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프로이트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다혈질적이고 꿋꿋한 성격을 처음으로 느끼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야, 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부드러워지고 사교적으로 되어가는 백발노인이 아니라 그 어느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는 준엄한 시험관이야. 행여 그 앞에서 거짓말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지는 그런 인물…….” 프로이트 앞에서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분석을 받던 이들은 저 날카로운 시험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류 전체의 마음 안에 숨겨져 있던 미지의 대륙, 바로 ‘무의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빈에서 활동한 정신분석학자, 쉰 살이 넘고서야 비로소 명성을 얻고 일흔 살이 되어서야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출처 : Wikipedia>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거의 평생을 빈에서 활동한 프로이트는 쉰 살이 넘고서야 비로소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일흔 살이 되어서야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날 정신분석학이 가지게 된 확고부동한 위치와 기차와 영향력을 염두에 둔다면, 프로이트의 이러한 뒤늦은 성공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사실은 당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새로운 학문이었는가를, 그리고 그 창시자가 이 학문이 장래에 누릴 영광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치렀는가를 잘 알려준다.
정신분석학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혹자는 프로이트의 저서와 이후 정신분석의 계승자들의 저서를 탈무드와 그 주석서의 관계에 비유한다. 탈무드 주석이 끝이 없는 작업인 것처럼 프로이트의 다양한 계승자들의 프로이트 해석 역시 끝이 없다. 즉 매우 다채로운 깃털을 지닌 매력적인 새 한 마리 같은 이 학문의 모든 색깔을 한 자리에 다 펼쳐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가장 근본적인 사고 유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트라우마(외상, 外傷)’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데리다같은 철학자는 사후성(事後性, nachträglichkeit) 개념과 연기(延期, Verspätung) 개념은 프로이트 전체사유의 우두머리를 차지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바로 트라우마론은 이 개념들의 작동 방식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가 분석하는 흥미로운 사례들로 징검다리를 놓으며, 이 이론을 추적해 보자.
잠재된 기억(8살 때의 기억)은 유사한 사건(12살 때의 사건)이 주어지자 사후적으로 환기되어 엠마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출처 : NGD>
프로이트의 초기작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6)]에는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프로이트를 찾아가 상담을 한 엠마라는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상점, 특히 옷가게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광장 공포증(廣場恐怖症, agoraphobia)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까닭을 그녀는 열두 살 때 어떤 상점에서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점원들이 웃자 그녀는 까닭도 없이 도망을 쳤다(이를 사건1이라 하자). 그런데 왜 도망갔는지, 그리고 지금 왜 열두 살 때의 사건을 이유로 들면서 상점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프로이트는 엠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찾아냈는데, 바로 여덟 살 때 그녀가 어떤 상점에 들어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사건이다. 상점 주인이 웃으면서 옷 위로 그녀의 성기를 만졌던 것이다(이를 사건2라 하자). 여덟 살은 성적 분별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이다. 따라서 그 사건은 전혀 의미가 파악되지 않은 채 잠재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잠재된 사건을 ‘은폐 기억’이라 부른다.
이런 잠재된 기억은 유사한 사건이 주어지면 비로소 뒤늦게, 사후적으로 환기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사후성 논리의 가장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유사한 사건이 최근에 반향됨으로써 잊혀있던 기억 흔적이 환기된다는 것이다.” 열두 살 때의 사건은 여덟 살 때의 사건과 외형상 많은 유사점을 지닌다. 둘 다 공통적으로 상점에서 일어난 일이며, 둘 다 상점 주인이 웃었고, 둘 다 옷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상황이 주어지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인 여덟 살 때의 사건이 환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열두 살은 이미 성적 분별력이 성숙한 시기이므로 사건1의 ‘외관을 쓰고’ 환기된 사건2는 ‘연기되었다가 뒤늦게’ 비로소 추행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어 엠마에게 공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것이 점원들이 웃자 그녀가 까닭도 없이 도망친 이유이자, 훗날 상점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이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하나의 사건―그것이 여덟 살 때의 것이건 열두 살 때의 것이건―만으로는 결코 성립하지 않으며 반드시 두 개의 사건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게 된다. “두 개의 인자가 모여 한 병인(病因)을 완성시킨다.” 개개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트라우마로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 있는 토템, 토템의 발생을 기술하는 프로이트의 작업은 ‘사후적 복종’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다. <출처 : Wikipedia>
프로이트 이론의 심오한 면 가운데 하나는, 개별적인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통찰하는데 그치고만 것이 아니라, 태곳적부터 문화를 형성해온 인류의 보편적 정신세계의 비밀에 가 닿고 있다는 점이다. 토템숭배의 발생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추적하는 인류학적 연구서인 [토템과 터부],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생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말년의 [인간 모세와 일신교]가 바로 인류 보편의 정신세계의 비밀을 열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런 작업에서도 트라우마론에서 보았던 ‘사후성의 논리’, ‘연기됨의 논리’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토템, 유대교, 기독교의 발생을 기술하는 프로이트의 작업을 한마디로 요악하면, 그것은 ‘사후적 복종(nachträglichen Gehorsams)’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다. 증오의 대상인 원초적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살해되며, 이 사건은 잠복기를 거친 후, 아버지 숭배라는 형태로 현실화된다는 것이 사후적 복종의 골자를 이룬다.
