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서핑 중에, 예전 구로구 부구청장 시절의 글을 찾아
퍼왔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공무원의 경쟁력과 배낭여행

- 서울시 구로구 부구청장 이성 -




<유럽이라는 시민사회>

유럽은 정말로 부러운 오만가지 것들을 많이 보는 곳입니다.


특히, 지금의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시민사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문명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습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부러운 그런 것들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지만, 내게 유럽이 특별하게 부러운 것은 자유라는 면에 있어서 우리가 못 느끼는 자유가 그 사람들의 삶 속에 있어서 그게 두고두고 부럽습니다.
유럽을 한 마디로 표면하면 시민사회인데 그것을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사회의 모습은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유럽은 대표적인 시민사회고요.
전체주의 사회라는 게 뭔가 하면 제일 간단한 말로 ‘국민총화’입니다.


나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 또 사람들 스스로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튀면 뭔가 손해보고, 나하고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보기 싫어지고 뭔가 짜증나고 그렇게 느끼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하기를 원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사람이 다 양복입고 넥타이 매고 회사 다니는 사회가 전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저도 공무원이지만 공무원이 직장에 출근하면서 청바지 입고 출근하면 ‘저것은 뭔가 잘못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도록 모든 인식이 어릴 때부터 형성되어온 사회가 전체주의사회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걸 별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가들이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조금만 뛰어난 건축가나 조금만 뛰어난 미술가나 조금만 뛰어난 화가가 있어도 사정없이 매도를 해 버립니다. ‘저것은 정통이 아니다, 사이비다’ 등 어떤 방식으로든 매도가 됩니다.
어느 그룹에서든지 간에 서울대 동창회든 홍익대 동창회든 무슨 동창이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어떤 그룹에 끼어서 유유상종해야지만 버틸 수 있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사회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전반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럽은 대표적인 시민주의사회입니다.
이것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든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기를 원합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과학이 발달하고 예술이 발달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자유라도,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누리면서도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유럽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는 그 질과 양이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 헌법에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직장에 출근하면서 옷을 내 마음대로 고를 자유가 없습니다.
헌법에 비록 자유가 보장되어 있더라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은 상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느끼는 그런 부러움은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될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루부르 박물관앞 마당에는 유리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가 서있는데 일종의 현대미술관입니다. 루부르박물관 건물이 그 자체가 왕궁이었던 유서 깊은 문화재인데 그 앞마당에 초현대식 유리 건물을
지어놓았습니다.


우리 경복궁 정원에 현대식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의 여유와 자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유로화가 생겨서 폐지되었겠지만 종전 프랑스 지폐엔 알록달록 우리나라 아이들 소꿉놀이 지폐처럼 어린 왕자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지폐에도 꼭 위인들의 엄숙한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자유가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하나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유럽에 여러분들이 배낭여행을 가거나 어디를 가서 처음에 못 느끼실지 몰라도 한- 사흘 지나고 나흘만 지나면 당황스럽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무질서한 것 때문에 당황스럽습니다.
뭔가 하면, 유럽 어디를 가도 프랑스를 가든 영국을 가든 벨기에를 가든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아니라 빨간불인데, 못 건너게 빨간불이 들어왔는데 거기 있는 교통순경까지 다 한꺼번에 우루루 길을 건넙니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을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프랑스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 있는 도시의 도로라고 하는 것은 서울에 있는 도로하고 틀립니다.
누군가 유명한 건축가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도로는 넓으면 넓은 만큼 그만큼 흉악스럽고 좁으면 좁은 만큼 그만큼 아름답고 편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유럽의 도로들이 다 좁습니다. 전 세계의 가장 넓은 도로가 서울의 도로입니다. 세계의 어디를 가도 서울만큼 넓은 도로를 가진 도시는 없습니다..


미국에 있는 도시들이 유일하게 서울하고 비슷한 너비의 도로를 가지고 있는데 미국의 도로들도 서울만큼 넓지를 않아요.
유럽의 도로들이라는 것은 아무리 넓어봤자 양쪽 2차선에서 4차선 정도입니다. 런던의 제일 넓은 도로가 4차선이고 런던의 대부분의 도로는 1차선 2차선밖에 안 됩니다.


도로가 다 좁고 횡단보도가 30m, 40m, 50m 마다 수도 없이 많이 있어요. 차가 달리고 싶어도 횡단보도 때문에 도저히 못 달려요.


기껏해야 시속 10㎞, 20㎞로 가는 것이 유럽의 도시들입니다.


이렇게 횡단보도가 많은데도 이 사람들이 아무데로나 건너고, 또 빨간불인데 막 건너가거든요.
이것 때문에 저희도 '유럽사람들 선진국인데 왜 이렇게 무질서한가?'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유럽에 석 달 있었는데 빨간불에 건너는 게 신호위반이 아니더라고요. 교통순경도 같이 건너요.


신호가 왜 있느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에요. ‘차가 안 오면 언제든지 건너라.’ 차가 안 오면.

대신에 차는 사람을 보호해야 되니까 앞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정확하게 서라 이거죠. ‘차는 지켜라. 사람은 안 지켜도 좋다. 차가 안 오면 건너라.’


우리하고 생각이 전혀 틀린 곳이에요.


차는 불편해요, 횡단보도가 무지무지 많으니까.


육교가 없어요, 유럽 전체에 유럽의 그 수많은 3, 40개국 중에서 통틀어도 육교가 하나도 없어요.
사람이 왜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냐 이거죠.
지하도도 물론 없어요. 육교나 지하도는 꿈도 꾸지 못하는 거예요.


사람은 다 횡단보도로 건너요, 차는 불편해도 참아라 이거예요. 그것이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육교가 있는 도시가 전세계에 그렇게 안 많아요. 제가 200개가 넘는 도시를 다녔는데 육교가 있는 도시를 본 것은 서너개 뿐이 안 돼요. 우리는 육교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육교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홍콩 같은 경우만 있는 그런 거죠.


유럽의 파리나 런던을 가면 거의 10m, 20m마다 쓰레기통이 놓여 있어요. 쓰레기통이 얼마나 많은지 홍콩 가보면 아실 거예요.


홍콩의 쓰레기통은 거의 5m 마다 하나씩 있어요. 길거리 전 도로에.
도로가 깨끗한데 그 사람들이 특별히 휴지를 안 버려서 깨끗한 게 아니라 쓰레기통이 워낙 많기 때문에 길에다 쓰레기를 이유가 없는 거예요. 우리 서울에 쓰레기통 없거든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가도 가도 담배 버릴 곳이 없어요.


그 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대통령이든, 왕이든, 군인이든, 관료든, 자기가 국민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국민을 교육하려 합니다. 구호를 써서 붙이고 캠페인을 벌입니다. ‘질서를 지켜라.’ ‘휴지를 버리지 마라’ ‘횡단보도를 지켜라’ 교육하려 합니다. 그 사회의 리더가 시민들이 무엇이 불편한가를 찾아다니는 사회가 시민사회입니다. 무단횡단이 빈번한 곳에 가드레일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하나 더 만들고, 휴지가 넘치는 거리에 휴지통을 더 설치하는 사회가 그런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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