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가상적인 얘기지만 미래의 지구에 닥칠지도 모를 운명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지구적 재앙과 전조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현재에 여기저기서 출현하고 있다. 특히 세계 전체인구의 5분의 1인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대륙 전역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는 유해 스모그(smog)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화석연료의 과용에 따른 것으로 매순간 중국인들과 대륙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납∙카드뮴∙비소 등 맹독성물질과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이 포함된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 보다 작은 크기인 초미세먼지 덩어리인 스모그는 ‘죽음의 암살자’로 불린다.

사실 중국의 대기오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스모그 때문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던 때가 엊그제 일이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후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스모그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 같다. 20여년간 ‘세계의 공장’으로 고속성장의 가도를 달려온 중국이 이제는 ‘세계의 굴뚝’이 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시에선 분진마스크 쓰고 출퇴근…해외주재원들 건강 우려해 ‘베이징 엑소더스’

특히 베이징은 방독면처럼 생긴 분진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베이징에 파견된 해외주재원들이 건강을 우려해 집단으로 베이징을 떠나거나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주중 미국대사관은 자체 공기오염 측정기를 두고 있으며,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외국회사들도 늘고 있다.

베이징을 찾는 해외관광객들도 급감했다. 2013년 8월 4일 통계에 따르면 상반기 베이징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은 214만3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리장성, 자금성 등 관광명소가 몰린 베이징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5년만에 처음있는 일로, 아무리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가 있다고 해도 큰 감소폭은 베이징의 스모그와 관련있다는 것이 중국 당국의 분석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베이징시 당국은 7월 실외에서 연기를 피우며 양꼬치를 구워 파는 영세상인에게 최대 2만위안(약 360만원)의 벌금을 때리는 ‘대기 오염방지 조례안’까지 마련했다. 2월 10일 설날인 춘제(春節)를 앞두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금지한 데 이은 또다른 고육책이다.

필자가 목격한 하얼빈 빙등제 ‘백마’(白馬)가 ‘흑마’(黑馬)로…미세한 검은 먼지가 켜켜히 쌓여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 빙등제(氷燈節*얼음축제)의 눈조각작품 '천마(天馬)들의 비상'이란 주제의 작품속 백마(白馬)들의 몸체에 시커먼 미세먼지가 켜켜히 쌓이면서 흑마(黑馬)로 변해가고 있다.© 하성봉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 빙등제(氷燈節*얼음축제) 눈조각작품에 보이는 검은색 물질은 겨울철 석탄난방으로 오염된 공기속의 미세먼지들이 눈처럼 쌓여 더럽혀진 것이다. ©하성봉

필자가 해외근무를 했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은 영하 20-25도를 기록하는 중국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매년 1월5일에 빙등제(氷燈節∙얼음축제)가 열린다. 2010년 1월 한국에서 온 지인과 함께 훤한 대낮에 빙등제의 작품을 보면서 감상평도 교환하고 경탄도 하다가 맨 안쪽에 만리장성처럼 높고 크게 만들어놓은 ‘천마(天馬)들의 비상’이라는 주제의 작품을 보고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천마들의 날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백옥과 같은 흰 눈과 얼음으로 잘 다듬어진 천마들은 분명 백마였으나 말머리와 날개 부분이 연한 검은 물감으로 칠한 듯 어두운 빛이 감도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햇볕에 그늘진 그림자인가 의심을 했으나 자세히 보니 검은 그을음이 말의 머리와 날개 등 조각의 굴곡진 곳마다 쌓여 있었다. 이 백마들은 겨울철 석탄 난방으로 인한 오염된 공기속의 미세먼지들이 눈처럼 켜켜히 쌓이면서 서서히 흑마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뒤 30년동안 폐암사망률 4배 증가…베이징은 지난 10여년동안 폐암환자 60% 증가

스모그가 ‘소리없는 암살자’라는 증거는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 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는 2013년 6월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1978년 이후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4.65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그 원인으로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과 높은 흡연율을 꼽았다.

특히 베이징은 지난 10여년동안 폐암에 걸린 환자가 60% 증가했다고 밝혀 대기오염과 폐암의 연관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홍콩 밍바오(明報)는 2013년 2월 24일 중국에서 1분에 6명꼴로 암 확진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1년에 315만여명이 암에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기오염과 전체 암발생의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연관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MIT대학과 중국 칭화(淸華)대학, 베이징 대학, 이스라엘 헤브루대학 등의 공동연구팀은 스모그의 영향으로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황허(黃河)이북 지역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이 남쪽보다 5.5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7월 발표했다.

한국의 카이스트에 해당하는 중국공정원 소속 중난산(鐘南山) 원사는 “대기오염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공기오염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면서 “병원체 격리가 가능한 사스(SARS)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중국 대륙 500개 도시중 5곳만 기준 만족…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이 가장 심각

베이징(北京)의 스모그가 최악이던 2013년 1월 13일 징산(景山)공원 완춘팅(萬春亭)에서 바라본 자금성(紫禁城).'자주색의 금지된 성'이란 뜻인 자금성이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검은빛을 띠며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중궈왕(中國網)

중국은 2013년 1월 하순부터 2월 중순까지 한달간 대기오염 때문에 중국의 거의 모든 도시가 ‘스모그 도시’가 됐다. 52년만에 최악의 스모그였는데 당시만 해도 겨울철 난방 때문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베이징 등 주요 대도시의 경우 계절과 상관없이 스모그가 수시로 출현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심할 때는 전방 50m앞의 물체가 흐릿할 정도다.