[토템과 터부(1913)]는 태고 적에 있었던, 원초적 아버지 살해라는 가설로부터 출발한다.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해 ‘양면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씨족의 모든 여자들을 독점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감정과 그런 아버지를 모범으로 삼는 찬미의 감정이 그것이다. 이 살해된 아버지는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시점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죄의식과 더불어 부활하는데, 이 되살아난 아버지는 이제 숭배의 대상이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를 살해하게끔 부추긴 분노는 줄어들고,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숭배의 대상인 아버지를 구체적으로 가시적인 대상에, 바로 동물에 옮겨 놓은 것이 바로 토템신앙인 것이다.
토테미즘의 발생에 관한 이런 식의 정신분석학적 설명은 그대로 기독교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프로이트는 당대의 고고학적 연구를 토대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백성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모세가 강요한 고도로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일신교가 이집트의 최하층민에 불과한 모세의 유대인들에겐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 살해 동기이다. 모세를 살해함으로써, 일신교에 대한 까다로운 모세의 교리는 유대인들의 현실적 의식 속에서는 사라져 무의식 속에 보존된다.
그런데 훗날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버지 모세 살해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다시 생겼는데, 바로 예수 살해가 그것이다. 예수와 모세 사이의 유사성은 몇 가지 사항만을 비교해 보아도 쉽게 드러난다. 둘 다 구원자라는 점(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해 낸 모세와 스스로 메시아임을 주장한 예수), 둘 다 유아 살해로부터 살아남은 자라는 점(파라오의 유아 살해와 헤로데의 유아 살해) 등.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는 모세를 대체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스도 살해라는 사건 속에서 비로소 유대인들이 저지른 아버지 살해는 사후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모세에 대한 죄의식은 그리스도에게 투영되어 ‘사후적 복종’이란 징후를 만들어낸 것이다.
요컨대 기독교는 아버지 살해 또는 모세 살해라는 사건과 예수 살해라는 사건이 서로 합쳐져서 만들어낸 결과물,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종교적 트라우마’이다. 마치 엠마의 경우 사건1과 사건2가 합쳐져 광장 공포증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프로이트의 이론은 환자의 병리적인 징후에서부터 인류학과 종교학 등 광범위한 범위에 이르기까지 인간 정신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삶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발견은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후 인문학 일반, 각종 예술적 작업이 프로이트의 발자취를 따라 무의식의 풍부한 비밀을 확인해 나갔다.
또한 정신분석학이 지닌 큰 영향력만큼 그에 대한 반발도 세차게 몰아쳤다. 가령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43)]의 입장은 무의식을 부정하는 것인데, 이 책은 우리 의식의 배후에서 우리 삶을 조종하는 무의식이란 주문이 걸린 원시 종교의 인형 같은 것이라고 조소한다. 알 수 없는 신비한 끈으로 그 인형에 해당하는 사람과 연결된 채 인형을 바늘로 찌르면 사람에게 고통이 전달되는 것 같은 황당무계한 것이 무의식과 징후 사이의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또 들뢰즈와 가타리는 [앙띠오이디푸스(1972)]에서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과 복종으로부터 모든 억압적인 제도의 원천을 읽어낸다. 이런 도전들 속에서 정신분석의 모험은 계속 수정되고 또 새로운 착상을 얻는 것이다.
- 글
-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 벨기에 루뱅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익명의 밤], [일상의 모험―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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