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능력과 스펙 사이…기업·구직자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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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열린 채용, 스펙은 가라]

스펙초월 채용 늘어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스펙 매달려



취업 준비생과 기업이 ‘스펙 초월’ 전형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동상이몽이 묻어난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학벌이나 자격증 등 스펙보다는 지원자의 능력과 가능성을 보겠다”고 강조해도 취업준비생들은 여전히 “학벌과 외국어 능력 등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이 실제 선발 과정에서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지원자들에게는 온갖‘스펙’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데 문제의 뿌리가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현재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435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취업 자신감’이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복수응답) 기업이 채용을 할 때 ‘출신 대학과 학력’ 등 ‘학벌’을 많이 볼 것이라는 응답이 38.6%로 가장 높았다. 직무와 관련한 기본 지식이나 인턴 및 아르바이트 경험 등 ‘능력’을 볼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33.3%로 ‘학벌’보다 낮았다. 대외활동 등 ‘경험’을 중시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29.0%에 그쳤다.

잡코리아는 이번 조사가 최근 취업 시장에서 ‘스펙초월’ 채용이 강조되는 것과 달리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는 여전히 학벌 등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취업준비생들은 각종 자격증과 외국어 성적 등 전형적인 스펙 쌓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취업 이후 도움이 되지 않는 스펙도 많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직장인 등 4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2.6%가 ‘외국어 관련 스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53.8%가 실제 직무에서는 ‘도움이 안 됐다’고 답했을 정도다.

실제로 취업준비생 박아무개(31)씨는 “지난해 7월부터 토익시험만 4차례나 치렀다. 응시료로 25만원을 넘게 썼는데, 취업 지원서를 내려면 불안한 마음에 ‘기본 스펙’이나 다름없는 토익시험은 물론이고 각종 자격증 시험을 안 볼 수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청년단체 등이 “최근 5년 동안 토익 응시자 수가 연간 200만명에 이르는데 와이비엠(YBM)이 영어능력평가시험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갖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위치에 올라 과도하게 응시료를 올리고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까지 하는 등 각종 자격증 시험은 취업 준비생들의 허리까지 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생각은 다르다. 기본 스펙보다도 직무에 대한 이해와 지원자의 종합적인 인성 등을 강조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줄 알고, 취업 그 자체보다 지원자가 도전하고자 하는 직무에 대해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기소개서에서 사진이나 가족사항, 해외 거주 경험 등 직무와 무관한 항목을 아예 삭제하는 곳도 있다. 영어 등 외국어도 실제 직무에 필요한 경우에는 평가를 더욱 강화하고, 그게 아니라면 크게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는 등 일률적인 판단 기준에서 벗어나는 추세다.

취업포털 등 취업 관련 업체의 관계자들은 잘못된 정보로 취업준비생들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 취업준비생 10명 가운데 4명 정도(38.4%)는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를 얻는다고 했다. 각 대학이 운영하는 취업지원실이나 기업이 직접 진행하는 채용설명회에서 취업 관련 정보를 얻는다는 이들은 각각 14.3%와 24.8%에 그쳤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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