칭화대(淸華大)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조사해 2013년 7월 공개한 공동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500개 도시중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을 만족하는 도시는 겨우 5개에 불과했다.

실제 2013년 3월 15일 중국 환경보호부 부부장(차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베이징, 톈진(天津), 허베이(河北), 창장(長江)삼각주, 주장(珠江)삼각주 지역의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하고 도시에 따라 매년 스모그 발생일수가 100-200일에 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이들 지역은 대부분 이틀에 하루꼴로 스모그때문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간 중국의 고속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대표지역들이 ‘개발=대기오염’이라는 공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중국환경보호부,“74개 주요도시중 4곳만 기준 충족”…베이징 공기는 서울보다 평균 5.78배 나빠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광밍러바오(光明日報) 등 중국 관영 언론이 8월 1일 중국 환경보호부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중국 74개 주요 도시중 올 상반기 초미세먼지(PM 2.5,직경 2.5㎛크기 이하, ㎛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 농도의 공기품질 적합기준인 35㎍/㎥를 충족한 도시는 단 4곳에 불과했다. 저장성(浙江省) 저우산(舟山), 광둥성(廣東省) 후이저우(惠州), 하이난성(海南省) 하이커우(海口), 시짱(西藏)자치구의 라싸(拉薩) 등 해안도시 3곳과 서부 변방도시 1곳이다. 여기서도 베이징은 133㎍/㎥로 기준치의 3.8배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이 연평균 23㎍/㎥인 것을 감안하면 베이징은 서울보다 5.78배나 공기질이 낮은 셈이다. 베이징은 최악이던 2013년 1월 초미세먼지 농도가 경악할 수준인 993㎍/㎥를 기록한 적도 있다.

베이징과 가까운 톈진(天津), 허베이성(河北省) 지역 도시들은 평균 115㎍/㎥로 나타나 전국에서 공기의 질이 가장 안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74개 도시의 평균도 76㎍/㎥로 기준치의 배를 넘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기준치인 25㎍/㎥를 잣대로 삼을 경우 더욱 자격에 미달한다. 이는 뉴욕(14㎍/㎥), 런던(16㎍/㎥), 도쿄(14㎍/㎥), 파리(15㎍/㎥) 등 세계적인 도시와는 더더욱 대조된다.

석탄연료에 의존한 전력생산과 난방이 주된 원인…차량 급증에 따른 매연 증가도 주범

왜 이렇게 됐을까? 중국은 전력생산과 난방 등 에너지생산의 약 70%를 석탄에 의존한다. 특히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산업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또한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급증한 차량은 도시매연의 주범으로 꼽힌다. 베이징시의 등록차량은 520만대로 서울시보다 100만대가 많다. 2012년 자동차 판매대수는 약 2천만대로 전체 자동차수는 2억3천만대에 이른다.

더구나 중국차량이 뿜어대는 오염물질은 유럽에 비해 3-5배에 달한다. 이는 차량 제조 기술부족으로 연료소모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원유 정제기술도 폐기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 노후된 차량과 매연발생 차량에 대한 느슨한 단속도 대기오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앞으로 5년간 309조원 상당 투입키로…최소 20년 지나야 중국 대기오염 개선될 듯

중국은 1979년 환경보호법, 1987년 대기오염방지법을 제정했지만 급성장의 궤도에서 환경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도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안개일 뿐”이라며 ‘쉬쉬’하고 넘어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7월 25일 중국 정부가 대기오염 배출물질 25%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5년간 약 1조 7천억위안(약 309조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상공의 대기가 맑아지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중국 당국은 보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이 환경오염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는데 각각 50년, 30년, 2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을 토대로 국제저탄소경제연구소가 지난 5월 펴낸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예측치를 제시했다.

한국도 ‘강건너 불’ 아니다…한국 미세먼지중 36.6%는 편서풍 타고 중국에서 날아 온 것

중국에 있다가 한국땅을 밟으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국도 안심할 수는 없다. 황사바람이 해마다 봄철이면 한반도를 뒤덮듯이 유해물질에 오염된 미세먼지가 상시적으로 북서풍과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상공의 공기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외대 환경학과 이강웅 교수는 2013년 2월 6일 국내에서 열린 ‘대기환경 대토론회’에서 “서울 등 수도권에서 측정되는 미세먼지의 연평균 농도(2011년 기준 ㎥당 47㎍)의 36.6%를 차지하는 17.2㎍은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올 3월 발표한 ‘한중일 3국의 대기오염물질 국적연구’에 따르면 국내 대기중 스모그의 주범인 질산염의 57.8%는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국 대기 정화 경험 중국에 수출할 만…환경산업 진출이 창조경제의 돌파구 될 듯

이에 따라 중국의 대기오염은 한국도 좌시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서울은 이미 1970년대에 극심한 스모그의 터널을 지나 이 문제를 어느정도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 경험을 중국에 수출할 만하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 4월 베이징을 방문해 궈진룽(郭金龍) 시 당서기와 왕안순(王安順) 시장을 만나 ‘서울-베이징 통합위원회’를 설치해 대기오염과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을 같이 풀어가기로 합의한 것은 잘한 일이다. 2200만명의 초대형 도시인 베이징시가 안고 있는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기업과 기술이 진출할 경우 쌍방에 도움되는 윈윈(win-win)전략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강조한 창조경제의 돌파구를 열어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중국은 공기청정기 보급률이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기청정기나 배기가스 오염방지 등 환경산업분야에서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관련기업들의 적극적인 진출도 고려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