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의 킥오프] 27년 전 황선홍처럼… 새로운 18번 이정협의 비상
2015 AFC 아시안컵에서 2골을 터트리며 한국을 결승으로 이끈 이정협 (사진=연합뉴스) |
“이정협! 이정협!” 2015년 1월 26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는 1년 전 어머니가 가지고 온 이름을 외치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2015 AFC 아시안컵 4강전. 이라크를 상대로 결승행을 원했던 한국의 염원을 현실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정협이었다. 전반 20분 김진수가 오른쪽 측면에서 감아 올린 왼발 프리킥을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펼치며 끝까지 쫓아간 이정협은 문전에서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공은 그라운드를 튕긴 뒤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반 5분 이정협은 또 한번 날았다. 남태희가 측면에서 높게 올려 준 공을 침착한 가슴 트래핑으로 앞에 내줬다. 기다리던 김영권이 왼발 하프 발리 슛을 날렸고 공은 이라크 수비수를 스치며 골이 됐다. 1988년 이후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이끈 이정협의 1골 1도움이었다. 경기장을 채운 2만여명의 한국 팬들이 기성용, 차두리가 아닌 이정협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를 확신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상] 아시안컵 우승 후 부대 복귀를 약속한 이정협
이번 대회 이정협은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다. 2골로 후배 손흥민과 함께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달 전만 해도 국가대표 이정협은 믿음보다는 의심이 많았다. 2013년 K리그에 데뷔해 2년 간 불과 6골 밖에 넣지 못했던,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를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과감히 선발한 것은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었다. 아시안컵을 1주일 앞두고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정협은 후반에 교체돼 골을 기록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A매치 기록은 6경기 3골 1도움, 경기당 0.5골이다. 정말 한달 사이 운명이 확 바뀐 것이다.
이정협은 이른 나이에 군입대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사진=상주상무) |
축구 선수 이정협은 유소년 시절 부산 지역에서 이름 꽤 날린 공격수였다. 당감초등학교 4학년 시절 축구를 시작해 덕천중학교를 거쳐 부산아이파크의 유스팀인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주 탁월한 득점력의 공격수는 아니었다. 대신 186cm의 당당한 체구에 문전에서의 좋은 움직임, 전방에서부터 압박을 펼치는 부지런함을 갖췄다. 그런 이정협의 잠재력을 주목한 것은 2013년 부산에 부임한 윤성효 감독이었다. 최전방 공격수가 없어 고심했던 윤성효 감독은 숭실대학교 재학 중 프로로 넘어 온 이정협을 택했다. 경남과의 리그 2라운드에 깜짝 선발 출전한 이정협은 이후 강호 전북을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어 잠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반짝 활약이었고 그 뒤에는 득점 없이 적극적인 포스트 플레이로 팀 플레이를 뒷받침하며 시즌을 마쳤다. 데뷔 첫 시즌 기록은 27경기 출전 2골 2도움이었다.
시즌 종료를 앞두고 윤성효 감독은 이정협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상무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최전방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양동현이 있었다. 윤성효 감독으로선 ‘미완의 대기’에게 발전을 위한 기회를 주기가 충분치 않았고 일찍 군문제를 해결하며 상무에서 조금이라도 경기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정협의 기록이나 경기력이 특출 나지 않았다. 상무의 선수 선발을 책임지는 박항서 상주 감독으로선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거듭되는 부산의 강력한 천거에 결국 이정협을 선발했다. 박항서 감독은 “공격수는 역시 골로 얘기해야 하는데 시즌 2골로는 선발 자격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도 부산에서 성실하고 축구 밖에 모르는 선수라 하니 선발했는데 직접 보니까 아주 속은 건 아니다 싶었다”며 웃었다.
