓을 것입니다. 최근 제가 방문한 싱가포르의 한 마을은 노인이 많았습니다. 그곳 노인들은 옆집 할머니와 대화도 하고 싶고, 병원도 가야 하고,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해야 했지만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인차가 도입된다고 생각해보죠. 필요할 때 차를 불러 옆집도 가고 병원도 가고 마트도 갈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그런 마을들은 대부분 외곽에 있기 때문에 교통량이 적어 무인차가 적용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로봇의 시대는 곧 일자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무인차 시대가 온다면 당장 택시 기사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직업은 항상 변했습니다. 기술의 발달 앞에서 변하지 않을 일자리는 없습니다. 그럴 경우 사람은 기술의 변화에 대응해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합니다.
택시 기사를 예로 들어보죠. 그들이 자신의 업무를 '운전하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그 일자리는 사라진다고 봅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단계 넘어서서 '가이드'의 역할로 업그레이드 된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여전히 원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지겹고 힘든 일은 로봇이 하고, 좀 더 창의적인 일을 인간이 하게 될 것입니다."
러스 소장은 루마니아 출신이다. 긴 시간의 강연 뒤에 이어진 인터뷰라 피곤했을 법도 한데 그는 로봇, 무인차에 대해 설명해줄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뻔한 질문을 했다.
―어떻게 로봇과 무인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나요? 일반적인 소녀들이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지 않나요?
"어렸을 때 본 TV 드라마 '로스트 인 스페이스' 때문이에요. 그 드라마 봤나요? 그 드라마 속 소년은 컴퓨터를 가지고 온갖 것을 다 만들 수 있었어요. 저도 그런 걸 하고 싶었고, 그 최종 형태가 로봇이 된 것이지요."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1965~1968년 미국 CBS에서 방영된 SF 드라마다. 그는 어릴 적 봤던 SF 드라마 속 장면을 지금 현실 세계에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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