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록 힘 생기는 자전거…한달 달려도 안 지쳐요”
시속 20㎞의 ‘느린’ 속도인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차백성씨가 지난 24일 한강 둔치에서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
[건강과 삶]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씨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13년 전이었다. 당시 나이 50.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해 직장생활 25년을 하며 연봉 1억원의 상무이사였다. 나이에 밀려서 직장생활을 마치는 ‘비참함’을 미리 피하고 싶었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꾸던 ‘나만의 행복’을 찾고 싶었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하는 세계일주였다. 더이상 늦추었다가는 다리 힘이 빠져 시도도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가족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6개월을 준비했다. 첫번째 목표는 미국 대륙 남북 종단이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시애틀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와 멕시코 국경인 샌디에이고까지 3000㎞의 대장정이다. 하루 100㎞씩 30일을 꼬박 달려야 했다. 겁 없이 도전했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서울에서 고향인 대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 자갈투성이였던 비포장 국도를 타고 3박4일 동안 달렸다. 모두 놀랐다.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이 정말 생소했던 1960년대 이야기다. 가슴속에 한가지 꿈이 무럭무럭 자랐다. ‘언젠가는 자전거로 세계를 누벼야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멋지게 잘 살다가 후회 없이 잘 죽어야 한다는 다짐도 한몫했다. 자전거 여행은 바람과의 싸움이다. 무게를 줄여야 한다. 자전거에 ‘의식주’를 모두 싣고 달려야 한다. 무려 30㎏에 가까운 무게를 자전거 앞과 뒤의 주머니와 등에 멘 배낭 등에 나누어 담아야 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자전거를 분해해서 포장해 싣는다. 도착해 공항부터 시내로 들어가는 첫날의 자전거 여행이 가장 위험하다. 교통 체계도 다르고 길도 낯설다. “자전거 여행의 특징은 날이 지날수록 체력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다른 여행은 지쳐서 체력이 떨어지지만 자전거는 첫날은 30㎞, 둘째 날은 50㎞, 셋째 날은 70㎞씩 늘려갑니다. 그러면 한 달을 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아요.” 차백성(63)씨의 첫번째 미국 대륙 종단은 계획한 대로 하루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시속 20㎞의 ‘느린’ 속도인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차백성씨가 지난 24일 한강 둔치에서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
나이 50에 25년 직장 사표 던지고
어릴적 꿈 찾아 ‘세계 일주’ 도전
미 대륙 남북종단 30일만에 마쳐
내년엔 6개월 아프리카 종단 계획
“온몸으로 자유와 여유 만끽하죠” 차씨가 미국 자전거 여행을 하며 잡은 주제는 ‘극기’였다. 휘몰아치는 태평양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이겨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혼자다. 동반자가 있으면 도움도 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 때문에 자신에게 몰두할 수 없다. 또 상대방한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여행을 마치고 복기도 잘 되지 않는다. 물론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미국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음식물을 텐트 외부에 놓고 자는 바람에 곰과 너구리의 습격도 받았고, 주택가를 다니다가 흑표범 같은 개로부터 공격도 받았다. 고속도로에서는 화물차의 난폭 운전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차씨는 직장생활 첫 해외 근무지로 아프리카를 자원했다. 수단에 파견돼 일을 하다가 누비아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오아시스를 못 찾아 흙탕물을 핥아 먹으며 생과 사의 경계선을 오가다 살아났다. 그런 용기와 담력으로 무릎의 통증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첫번째 자전거 세계여행을 마쳤다. 다음엔 미국 동서부 횡단에 도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60일간 5000㎞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황량한 서부 사막에서 인디언 원주민의 잔혹한 역사 현장을 보면서, 인권을 외치는 미국인들의 정복욕에 감추어진 이중성의 실체를 절감하기도 했다. 로키산맥을 종단하면서는 곰 퇴치를 위해 스프레이 건을 사서 허리에 찬 채 달리기도 했다. 곰은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을 발견하면 시속 50㎞의 속도로 추격하곤 한다. 자전거를 타다가 이런 곰이 나타나면 자전거에서 내려 웅크리고 있다가 곰이 접근하면 곰의 얼굴에 냄새나는 총을 발사해서 격퇴하는 목숨 건 싸움도 해야 한다. 미국 대륙 자전거 여행의 마무리는 하와이 횡단이었다. 고독과 향수와 중노동에 지쳤던 한인 이주민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지상낙원이라는 하와이의 역사가 지니고 있는 아픔을 되새겼다. 해발 3055m의 할레아칼라국립공원 정상에 올라 두 시간 동안 페달을 밟지 않고 내려가는 60㎞ 내리막길의 절경도 맛보았다. 이 길은 전세계 라이더들이 가장 동경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차씨는 북미대륙과 하와이의 1만㎞ 자전거 여행기를 담은 책 <아메리카 로드>를 2008년에 써서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지침을 주기도 했다. 차씨는 일본도 자전거로 섭렵한다. 일본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5000㎞를 80일간 종주하며 일본 속에 있는 한민족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순례’를 했다. 쓰시마섬을 돌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숨결을 찾아내고,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루트를 따라가기도 했다. 또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예가의 14대 후손인 심수관 옹을 만나기도 했다. 차씨는 2010년에 일본 자전거 여행기인 <재팬 로드>를 펴냈고, 이어 유럽으로 무대를 옮긴다. “독일을 여행하는 중에는 길을 잃어 낯선 가정집에 하루 신세를 졌습니다. 다음날 부부가 출근을 하면서 더 쉬고 가도 좋다며 열쇠를 주더군요. 거절하긴 했지만 그 따뜻한 마음은 오래 남아 있어요.” 차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인츠, 본을 거쳐 쾰른까지 이어지는 라인강변 자전거 도로를 특히 아름다운 코스로 꼽는다. 150㎞가량 이어지는 길 양쪽으로는 고풍스런 독일 옛 성과 포도밭, 세계적인 관광지 ‘로렐라이 언덕’도 나온다고 한다. 차씨는 유럽을 여행하며 1600년대에 조선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한 하멜의 생가와 헤이그에 밀파돼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다가 현지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음달에 유럽 자전거 여행기를 내놓을 예정인 차씨는 내년엔 아프리카 자전거 종단을 계획하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까지 1만3000㎞의 6개월 걸리는 여정이다. “자전거 여행을 위해 여정을 꾸리려면 심장이 ‘꿍꿍’ 뜁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온몸을 감싸곤 해요. 나이를 먹어도 변함없는 반응입니다. 재테크보다는 건(健)테크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관련영상] [건강과 삶 #23]차백성의 세계로 가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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