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치된 의약품 판매코너.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단 2종류로 약을 나누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의약품을 세분해 각각의 특성에 맞는 판매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
#일본 도쿄에 위치한 한 쇼핑몰. 한켠에 의약품 판매대가 설치돼 있다. 용각산, 타이레놀 등 익숙한 약들이 가득 전시돼 있다. 감기약 하나를 집어 계산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2분도 걸리지 않은 단순한 '구매행위'지만 여기에는 매우 복잡하며 의미심장한 사연이 담겨 있다.
위 상황은 한국 땅에서 실현 불가능하다. '약은 약국에서만' 팔 수 있도록 정한 '약사법'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해열제 등 상비의약품의 슈퍼판매를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열쇠를 쥔 보건당국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사면 정말 위험한 일이 발생할까. 국가에 따라 정책은 다르나 대표적인 '허용' 국가인 일본의 사례를 보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일본 의약품 유통전문가 다카오 다큐쇼 료츠타임즈 대표는 "일본에서도 논란이 있었으나 제도가 바뀐 후 판매자ㆍ소비자 모두 만족하고 있다"며 "안전 문제는 이슈로 떠오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를 허용했다. 다만 약의 종류를 1ㆍ2ㆍ3류로 나눠 차등을 뒀다. 모발용제 등 1류는 약사만 팔게 했다. 전체 일반의약품 중 5% 정도가 1류다.
2류와 3류는 감기약, 해열제, 진통제 등 일반의약품 대부분이다. 이런 약은 약국과 슈퍼 어디서든 팔 수 있는데 약사 혹은 등록판매원이 상주해야 한다. 고졸 이상 누구나 비교적 간단한 시험을 거치면 등록판매원이 될 수 있다. 현재 3만명 정도 있다.
제도변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후생노동성과 약사단체가 반대했다. 하지만 자가치료를 통한 의료비 감소, 편의성 증진이란 측면에서 개혁이 시도됐다. 논의 배경 및 찬반 구조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과 완벽히 일치한다.
결국 일본은 단계적 변화,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 제도를 되돌리자는 목소리는 일본 내 전무하다.
한편 국내 보건당국과 약사단체는 '편리함과 안전을 바꿀 것이냐'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실 교수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논의 쟁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약은 약국에 있을 때 더 안전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약사사회 내부에서도 '약을 약국 내에 둔다고 그 위험성이 통제되는 것은 아니란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누가 어디서 약을 파느냐에 따라 의약품 사고가 예방되거나 발생하는 것은 아니란 의미다. 소비자들의 의식을 강화하거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찾는 데 논의를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이란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일반의약품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며 "간단한 증상은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약국외 판매를 허용하거나 휴일에도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게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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