이정협은 군 입대를 놓고 1주일 간 고민을 했었다고 말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다른 선수들은 (입대 제한 연령을) 꽉 채워 가는데 굳이 지금 가야 하나 싶었다”라는 게 그의 얘기였다. 장고 끝에 둔 그 결정은 악수가 아닌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정협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청년이 한번은 망설일만한 입대가 운명을 바꿨다. 성실한 자세로 박항서 감독의 마음을 사로 잡은 그는 이근호, 김동찬, 이승현, 이상호 등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인천과의 개막전에서 교체 출전해 골을 기록했고 주요 공격수들이 제대한 후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서 3골을 더 넣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많은 이들의 의문을 뒤로 하고 이정협을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선발했다. 그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
이정협의 비상은 본인의 노력과 절묘한 행운이 맞닿아 만들어졌다. 상무 입대 당시에는 원래 선발하기로 했던 공격수가 입대를 미루는 바람에 그의 자리가 생겼다. 시즌 전반기에는 주로 교체 출전을 했지만 이근호가 전역을 하면서 후반기 들어 주전으로 나설 수 있었다. 이 연속된 상황은 이정협과 슈틸리케 감독의 만남까지로 이어진다. 소속팀 상주는 K리그 클래식에서의 부진한 성적과 달리 FA컵에서는 선전하며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FA컵에 대한 저조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슈틸리케 감독을 준결승 2경기 중 한 곳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고 중계까지 잡힌 전북과 성남의 경기 대신 상주와 서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상주시민운동장으로 갔다. 이날 상주는 0-1로 졌지만 이정협은 전반 32분에 투입돼 활발한 플레이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상주의 경기를 다섯 차례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의 눈은 이정협을 향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2월 아시안컵 대비를 위해 제주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 참가할 25인 명단에 이정협을 넣었다. 당시에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리그에서의 활약도가 높지 않았던 터라 깜짝 발탁으로 표현됐다. 더 놀라운 일은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 22일 벌어졌다. 축구회관에서 진행된 아시안컵 최종명단 발표에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호명했다. 공격수로 선발한 3명에 이정협이 들어간 것이었다. 제주 전지훈련에서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마지막 자체 연습경기에서의 득점을 높이 산 결정이었다. 이동국과 김신욱을 부상으로 선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주어진 또 다른 옵션은 박주영이었지만 그는 과감히 이정협을 택했다. 자칫 도박이 될 수 있었던 선택은 이정협이 A매치 데뷔전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고, 본 대회에 들어와 두 차례 결승골을 넣으며 대박으로 증명됐다. 대표팀 관계자는 “국내 지도자였다면 과연 이정협을 명단에 넣었을까 싶다. 제로 베이스에서 선수를 선발하겠다던 슈틸리케 감독의 원칙과 소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가 이정협이 아닌가 싶다”며 감식안을 극찬했다.
이정협 역시 대표팀 선발이 자신의 운명을 바꿨음을 인정하고 있다. 2년 간 K리그에서 6골을 넣었던 선수가 한달 사이 A매치에서 3골을 넣고 있으니 이런 극적인 반전도 없다. 자신에게 중요한 기회를 준 윤성효 감독과 박항서 감독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은 그지만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은인이라고 표현하며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슈틸리케 감독님은 내게 하나만 요구하신다. 앞에서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고 다부지게 붙어주며 팀 공격을 도우라는 것이다. 대회를 위해 시드니로 왔을 때 감독님과 면담을 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님이 잘 하든, 못 하든 다 내가 책임지니까 하던 대로만 하라고 얘기하셨다. 그 얘기가 정말 힘이 됐고 그라운드에 들어갔을 때는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한다.”
1988년 대학생 황선홍이 그랬듯 이정협도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올라섰다 (사진=대한축구협회) |
현재 이정협의 대표팀 등번호는 18번이다. 차범근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 현 포항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다. 황선홍 이후 대표팀은 골 갈증을 채워 줄 확실한 선수를 찾지 못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혜성 같이 등장한 새로운 18번 이정협은 이번 대회 이후 반짝 스타가 아닌, 롱런을 할 수 있는 큰 나무로의 성장을 꿈꾼다. 물론 이정협의 커리어를 보면 아직은 성공을 단언하긴 힘들다. 하지만 황선홍의 첫 등장도 그랬다. 1988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이회택 감독은 건국대 소속의 공격수 황선홍을 과감히 선발했다. 황선홍 역시 그때는 각급 대표팀 경험이 없던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대학 2학년생이었던 황선홍은 일본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이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황선홍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할 때까지 14년 간 국가대표로 맹활약했다.
이정협은 황선홍의 등장과 닮은 센세이셔널한 활약이라는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과분한 얘기다.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한참 위에 있는 존재다. 따라가려면 지금까지 한 것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과 상주에서는 26번을 달았던 그는 대표팀에 선발되며 공교롭게 18번을 받았다. 박일기 대표팀 매니저의 강력한 추천이었다. 선수 시절 황선홍 감독을 코치로서 오랜 시간 지켜봤던 박항서 감독은 문전에서의 찬스 포착 능력만큼은 닮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협이의 최대 장점이 문전 포착 능력이다. 호주전과 이라크전에서 넣은 골 장면은 지난 시즌 서울전과 인천전에서 넣은 골과 흡사하다. 다만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부족했는데 대표팀에 선발되며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태극마크를 단 것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봤다.
이정협은 경기 시작 전, 그리고 골을 터트릴 때 거수경례를 하며 대한민국 군인임을 증명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
시드니(호주)=서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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